시인 김혜순(69)은 한국 시문학의 최고 정점에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평론가는 없다. 문학평론으로 먼저 등단한 뒤 시인이 된 그는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고 해외에도 인지도가 있다.그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누구보다 천착해온 작가이며 같은 해 데뷔한 세 살 많은 최승자와 함께 ‘여성주의’ ‘페미니즘’ 시의 대표 작가로 손꼽힌다.김혜순 시인이 세계 문학계에 우뚝 섰다. 시집 ‘날개 환상통’의 영어번역판 ‘Phantom Pain Wings’이 지난 21일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BC 어워즈) 시 부문을 수상한 것이다. 한국 작
문학동네가 매년 등단 10년 이하 작가들이 지난 한 해 발표한 중단편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젊은작가상(15회) 대상에 김멜라의 소설 ‘이응 이응’이 선정됐다.수상작가 7명 중 6명이 여성으로, 젊은 여성 작가의 문단 내 위치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작년 젊은작가상 수상자는 전원이 여성이었다.대상이 아닌 젊은작가상 수상작에는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공현진), ‘보편 교양’(김기태), ‘파주’(김남숙), ‘반려빚’(김지연), ‘혼모노’(성해나), ‘언캐니 밸리’(전지영) 6편이 선정됐다.수상자 7명에게는 차등 없이 상금 700만
올해 게임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녹록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신작 부재 등으로 곤두박질친 실적은 경영난을 심화시켰고 이는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을 불러일으켰다.게임업계에 만연한 지식재산권 문제도 이어졌다. 엔씨는 지난 2021년 웹젠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고 넥슨은 국내 게임사 ‘아이언메이스’와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연말에는 넥슨의 ‘메이플 스토리’로 불거진 ‘남성혐오’ 논란으로 게임업계가 젠더갈등에 휩싸였다.◇ 수익성 악화와 신작 부재로 성과 부진...구조조정·사업정리 불러와코로나19로 호황을 누렸던 게임업계는 엔데믹 이후 기세가
‘혜지’라는 사람의 이름이 게임에서는 욕으로 통한다는 건 소설 을 읽었을 때 알았다. 당시 충격이 꽤 커서 검색도 해봤는데 실제로 그 이름이 게임판에서 욕으로 쓰이고 있었다. 어째서 누군가의 이름이 타인을 그것도 여성을 딱 집어 멸시하는 단어가 됐을까. 그때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알게 된 책이 게이머 딜루트가 쓴 였다. ‘혜지’라는 단어 하나에 속이 벌렁거릴 정도였으니 게임판에서 흉흉하게 벌어지는 성차별은 얼마나 심할까. 궁금한 마음에 열어본
“성차별 옹호, 여성 배제 넥슨은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한국여성민우회가 28일 오전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기자 긴급회견을 열고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손’ 억지 논란을 멈추라”고 촉구했다.앞서 지난 26일 넥슨 게임 홍보용 애니메이션 영상을 두고 일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구체적으로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영상에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쓰이던 '남성혐오 손 모양'이 등장했다는 것. 해당 손 모양은 한국 남성의
종종 ‘과거에 존재했더라면’이라고 상상해본 적 있다. 근대기의 나, 조선시대의 나, 삼국시대의 나, 국가라는 형태가 없던 과거의 나. 끝없이 타고 들어가는 상상 속에서 두려움을 꽤 느꼈다. 전쟁과 약탈이 빈번했던 시기에 여성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이 참혹했다. 현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종종 들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일 안 당해서 다행”이었다. 현대의 여성이라 지금 이 정도를 지켜내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무력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런 안도와 역
한국에서 짧은 머리를 하는 여성은 페미니스트일까. 대다수 여성에게 헤어스타일은 패션처럼 자신의 취향일 뿐이다. 짧은 머리는 머리 손질에 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하는 여성이 많다.그러나 여성혐오에 젖은 일부 한국 남성들은 짧은 머리의 여성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밖으로 드러내는 표시라고 간주하고 공격하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2021년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국가대표 안산 선수를 두고도 그랬다.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졌다. 4일 밤 12시 10분께 경남 진주시 하대동의 한 편의점에서 20대 남성 손님이
페미니즘 도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전쟁과 관련된 도서를 접할 때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지 없는 글자만으로도 그 폭력성이 거대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숨을 고르고 잠시 창문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그러면서도 책을 못 놓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불편한 책은 읽지 않으면 된다.”라고 원치 않는 대안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불편하고 숨 막히는 폭력의 현재진행형을 외면하는 건 가해자를 용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가해자들을 용인하지 않기 위
43세의 나이로 국가수반이 돼 8년째 캐나다를 이끌고 있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51)가 부인 소피 트뤼도(48)와의 18년간의 결혼 생활을 접고 이혼했다.트뤼도 총리는 2015년 취임하자마자 캐나다 역사상 최초로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하고 ‘페미니즘’을 국정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내세워 왔다. 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총리’라고 자처했다.세계 최초의 남녀 동수 내각은 2006년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실현했고 이어 프랑스(2012년), 이탈리아(2014년)가 뒤를 이었다. 스페인은 2019년에 여성 우위 내각을 구성했
언제부턴가 ‘뮤즈’라는 단어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이지만, 동음이의어로써 뮤즈는 작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런데 뮤즈는 작가와 화가에게 영감을 준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걸까? 영감은 무형의 어떤 영향력, 자극 등을 말하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달랑 사진 한 장만 소지해도 뮤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화가에게 뮤즈란 연인이자 성적 파트너이자 조수였고 쓰임이 끝나면 헤어지거나 생명을 다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여자라면 어릴 때 갖고 놀았거나 갖고 싶었던 ‘바비’ 인형. 금발에 파란 눈동자. 완벽한 몸매. 서구 사회가 말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형이었다.바비(Barbie)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완구 회사 마텔이 1959년 출시했다. 바비는 페미니즘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소녀들의 환상, 루키즘(외모지상주의)의 상징이었다가 페미니즘의 전개와 더불어 뚱뚱하거나 키 작은 모습 등 다양하게 변해갔다.그 바비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최고 작품”,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의 빛나는 연기”, “영리하고 재밌는 영화” 등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우리는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바로 이 거다. 지금 인스타그램에 ‘#인생샷’을 쳐봤다. 게시물이 240만 장이다. 처음 보는 힙한 장소, 멋진 배경, 트렌디한 패션,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 다양한 각도와 포즈의 주인공들은 90% 이상 젊은 여성들이다.30대 신진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씨가 쓴 신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출판사 ‘오월의봄’)은 재미있고 의미 있고 놀랍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인스타에 인생샷을 올리는 20대 여성 12명을 집중 인터뷰한 걸 기초로 했다.저자에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42개월째 인구는 자연감소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과 저출산 문제를 연결해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가족 지원 예산이 지나치게 적거나 편중돼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허 회장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젠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국내외 주장을 상기시켰다. 그와 최근 화제가 된 젠더 이슈와 함께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 얘기 나눴다. 다
고전 의 줄거리는 아주 유명하다. 간음을 저지른 여성이 가슴에 'A(Adultery)'라는 주황색 글씨를 새기고 다니며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훗날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달라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러한 주홍글씨는 현대에도 남아 있다. 이혼한 사람들에게 흔히 ‘꼬리표’라 칭하며 흠집 있는 사람인 듯 결점을 찾으려 한다.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이들은 수년 수십 년 발목을 잡히고, 혹여나 안 좋은 이미지가 씌워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멀리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유명 정치인
2년 전 이사를 오며 처음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 이전까지는 직접 설거지를 했고, 설거지 담당이 남편이었던 터라 나는 아침 식사를 했던 접시와 컵 몇 개를 씻는 게 전부였다. 당연히 식기세척기의 세계를 모르던 상태였다. 이사를 앞두고 남편은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졸랐다. 설거지 담당자의 당연한 요청이었으려나. 그런 이유로 식기세척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역 커뮤니티와 포털 등을 검색하며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많이 쓰는지 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입을 맞춘 것처럼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모두 식기세척기를 ‘이모님’이라 불렀다, 식세기 이모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영국의 세계적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의 젊은 여성 자살률이 증가하는 현상에 주목하는 기사를 내면서 “한국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순적 기대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이코노미스트는 22일 “한국의 자살률은 수년간 하락했지만, 여성들이 이를 다시 높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남성의 자살률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20, 30대 젊은 여성의 극단선택이 많아지면서 전체 평균 자살률도 높아졌다”고 보도했다.이 매체는 “한국은 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보여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사회생태학의 권위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2003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우리 사회에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는 날, 정작 해방의 희열을 맛볼 이들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 책임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우리 남정네들이다.”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인간성을 지배해온 것이 ‘남성성(性)’이었다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여성성의 등장, 즉 새로운 성(性) 패러다임이다.최 교수는 '여성의 세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세상을 변론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말하고 싶어도 2차 가해라는 공격에 말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진실을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모였을 때,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침묵을 이길 수 있다.”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결백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곧 개봉한다. 위는 다큐 ‘첫 변론’을 소개하는 홍보 문구다. 고인의 3주기를 맞는 7월에 개봉할 예정이다.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을 옹호하고 성폭력은 없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밀양이라는 지명을 떠올리면 송전탑부터 떠오른다. 누구는 유명한 영남루를 떠올릴 테고, 누구는 끔찍한 성범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출장으로 딱 한 번 가봤던 밀양에서 나는 너른 풍경을 잠시 둘러보고 용건을 해결하고 서둘러 돌아왔다. 송전탑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어느 풍경을 둘러봐도 송전탑만 떠올랐던 까닭이다. 뉴스에서 봤던 곳이 저기였나, 길쭉한 생선 가시처럼 생긴 송전탑이 내 눈에 걸려들까, 밀양에 머물렀던 하루 동안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감돌았다.밀양 송전탑 사건이 벌어졌던 때로부터 어느덧 10여 년이 넘게 흘렀다. 부지 선정은
를 읽고 리뷰한 적이 있는데, 어쩐지 그 책과 비슷한 표지가 보였다. 한 장씩 들춰보니 역시 예상대로 의 후속작인 이다. 새벽의 방문자들이라. 새벽에 방문하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낮도 초저녁도, 쨍한 아침도 아닌 새벽에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불편하고 조금 켕기는 사람 아니려나. 새벽이란 깊이 잠들거나 혹은 너무 은밀해서 작은 들썩거림도 귀에 잡히는 고요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의 방문자라면 도무지 반가워하기 어려울 듯하다.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도무지 반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