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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주홍글씨 고쳐쓰기

개브리얼 제빈 저 ‘비바 제인’

  • 기사입력 2023.06.26 12:03
  • 최종수정 2023.06.27 13:47

고전 <주홍글씨>의 줄거리는 아주 유명하다. 간음을 저지른 여성이 가슴에 'A(Adultery)'라는 주황색 글씨를 새기고 다니며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하지만 훗날 주인공이 성장하고 변화하며 달라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러한 주홍글씨는 현대에도 남아 있다. 이혼한 사람들에게 흔히 ‘꼬리표’라 칭하며 흠집 있는 사람인 듯 결점을 찾으려 한다.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이들은 수년 수십 년 발목을 잡히고, 혹여나 안 좋은 이미지가 씌워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유명 정치인과 미투 혹은 스캔들로 엮여 신분이 노출된 사람들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지금 혹시 누군가 떠오르는 이름이 있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검색을 중지하길 바란다. 충분히 상처받은 사람의 소식을 굳이 내 안에 각인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문학동네)
(문학동네)

개브리얼 제빈의 <비바, 제인>은 유명 정치인과 스캔들이 터지며 신분이 노출된 젊은 여성 인턴과 그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다. 유능하다고 알려진 하원의원 에런 레빈은 여성 인턴 아비바와 한때 이웃이었고, 훗날 하원의원과 여성 인턴으로 만나 부적절한 관계로 번진다. 문제는 에런이 유부남이라는 점이다. 뜻밖의 교통사고로 둘의 사이가 세상에 공개됐지만 이후로도 에런은 10선 의원까지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아비바의 생은 다르다. 재선에 성공한 에런과 달리 세상으로부터 평가받고 낙인찍힌다. 졸업 후 취업을 시도하지만 포털에 이름만 검색해도 나오는 ‘아비바게이트’ 때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아비바는 개명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홀로 아이까지 키우며 분투한다. 정치학과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며 멋진 삶을 꿈꾸던 아비바는 스캔들의 그늘에서 일어나 직접 시장선거에 출마한다.

“인도네시아에선 ‘싱글맘’이 선거에서 뽑히기 어렵다니 재미있네! 그 얘기를 모건 부인에게 했더니, 그건 ‘슬럿 셰이밍’이래. ‘슬럿 셰이밍’이 뭐냐고 물었더니, ‘여자가 너무 자유로우면 사람들이 열받아하는’ 거라는군. - 183P”

얼핏 아비바의 인생이 절망적인 가운데 성공한 인생기 같지만 소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딸의 스캔들로 인해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해고된 엄마 레이철이 있다. 아비바는 제인 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고, 개명한 제인에게는 루비라는 딸이 태어난다. 유명 정치인 남편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며 암 투병까지 견디는 아내 엠베스도 있다.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거기엔 항상 남성이 관여돼있지만, 그들은 잠시 얼굴을 붉힐 뿐이다. 그 결과를 견디고 고통받는 건 모두 여성으로 그려진다.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이 가지는 스스로 선택할 권리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선택을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아비바. 하지만 당신에겐 선택할 권리가 있죠. 엠베스 레빈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거고요. 지지 시위 같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죠. - 371P”

젊은 시절 아비바는 사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블로그에 적어두는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에게 진심이 아닌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잘못된 선택도 하지만 오래전 꿈을 향해 다시 발을 딛는다. 그 과정에서 과거를 감추는 대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세도 보인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어젯밤 당신의 꿈에 아비바 그로스먼이 나왔다. 꿈에서 그녀는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 395P”

노력하는 자세 덕분인지 아비바 주변에는 조력자들이 있다. 과거를 모두 알면서도 정계 입문을 든든하게 지원하는 모건 부인이 등장하고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냈지만 어려운 순간에 즉시 달려와 주는 엄마 레이철이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손녀에게 애정을 담아 거금의 수표를 쥐여주는 할머니가 있다. 

이렇게 작품은 현시대에도 여성을 옥죄는 주홍글씨는 존재하지만 글씨를 희석하고 의미를 재부여하는 역할은 결국 여성의 연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제인으로 이름을 바꾼 아비바가 시장에 당선되는 결과가 끝내 나오지 않았어도 이 소설은 충분히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지금 현실 속의 주홍글씨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도 끝끝내 해피엔딩이 찾아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저자 개브리얼 제빈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독특한 시선, 재치 있는 구성, 유머러스한 문체로 청소년 문제에서 여성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섬에 있는 서점>, <마가렛 타운>, <다른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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