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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이여, '남성성'에서 해방돼라”

'남성' 전문가 옌스 판트리흐트 방한...저서 '남성해방' 국내 출간
"남성성에의 매몰이 모든 문제를 야기한다"
"페미니즘은 결국 남성을 위한 것"

  • 기사입력 2023.05.17 15:45
  • 최종수정 2023.05.17 16:54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사회생태학의 권위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2003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는 날, 정작 해방의 희열을 맛볼 이들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 책임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우리 남정네들이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인간성을 지배해온 것이 ‘남성성(性)’이었다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여성성의 등장, 즉 새로운 성(性) 패러다임이다.

최 교수는 '여성의 세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결국 여성과 남성이 더불어 잘사는 길은 무엇인가.

‘여성해방’은 법과 제도와 일터와 일상에서 성차별을 타파하려는 여성운동의 역사적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남성해방’은 우리에게 낯선 말이다. ‘남성해방’이라고 하면 남성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남성해방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가.

네덜란드 남성해방운동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의 창립자이자 남성과 남성성의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세계적인 ‘남성 전문가’ 옌스 판트리흐트(Jens van Tricht)가 쓴 책 ‘남성해방’이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책 표지는 남자 아이가 남성성을 보여주는 어떤 이미지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책 원제는 ‘페미니즘은 왜 남성에게 이로운가’(Why Feminism is good for man)이다.
책 표지는 남자 아이가 남성성을 보여주는 어떤 이미지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책 원제는 ‘페미니즘은 왜 남성에게 이로운가’(Why Feminism is good for man)이다.

저자는 그 해답을 제시한다. ‘남성성’ 또는 ‘남성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남성해방’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남성이 남성성의 위기를 느끼며 강한 남성으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을 향한 공격성을 내포하는 이런 움직임을 보며 저자는 과연 남성성이란 무엇이고, 여성과 남성은 적대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오랫동안 남성 스스로를 억압해온 ‘진짜 남자’의 모습은 생계를 책임지고, 강해야 하며,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이 해로운 남성성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다움’에 대한 관념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때때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성이 남성성이라는 오랜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른 젠더와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으면,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성과 남성성에 관해 명확한 진실이란 단연코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한 남성 정체성이란 없다. 인간의 속성을 두고 여성적이라거나 남성적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도 남자답고, 단호한 것도 여자다운데, 도대체 왜 여성적, 남성적이라는 이 두 단어를 계속 써야 할까?”

“남성과 페미니즘이 만나는 지점은, 남성이 초래한 문제가 남성이 겪는 문제가 될 때다. 남성은 남성성과 관련 있는 온갖 문제를 겪는 동시에, 남성성 때문에 온갖 문제를 일으킨다.”

저자는 남성이 시급히 해방되어야 할 것으로 ‘남자가!’와 ‘애비 노릇’을 지적한다. 남자답기 위해 사회적으로 용인된, 혹은 부추기는 폭력적인 상황들로 남성들은 문제아가 되거나 동조자가 되기 일쑤다. 하다못해 방관자라도 되어야 배신자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여성과 남성이 힘을 합치는 운동의 출현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둘 다 서로가 필요하고 또 각자 해방되어야 한다고 확신한 채, 여성남성 할 것 없이 평등한 기회, 평등한 권리를 위한 운동에 힘을 모으고 있다. 남성이 반드시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실, 남성이 해방됨과 동시에 서로 다른 젠더가 평등하게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성 자신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해지고 있다.”

저자는 남성이 그러한 선택을 할 때 자기 스스로는 물론 다른 남성이나 여성,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결국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출판사 '노딜다' 카드 뉴스.
출판사 '노딜다' 카드 뉴스.

이 책은 성별과 관련된 전통적인 인식을 전복하며 남성성과 관련된 문제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는 성별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여성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남성의 삶과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여성들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와 함께, 남성들 스스로도 마주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한다.

페미니즘은 결코 역차별이 아니며 결국 그 열매는 남성이 따먹을 거라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 이상으로 남성에게 좋은 것이며, ‘젠더 갈등’을 푸는 가장 빠른 열쇠는 바로 ‘남성 해방’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노닐다' 카드 뉴스.
출판사 '노닐다' 카드 뉴스.

저자 판트리흐트는 번역서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해 여러 도시를 돌며 강연을 한다. 15일에는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에 참석해 이런 말을 했다.

“남성들은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을 보며 내 자리를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죠. 그건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그간 스스로를 가둬온 틀을 깨고 함께 자유로워지자는 운동입니다. 성평등은 남성에게도 좋습니다. 남성은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더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남성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길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단절되고 배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조금 더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러운’ 부분이 두드러질 뿐입니다. ‘여성성’, ‘남성성’은 인간 누구나 지닌 무수히 많은 특질과 잠재능력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이분법에 얽매여 ‘남자답게’, ‘여자답게’를 고집한다면 우리가 지닌 재능과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달 말까지 부산(19일), 제주(20일), 광주(23일)를 돌며 북토크를 열고 ‘남자 상자’를 깨고 새로운 남성성으로 성평등을 실현하자는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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