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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은 왜 이렇게 '인생샷' 셀카에 몰두할까

김지효 신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셀카의 문화 비평서
20대 여성들, “인스타는 하나의 스펙”
‘좋아요’와 ‘댓글’은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권력”

  • 기사입력 2023.07.14 15:16
  • 최종수정 2023.07.17 22:17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우리는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

바로 이 거다. 지금 인스타그램에 ‘#인생샷’을 쳐봤다. 게시물이 240만 장이다. 처음 보는 힙한 장소, 멋진 배경, 트렌디한 패션,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 다양한 각도와 포즈의 주인공들은 90% 이상 젊은 여성들이다.

30대 신진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씨가 쓴 신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출판사 ‘오월의봄’)은 재미있고 의미 있고 놀랍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인스타에 인생샷을 올리는 20대 여성 12명을 집중 인터뷰한 걸 기초로 했다.

저자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 83%가 인스타그램을 애용한다. 이들은 친구를 팔로잉하는 비율이 90.6%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고, 인스타 친구와 실제 아는 경우도 72.5%로 역시 가장 높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이유와 태도로 오늘도 인생샷을 인스타에 올린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그냥 단순한 ‘셀카’ 이야기가 아니다. 심오하다. “여성들은 왜 인스타에 인생샷을 올리려 할까?”에서 시작해 “우리는 인스타에서 타인과 어떻게 만나고 있나?”로 이어지다가 “나는 어떤 타자를 거치며 지금의 내가 되었나?”로까지 확장된다.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셀카의 문화사이자, 외모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이며, 더 나아가 디지털 페미니즘에 대한 연구다. 생생한 문화비평서다.

‘윤희’에게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스펙이다. 인생샷을 찍을 때는 아무 카페에나 가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용 카페’에 가고 아무 음식이나 주문하지 않는다. 윤희는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팔로어 숫자가 많은 게 아름다움의 객관적 지표라고 생각한다.

윤희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고 예뻐서 친구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것은 SNS였다. “나는 너희같이 공부만 하는 애들이 왕따시킬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SNS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팔로어가 많은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게 중요했죠.”

‘인생샷’이란 준비 단계부터 촬영 후 보정, SNS 업로드, 반응을 관리하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통칭하는 말이다. 셀카의 화각(카메라 촬영 범위)이 커지면서 1990년대 얼굴, 2000년대 얼굴과 몸, 최근엔 배경까지 추가됐다. 이 때문에 혼자 찍기 어렵다. 기획과 장소 헌팅, 의상 선정, 제작과 보정에 이르기까지 서로서로 친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많은 ‘좋아요’나 ‘댓글’이다. 인생샷을 만들어주는 건 인물이나 배경이나 의상의 아름다움보다 친구나 지인들의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권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생샷 문화의 공통점은 관객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내 옆에 누가 있고 누구를 의식하는지 묻는 일종의 응답이다.

저자는 이를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의한 여성들의 자기검열이라고 말했다. ‘된장녀’ ‘김치녀’가 ‘인스타충’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이 끝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샷에는 사회현상이나 인정욕구만으로는 일반화할 수 없는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복잡한 맥락이 자리하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은 인생샷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며 서로 지지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문화를 일구고 정치를 벌인다. ‘온라인 속 나’와 ‘오프라인 속 나’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는 가운데 어떤 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거듭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4일 인스타그램에 '#인생샷'을 치니 240만 장의 사진이 떴다. 그 앞부분이다. 
14일 인스타그램에 '#인생샷'을 치니 240만 장의 사진이 떴다. 그 앞부분이다. 

인스타가 주는 가벼움은 20대 여성들을 끄는 요인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점차 정치·사회적 발언의 장으로 변해갔다. 반면 인스타는 비교적 밝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유지되고 논쟁적이지 않다.

책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한 인생샷은 여러 유사한 열풍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1990년대 후반 ‘아이러브스쿨’로 시작해서 ‘싸이월드’ ‘5대 얼짱 카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거쳐 도달했다. 촬영기기도 화상채팅용 웹캠에서 출발해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각 매체를 대표했던 영향력 있는 스타들의 명칭도 퀸카→얼짱→여신→인플루언서로 바뀌었다.

논의의 방향은 인스타 속 페미니즘으로 나아간다. 인스타 속 주인공들은 크게 인생샷을 전시하는 여성과 탈코르셋(강요되는 외모 가꾸기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을 전시하는 여성으로 나뉜다. 흥미로운 점은 탈코르셋을 전시하는 페미니스트 역시 색감 보정과 몸 보정 등을 거치며 인생샷과 유사한 문법을 공유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 중 인기를 얻는 여성이 생기면서 ‘탈코셀렙’, ‘페미셀렙’ 같은 단어도 등장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인생샷 문화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과 자신을 구분했다. “나는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꾸미는 게 아니라 내가 만족하려고 꾸미는 거야!”

그 결과 인스타 안에는 인생샷을 완강하게 비판하는 여성, 여전히 인생샷을 찍지만 그 중요도가 덜한 여성, ‘귀여운 나’에서 ‘존나 잘생긴 나’로 스타일이 바뀐 여성 등이 공존하게 됐다.

저자는 힘주어 무언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하나로 귀결될 수 없는 이 상황들을 직시하자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고백한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그들을, 그리고 나를 이해하는 여정이었다”고 말이다. 344쪽, 1만 8500원.

(오월의 봄)
(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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