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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전진단] ⑤ 생필품이 당신의 안전을 노린다

가습기살균제로 시작된 케모포비아 확산
라돈 침대에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까지...끊이지 않는 사건들
화학물질은 다 나쁘다? 과학적 위해 정보 제공 필요

  • 기사입력 2023.01.20 18:55
  • 최종수정 2023.01.21 11:47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편집자 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세상”이라고 말입니다. 재난과 사고, 범죄 같은 위험 요소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안전 문제는 이제 뉴스 속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이태원이나 세월호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 폭우나 홍수 또는 지진 등 뜻밖의 재난, 죄 없는 사람을 덮치는 범죄, 역사 속 이슈로만 생각했던 전쟁, 식량난과 에너지난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은 정말 안전하고 당신의 가족은 언제나 편안할까요?

일상 속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사고를 10가지 주제로 나눠 짚어보고 해결책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순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생필품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나요? 

2021년 8월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생활용품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2021년 8월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생활용품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은 과연 안전할까? 안전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다. 하나는 이용 과정 중에 발생하는 물리적인 위험이 없는 것, 또 하나는 화학적으로 위해성이 적은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소비자가 생활용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가 2021년 8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생활용품이 안전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10명 중 7명이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제품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 케모포비아가 확산된 건 가습기살균제 참사, 라돈 침대, 생리대 발암물질처럼 생필품과 관련한 화학물질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더 건강해지고자 믿고 사용했던 제품이 오히려 생명을 앗아가는 경우를 목격하면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건이 아직도 맺음되지 못하고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소비자 불신이 더 커지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로 시작된 케모포비아 확산

우리 일상에 케모포비아가 확산된 결정적인 사건은 가습기살균제였다. 가습기살균제로 폐손상이 일어난 임산부, 영유아, 아동,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이다. 안전을 위해 선택했던 제품이 독이 되어 돌아온 참사였다. 

사건의 전말은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중증폐렴 임산부 환자 입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고에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원인 미상인 것 같았던 폐손상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성분 때문으로 추정되고 위해성 확인과 함께 제품이 수거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지 17년 만인 2011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발표했다. 위해성 확인 후 수거 직전까지 가습기살균제는 과연 얼마나 판매됐을까. 환경보건시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SK케미칼이 1994년 개발한 가습기살균제는 2011년 판매 중단까지 20개 종류가 연간 60만 개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은 국내에서 유해성이 입증된 성분을 가습기살균제에 이용하는 것이 허용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가습기살균제의 핵심 성분인 플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에 대해서 다른나라는 별도의 예외 조항을 둬 흡입 시 고독성을 검증할 수 있게 안정성 검사와 성분표시를 의무화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런 법망이 허술했던 것이다. 

지난해 8월 검찰 역시 “이 사건의 본질은 살균제 사건이라는 것이다. 세균을 죽이는 독성의 살균제가 가습기를 매개로 호흡기를 통해 제약 없이 인체에 들어왔다가 집단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사안의 쟁점을 짚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이 밝혀지고 지난해 말 기준 정부가 인정한 사망자만 1066명에 이르고 4572명이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피해 사실이 명백함에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해 기업들이 분명하게 책임을 지거나 피해자를 구제하는 대책 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모임은 2012년 제조·유통업체를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까지도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구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습기살균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퍼진 케모포비아는 라돈 침대,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 등으로 더욱 심화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포심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픽사베이)
가습기살균제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퍼진 케모포비아는 라돈 침대,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 등으로 더욱 심화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포심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픽사베이)

◇ 라돈 침대에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까지...끊이지 않는 사건들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크고 작은 화학물질 사건들이 터져나왔다. 2018년에는 라돈 침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진침대 일부 제품에서 기준치의 최대 9배가 넘는 라돈이 검출돼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라돈은 기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로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체내 흡수 시 각종 암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알려진다. 흙, 광물질, 석재에서 방출되는 자연 방사성 물질이라 해당 재료로 만든 건축물 실내 기준에는 라돈 기준치가 있다. 

당시 음이온 파우더가 들어간 침대 제품에서 실내공기질 기준치를 넘는 수준의 라돈이 검출됐다. 일부 언론은 해당 라돈 수치가 담배 250개비를 매일 피울 때와 같은 수준의 발암 위험성을 갖는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확대 조사 결과 다른 침대 제품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일명 ‘라돈포비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처음 문제가 된 브랜드 제품을 비롯해 총 23개 업체의 제품을 회수했다. 총 570톤에 이르는 양이었다. 

그러나 수거가 끝이 아니었다. 방사성 물질이 나온 부피가 큰 제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정부는 환경부를 주무부처를 지정하고 처리기준과 관련법 개정에 나섰다. 작년에는 개정법안에 근거해 회수한 침대를 소각하려 했지만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쳤다. 시범 소각 결과 안전을 확인했다는 정부 측과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주민 측의 대립이다. 환경단체 등은 2018년 라돈 침대 이용자 가운데 유방암, 감상선암 환자가 발생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라돈 침대 사태 역시 지금까지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다시 이슈가 된 생리대 발암물질 파문도 빼놓을 수 없다.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문제가 제기된 2017년 이후 2018년 10월부터 생리대 전성분 표시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생리대 안전성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첫걸음도 다 떼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작년 10월에는 환경부와 식약처가 생리대 사용에 따른 휘발성유기화합물 노출이 생리통 증상과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식약처가 약속한 노출독성평가를 하지 않은 것이 지적됐다. 생리대 안전성 기준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한 퍼즐이 빠졌다는 지적이다. 

◇ 화학물질은 다 나쁘다? 과학적 위해 정보 제공 필요

그렇다고 해서 화학물질이 무조건 나쁘다고 선을 그을 수는 없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라셀수스는 “모든 물질은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물도 일정량 이상을 섭취하면 몸에 해롭게 작용한다. 용량에 따라서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이 화학물질로 구성된 것을 감안하면 ‘화학물질’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대신 정확한 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케모포비아 인식 및 화학물질 안전정책 개선을 위한 포럼’에서는 이를 위해서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이고 정확한 위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주최 측인 임이자 의원은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화학물질에 대한 과학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공돼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건강정보와 위해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각각의 화학물질의 허용범위에 따라서 안전성을 판단하려면 단일물질 평가기술뿐만 아니라 혼합 독성과 노출을 고려한 복합 위해성 평가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단체 미래소비자행동 조윤미 상임대표는 본지에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관련 산업 규모가 세계 4위다. 그만큼 화학물질을 다양하게 많이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했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전수 검사가 어렵기에 ‘완벽하게 걸러낸다’는 개념 자체는 불가능하다. 그중에는 안전정보 관리나 화학물질 문제 여부를 지속해서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영세한 기업도 많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체크 시스템과 보고·표시의무를 갖추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윤미 대표는 케모포비아가 소비의 왜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하며 화학물질을 과장되게 이해하거나 공포감을 갖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이제는 과거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던 산업군에서도 화학물질을 활용한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화학물질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이런 상황에서 화학물질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은 제품이 필요할 때 정작 제대로 쓰지 못하게 만든다. 현실은 무균실이 아니다. 화학물질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관계부처는 표시정보를 정확히 해주고 소비자는 화학물질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고려해 안전성을 판단할 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서 정보를 취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재 계획

1회 : 당신 가족은 무사한가요?

2회 : 지옥철에 시달리는 일상 언제까지

3회 : 한반도, 지진 안전 지대 아니다?

4회 : 널뛰는 날씨에 망가지는 일상

5회 : 생필품이 당신의 안전을 노린다

6회 : 정직한 몸 흔드는 위험한 음식들

7회 : 안전지대란 없다... 신당역 그 다음은?

8회 : 매년 2천명이 회사에서 사라진다

9회 :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위험한 불

10회 : 기후변화에 달라진 대한민국 작물지도

11회 : 폰 멈추면 일상도 멈춘다

12회 :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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