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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연설문 통해 '성평등 역사' 살펴보니...

“유리 천장 여전히 단단...성 평등 가로막는 구조·문화 곳곳에"

  • 기사입력 2023.03.27 11:03
  • 최종수정 2023.03.27 16:21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우리 사회에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와 문화가 여전하고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나아졌으나 앞으로 갈 길 역시 멀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최근에만 나온 주장이 아니다. 1980년대에도 그런 지적이 있었다.

우먼타임스가 열 아홉 명의 역대 전임대통령의 연설문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 성평등의 역사를 들여다 보았다.  대통령기록관 연설문 기록에서 '여성'과 '성평등' 키워드로 연설문을 검색했다. 제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전임 대통령이 여성을 주제로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짚어보고 과거의 지적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에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와 문화가 여전하고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나아졌으나 앞으로 갈 길 역시 멀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픽사베이)
우리 사회에는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와 문화가 여전하고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나아졌으나 앞으로 갈 길 역시 멀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픽사베이)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연설기록에서 ‘여성’ 키워드로 검색하면 423건의 자료가 나온다. ‘성평등’으로는 46건이 검색된다. 연설기록은 제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과 연설음성, 연설동영상 등을 모아 둔 자료다.

◇ “살림살이에만 예속된 여성, 국가적 손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많은 공로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4년 7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대한부인회’의 발전에 대해 말하면서 여성을 언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지난 40년 동안 해내(海內) 해외에서 부녀들이 많은 공로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우리나라 부녀들이 열렬히 분투 노력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국 여성계가 국가복리를 위해서 일심전력으로 나가는 뜻을 세우고 전도를 널리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는 여성의 지위향상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1964년 ‘박정희장군배 쟁탈 동남아 여자농구대회’ 메시지에는 “스포츠 분야에서 남성 못지않은 재능과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국민의 모체가 될 여성의 지위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당시에도 어머니나 아내로서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1965년 11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주부생활지에 보낸 ‘현모양처’ 메시지에서다. 당시 대통령은 “귀한 자녀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부엌에서 영양을 생산하는 일이라든지 종일 살림을 보살피는 일도 물론 주부들의 큰 보람일 수 있다”고 썼다.

이와 더불어 “그러나 어머니나 아내도 아버지와 남편과 동등한 인간임을 미루어 생각할 때, 자질구레한 살림살이에만 예속된 채 지적생활에 외면하여 산다는 일은 적지 않게 생의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국가적인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에 자주 사용하던 이른바 ‘현모양처’ 이미지를 함께 표현했다. “한 가정의 성장은 주부의 따뜻한 손길과 함께 슬기로움이 있어 비로소 가능하다”라는 문장이다.

◇ “여성해방 목소리는 남녀차별 남아 있다는 증거”

시간이 흘러 1987년 9월에는 세계여성단체협의회 제23차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남녀가 인격이나 사회적 능력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자명한 진리”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균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성 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서는 여성 자신의 자각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별받는 대상에게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이어서 지금의 시선으로는 오히려 차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문구다.

당시 대통령은 “세계 각국에서 여성해방을 외치는 소리가 높고 여성의 능력과 역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그만큼 아직도 남녀간의 불평등 현상이 남아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생각과 생활주변에 남아 있는 남성우위 의식의 잔재를 씻어 버리는 데 꾸준히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는 구호나 투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자신의 자각과 노력이 중요하다. 여성 스스로 잠재역량을 착실히 개발 함양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기능과 역할을 늘려 나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없어지고 여성의 지위와 권익은 차츰 증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21세기 세계와 문명에 여성이 적극 참여해야”

성별에 따라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은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1989년 10월에는 여성지도자들을 위한 만찬에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연설했다. 이날 대통령은 “남성과 여성은 가정과 사회, 나라와 세계를 싣고 가는 두 수레바퀴”라고 말했다.

한가지 짚어볼 부분도 있다. 이날 연설에는 “오늘 저녁에는 청와대가 여러분을 맞아 한결 화기애애하고 환해진 것 같다. 청와대를 보다 부드럽게 하고 밝게 하기 위해서도 여러분을 자주 모셔야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금 기준으로는 여성의 이미지를 특정 짓는 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당시(1989년)에는 여성지도자들을 환영하는 문장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울러 이날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거 때는 지역구에 여성후보를 가능한 많이 공천토록 독려까지 했는데 모두 결과가 좋지 못해 내가 당으로부터 원망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는 여성공천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성이 여성후보에게 표를 찍는 데 인색한 데 있다. 나보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원망을 받아 마땅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라고 덧붙였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언급은 1990년대 들면서 늘었다.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1993년 9월 전국여성대회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분은 여성에게 더 적합한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첨단 정보산업, 지식산업, 과학기술 분야에도 우리 여성들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여성들도 21세기 변화하는 세계와 문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성차별 없는 공평한 기회가 시대적 요청”

이날 연설에서 김 전 대통령은 세 명의 여성장관과 한명의 차관, 전국 19명의 여성동장과 여성 파출소장 1명 사례를 거론하며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성을 기관장, 또는 부기관장에 임명하는 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도 점차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라는 키워드를 자주 사용했는데 1995년 이화여대 졸업식에서도 “21세기 세계화 시대는 바로 여성의 시대”라고 연설했다.

21세기와 여성을 함께 언급한 건 후임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98년 7월 제3회 여성주간 기념식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여성에게 차별없는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21세기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다만 당시에도 여성의 특성을 일반화해 규정짓는 맥락의 발언은 있었다. 당시 연설문에는 “21세기는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예민한 직관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런 시대”라는 표현이 포함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전국여성대회 연설에서 “여성이 사회활동에서 실질적인 권리를 누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정책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앞으로 여성경제인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할 것이며, 아직도 남녀차별적 요소가 남아있는 가족법도 개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내에 인권법의 제정을 추진하여 여성의 인권이 획기적으로 신장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연설기록에서 ‘여성’ 키워드로 검색하면 423건의 자료가 나온다. ‘성평등’으로는 46건이 검색된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쳐)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연설기록에서 ‘여성’ 키워드로 검색하면 423건의 자료가 나온다. ‘성평등’으로는 46건이 검색된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쳐)

◇ “여성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보육문제 해결해야”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 논란이 이어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여성부는 2001년 출범했다. 당시에는 보육 문제를 해결해야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자주 제기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1월 여성부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남녀차별의 시정과 여성인력의 활용 면에서 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남성 위주의 관행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률이 OECD 선진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의 하나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보육문제”라고 지적했다.

보육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다시 언급됐다. 2004년 7월 제9회 여성주간기념 참여정부 보육비전 선포식 메시지에서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보육은 여성에게 참으로 어려운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아이냐 직업이냐를 두고 갈등하는 여성들이 많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어야, 출산율도 올라가고 경제도 성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도 여성의 처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7월 제13회 여성주간 기념사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지금은 많이 바뀌어 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도 상위직에는 여성들이 많이 참여를 못하기 때문에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분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은 여성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판사, 검사도 여성들이 많다’라고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균등한 기회를 줬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출산·양육 부담에 경제활동 참가 비율 낮아”

보육 문제는 여전히 지적된다. 이날 연설문에는 “아이를 키우는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여성이 많이 배우고 자아실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어렵다. 아이를 키워야 하나, 직장을 다녀야 하나 고민을 누구나 한번 씩 다 하게 된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육시설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지만, 숫자는 될지 모르지만 아직도 마음 놓고 맡길 데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언급도 나온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억지로 여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남녀가 평등하고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기회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될 때 진정한 선진사회”라고 말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은 이후에도 꾸준히 지적된다. 2013년 12월 일가정양립 실천대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OECD 국가들은 60%가 넘는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해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산과 양육 등의 부담으로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OECD 평균에도 많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한 번 일터를 떠난 여성들의 복귀가 어렵다 보니, 많은 여성들이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직장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원하는 시간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제보육을 정착시켜서 일하는 여성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유리천장 단단...평등 가로막는 구조와 문화 여전”

최근에는 지난 3년 동안의 코로나19 사태로 여성을 향한 불평등이 더 잘 드러났고, 성평등을 이뤄야 국가가 지속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2018년 1월 여성계 신년인사회 축사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성평등은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전제했다. 3월 한국여성대회 서면 축사에서는 “성평등이 모든 평등의 출발이다. 더 좋은 민주주의도, 지속가능한 경제성장도 성평등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고 밝혔다.

2020년 대한민국 성평등 포럼에서는 당시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위기가 여성들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도 눈앞에 드러냈다는 진단이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계 각국 여성들의 일자리 감소, 돌봄의 부담과 폭력 위험 증가라는 더 큰 사회·경제적 충격에 맞닥뜨리고 있다. 한국 역시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이런 메시지는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이 행복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세계 여성의 날 연설에서 이 같이 말했다. 당시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국가발전 정도에 비해 성평등 분야에서는 크게 뒤떨어져 있다. 우리 정부에서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은 단단하고,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와 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진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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