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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엄마들이 유아차 끌고 백화점 가는 진짜 이유?

“아이와 함께 외출할 공간·인프라 부족해”
"남 일할 때 쇼핑하는 돈많은 여성들만은 아냐"
육아 인프라 확대 필요...지자체·정부 대책은?

  • 기사입력 2023.03.14 09:47
  • 최종수정 2023.03.14 09:59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평일 낮에 유아차 끌고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가는 건 돈 많고 여유로워서 그럴까? 그게 아니라 ‘아이와 편하게 갈 수 있는 장소가 그런 곳 뿐’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저귀 교환대나 수유실이 있고 유아차 통행도 자유로운 ‘육아 친화적’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와 같은 인프라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어린 자녀를 유아차에 태우고 편하게 갈 만한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픽사베이)
어린 자녀를 유아차에 태우고 편하게 갈 만한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픽사베이)

◇ “아이 데리고 외출할 공간·인프라 부족해”

“낮에 백화점이나 쇼핑몰 가보면 아이 데리고 놀러 나온 엄마들 정말 많아. 나는 매일 그 시간에 뼈 빠지게 돈 버는데 매장 카페 앉아서 수다 떠는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럽더라”

과거 기자가 지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그 지인은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것을 ‘노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직장인들이 근무하면서 돈 버는 시간에 백화점에 나와 앉아 있으니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이다. 옳은 시선일까?

이는 일부만의 시선이 아니다. 최근 방송 등 언론에서도 위와 같은 인식을 다뤘다.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 3월 8일, EBS 공식 SNS에 여러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앞서 6일 방영된 지식채널w 시리즈 ‘허영심이 강하시군요’ 편을 요약한 내용이다. EBS는 이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유아차와 함께 백화점에 오는 여성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멘트를 달았다.

유아차는 어린아이를 태워 밀고 다니는 수레를 뜻한다. ‘유모차’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렸으나 최근에는 육아를 엄마의 영역으로 한정 짓는 표현이라는 지적 속에 유아차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평일 낮 백화점 = 여유로운 사람’ 시선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콘텐츠는 유아차를 끌고 백화점에 온 사람이 육아에 지친 가운데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것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화장실에 유아차가 같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 곳, 온수가 잘 나오고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곳이 백화점을 빼면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수유실이 잘 갖춰져 있고 ‘노키즈 존’이 없는 곳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백화점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EBS는 화장실이 좁으면 유아차가 못 들어가서 문을 열어둔 채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인구가 적어 공중화장실이 남성보다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부터, 사치와 허영심이 문제라는 시선은 오래도록 여성을 쫓아다녔다”고 진단했다. 유아차를 이용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고, 좁거나 울퉁불퉁한 길 또는 많은 계단 사이로 다니는 것도 어렵다고 언급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어린 아이를 데리고 편하게 외출할 수 있는 공간 또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혼자 아기 데리고 나갈 자신이 없다”

해당 게시글은 13일 현재 9천여 건의 ‘좋아요’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 콘텐츠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다음카페 인기글 등에서도 언급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해당 SNS에는 게시글 내용에 동의하는 댓글이 많다. 영상과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어린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게 쉽지 않은데 큰 맘 먹고 밖에 나가도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된다’는 의견을 다수 냈다.

이들은 집 밖에서 기저귀 갈거나 수유를 하려면 백화점 같은 곳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네티즌은 “기저귀 교환대나 수유실 등이 제대로 깔끔하게 갖춰진 곳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외에는 거의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다른 네티즌도 “수유실과 가족 화장실이 있는 곳은 백화점과 마트 뿐이라 어쩔 수 없이 간다”고 했다. 이 네티즌은 “수유실이 없어 차 뒷좌석에 앉아 모유수유하는 일도 많았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으면 이런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 전에는 불편하거나 좁아도 개성 있고 특색 넘치는 공간을 좋아했는데 아이 낳고 보니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은 쇼핑몰”이라고 말했다.

교통 접근성을 생각해도 외출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유아차랑 함께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아기와 함께 갈 만큼 교통 접근성이나 주차가 편한 곳은 백화점과 마트 뿐”이라고 썼다. 그는 “두 돌 전까지 아이 데리고 갈만한 곳은 백화점 말고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그저 여유로운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는 댓글을 단 사람도 보였다.

초보 양육자의 댓글도 눈에 띄었다. 현재 아이가 생후 19일이라는 한 네티즌은 “바깥에 나갈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아기가 우는 것도 걱정이고 화장실이나 수유실 환경이 어떤지 잘 모르며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서 아기를 나 혼자 데리고 나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유아차 끌고 낮 시간 백화점 찾은 여성을 '허영심'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지적한 EBS 콘텐츠. (EBS 인스타그램 캡쳐)
유아차 끌고 낮 시간 백화점 찾은 여성을 '허영심'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지적한 EBS 콘텐츠. (EBS 인스타그램 캡쳐)

◇ 육아 인프라 확대해야...지자체·정부 대책은?

오프라인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들린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한 40대 소비자도 “아이 낳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낮에 큰 카페나 백화점에 아기 데리고 나온 사람 보면 여유롭고 돈 많은 부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키즈카페나 대형 쇼핑몰, 놀이공원 같은 곳이 아니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한 30대 소비자는 “아이를 잘 기를 환경이 부족한데 저출생을 자꾸 부모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는 의견도 냈다. 이 소비자는 “정부에서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힘들이지 않고 편리하게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육아 정책 말하는 사람들이 젖먹이 데리고 유아차 끌면서 지하철 한 번 타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송파구의 또 다른 30대 소비자는 “동네 골목 안쪽에도 괜찮은 카페가 많은데 어린 아이 키우는 친구들은 전부 백화점에서만 약속을 잡더라. 왜 그런지 이제 알았다”고 말했다. 그 소비자는 EBS 콘텐츠를 이틀 전에 봤다면서 “나는 자녀가 없어서 미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카페나 식당에는 노키즈 존도 많고, 백화점 같은 곳은 우는 아이를 달래거나 수유할 공간이 있을텐데 다른 곳은 마땅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 또는 대중교통 관련 시설 등에서도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 수유실 등 육아를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남일보는 지난 3월 7일 도내 공공 문화·전시시설에 수유실 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전북도민일보는 앞서 1월 18일 공공기관 수유실이 찾기 어렵고 일부 창고로 쓰이는 등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충남일보는 지난 연말 대전에 ‘미등록 수유실’이 많다고 보도했다. 지난 연말에는 경기일보가 공공기관 등에 수유실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독자의 소리’ 기사를 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국정감사에서 서울 지하철역 수유실 설치율이 30%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와 더불어 역사 내 수유실 중 상당수에 비상벨이 없어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프라 확대와 양육 관련 지원 등을 위해 지자체와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는 13일 “서울형 키즈카페를 올해 100곳까지 확대하고, 2026년까지 서울 곳곳에 400곳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형 키즈카페는 공공실내놀이터로 지난해 5곳 개관했다. 서울시는 “공공시설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 종교시설, 폐원(예정) 어린이집 같은 지역 내 민간시설에도 조성을 추진, 집에서 가까운 생활권에 촘촘하게 생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출산·양육지원 등 효과성을 평가해 집중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출산·양육 초기에 다각적 지원을 통해 양육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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