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 한기봉 편집인‘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라는 오래전 영화가 있다.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잭 니콜슨)과 여우주연상(헬렌 헌트)을 휩쓸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이 만든 로맨스 코미디다.삐딱하고 꼬인 성격으로 강박 속에 살아온 소설가 멜빈, 그에게 세상의 따스함과 사랑의 떨림을 처음 알려준 단골식당 종업원 캐롤. 멜빈은 독신이고 캐롤은 싱글맘이다.여기에 처음에는 사사건건 싸우다가 서로를 보듬어주게 된 이웃집 빈털터리 화가 사이먼이 나온다. 각자 상처와 결핍을 지닌
나에겐 불행 부심(負心)이 있다.'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행복한 가정이라고 해서 불행한 순간이 없지야 않겠지만, 이야깃거리 면에서는 본격적 불행으로 점철된 가정에 대적할 수 없다.이야기꾼이 꿈인 내가 바로 그런 가정의 일원이올시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불행이 가져온 행운이라니. 물론 행운의 방문이 반드시 행복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당사자가 이야기화할 때, 그때가 행복이 설 자리가 나는 시점이다.유년 시절, 높은 데서 뛰어내리곤 했
“어디예요?”느릿하고 천진한 여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부인일까?“네, 일하고 있어요. 손님을 태워서 아깐 전화를 못 받았어요.”“네에에. 돈 많-이 벌어요.”들을수록 핸드폰 너머 말투는 어리고 목소리의 연배는 높아갔다. 어머님인가?“네. 열심히 운전해서 돈 많이 벌겠습니다.”“네에에. 그리고요. 착하게 살아야 해요.”“네, 오늘도 착하게 살게요, 어머니.”“네에에.”‘네’와 ‘네에에’ 가 오가던 통화가 끝나자 기사님의 입꼬리가 내려왔다. 눈썹도, 이마의 주름도 제자리를 찾았다.44번째 노을을 보던 어린왕자의 표정이
광복절 전날, 오빠네 가려고 택시를 탔다. 소림이가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기사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인사 고마워요, 꼬마 아가씨. 아이랑 다닐 땐 택시가 편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안 타고 살았는데 지금은 애용해요.”더는 택시 타는 데 주저함 없다. 조건이 붙긴 한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 또는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치는 날 ‘소림이랑’ 외출해야 할 때’. 평소 택시비를 아끼는 나에게 이 조건은 정당한 이유로 작용한다. “제 딸도 비슷한 또래 아들을 키워요. 아이랑 외출할 땐 꼭 택시 타라고 일러뒀지요
“소림이 방학했다면서, 안 와?” 엄마의 전화를 받고 횡성행 기차를 탔다. 전원 속 외할머니의 이층집을 좋아하는 소림이 도착하자마자 집 안 곳곳을 탐험한다. 강원도의 여름은 맹렬했다. 냉커피를 타려고(냉커피라는 말을 쓰면 옛날 사람이라지만 나는 꿋꿋하다) 얼음을 꺼내는데 냉동실 선반에서 툭, 뭐가 떨어진다. 엄마의 도토리, 아맛나. 아맛나는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일 년에 한두 차례 좋아하지도 않는 아맛나를 사 먹는다.나를 낳고 다음 날,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는 왜 이리 늦는 거야?’ 그 길로 아기엄마 명옥은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p.10)읽고 또 읽는 이 단편을 읽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영락없는 노인이 된 아버지.상상 속 내 아버지는 언제나 인쇄기를 돌리고 있다. 3
코로나에 걸렸다. 동거인 딸 소림이도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확진자가 부득이하게 보건소나 병원을 방문할 시 대중교통 아닌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나에겐 자가용도, 소림을 병원에 데려가 줄 대체 보호자도 없다. “아, 그러십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어? 없어!” 포털사이트가 호들갑을 떨면서 방역 밴을 이용하라고 알려줬다. “와, 그런 게 있다니! 그런데 요금이, 7만 원? 장난하십니까?” 분하지만 걷는 수밖에. 보건소까지는 27분, 선별진료소가 있는 병원까지는 20분이 걸린다. 병원은 언덕 위에 있다.
매달 20일이면 한부모 양육수당 20만 원이 입금된다. 재산도 수입도 적은 한부모여야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받진 못했다. 본인이 여전히 영세한 부류는 아니라는 착각에 한부모 되고 4년이 지나도록 신청하지 않았다. 다른 일을 보러 주민센터를 찾은 2018년 어느 날, 내가 수급 요건에 아슬아슬 충족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다음 달 20일, 딩동, 메시지가 떴다. “130,000원 입금” (당시의 양육수당은 13만 원이었다). 입이 귀에 걸렸다. 딱 태권도장 값이다. 어린이집 친구 재민이를 태운 태권도장 노랑 버스 꽁무니를, 그것이 사
7년 전 여름. 나의 사계절은 겨울, 겨울, 겨울, 겨울이었기에 우리 모녀는 북풍을 타고 Y동으로 이사 왔다. 영화 ‘초콜릿’에서 북풍이 불던 날, 빨간 망토를 두른 비안느 모녀가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로 온 것처럼. 차이라면 비안느는 딸의 손을 잡고, 나는 소림을 아기띠로 업고 왔다는 정도랄까?(미모의 차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비안느 역을 맡은 배우가 줄리엣 비노쉬였으니)전 동네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지만 다니는 길로만 다녔던 내게 Y동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퀴선생들로 인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사 온 나는 여전히
이따금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본다. 그날 저녁 소림이가 선택한 영상은 ‘코타로는 1인 가구’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제목만 보면 혼자 사는 성인의 이야기일 듯싶지만 코타로는 네 살배기 남자아이다. 원룸 아파트로 이사 온 코타로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홀로 살아간다. 코타로의 생활력이란 또 얼마나 강한지 옆집 만화가 청년보다 어른스러울 때가 많다. 그렇다 한들 코타로는 네 살, 혼자 자기 무서워하고 만화 속 영웅에 열광하는 꼬맹이다.계란말이를 오물거리면서 “맛있다, 만화 재미있다”를 연발하던 소림이가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코타로의
엄마와의 마지막 포옹은 열한 살 겨울 셋째 이모네서였다. 이모는 몇 해 부산에 살았다. 어느 날 엄마는 시내 나가는 모양새로 오빠와 나를 데리고 당신의 여동생에게 갔다. 기차인지 버스인지 무엇을 타고 갔나 기억 속 나는 갑자기 부산에 와 있다. 용두산 공원 탑 앞에서 오빠랑 차렷하고 찍은 사진이 있는 걸로 보아 나름의 관광도 했음이다.그래도 알 수 있었다, 여행이 목적이 아님을. 부산행 며칠 전, 아버지의 흰색 와이셔츠가 사진 한 장을 떨궜고 다림질을 하다 말고 그것을 주워든 엄마를 나는 힐끔 살폈더랬다. 화장대 중앙에 사진을 전시
오늘 오랜만에 놀러 온 친구의 차를 타고 우리 동네 O마트에 갔다. 우리가 탄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느리게 회전하며 내려갔다. ‘0’에서 마이너스의 세계로 갈 때마다 이렇게 깊숙이 파 내려간 인간이 신기하고도 으스스하다.마음먹은 인간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이윽고 펼쳐진 너른 주차 공간을 돌면서 “우리 꼭 소화된 결과물 같지 않냐? 위랑 장이랑 다 통과했어. 크크.” 농담하던 친구가 반응 없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놀라 물었다. “야! 너 왜 울어?”, “지금 알았어. 지하 주차장, 8년 만이야.”나는 나고 자란 이 동네를 벗어난 적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 중에서)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소림이가 네 살 때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서 마련한 ‘엄마랑 아이랑 그림책 놀이’ 수업을 들었다. 그림책을 읽고 내용에 맞춤한 그리기나 공작을 하는 식이었다.일원 중 민우 엄마는 매번
‘싱글맘. 제주도. 번개탄. 택시. 이불. 계단. 바다...바다...’나는 어떻게 이 단어들에 묶이게 되었나. 여기는 제주도의 한 해안도로. CCTV를 되감아 보자. 때는 2018년 11월 2일 새벽 2시 47분. 택시에서 여자가 내린다.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품엔 이불로 감싸진 세 살배기 딸이 안겨 있다. 잉태의 시절처럼 하나로 보이는 모녀가 도로에서 바다로 난 계단을 내려간다. 택시 하차에서부터 삶의 하차로 향하는 첫 계단을 밟기까지 지체라곤 없었다. 걸음걸음 생의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꿈속을 구성하는
“군산 갈래?” 이 제안은 여행길에 갑자기 펼쳐지는 바다처럼 등장했다. 외할머니, 셋째 이모, 외삼촌 세 사람이 당일치기로 군산에 놀러 간다고 했다. 외삼촌이 말했다. “소영이 너도 갈래?” 갈비를 뜯다 말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소림이 뒤치다꺼리만 하다 올 텐데, 안 가.” 셋째 이모가 수를 냈다. “가다가 예니 집에 소림이 내려주면 되지, 은지랑 소림이 잘 놀잖아.” 예니는 내 사촌 여동생이고 예니의 딸인 은지는 소림의 동갑내기 육촌이다.그날이 왔다. 만나자마자 은지 손을 잡고 달려가는 소림의 뒷모습에 대고 나는 “잘 놀아”
“여보세요, 119죠!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냐면요.”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작년 12월이었다. 그날 나는 딸 소림이와 함께 합정역에서 ‘전 시어머니’인 은옥 엄마(은옥이라는 이름의 그녀를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전 시부모님과 우리 모녀는 한 달에 두세 번 시간을 보내왔으니까. 해서, 영화 에서의 료타와 케이타 부자처럼 두 분과 나는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부모 자식 사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신기해하고 당사자들에겐 자연스러운 관계,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이곳
“지금부터 내 인생 리셋할 거야.”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으므로 얼마간 나는 이 문장을 흥얼거렸다. 2절까지 끈질기게 불러 중독된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곡처럼(대체로 떼창이라 중독되는 것이다). 그러나 십 분 후면 페이드아웃 되는 노래와 다르게 그의 말은 좀체 떨어지질 않았다.처음에는 혀에만 붙어 있던 그것이 속으로 속으로 파고드나 싶더니 한순간 내 심장에 딱 붙었다. 영악한 문장이었다. 심장에 붙어살면 힘들이지 않아도 피와 함께 온몸으로, 심지어 뇌까지 쭉쭉 뻗어나갈 터였다. 소림에게 젖병을 물릴 때나 아기를 재우고 멍때리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취미 하나를 자백하고자 한다. 왜 자백이고 하니, 취미를 즐기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염탐꾼이어서다. 하지만 염탐꾼이라니 가당찮다. 나는 그저 그것의 다섯 글자를 확인하고 돌아설 뿐이다. 그것은 몇 년 전 세 개의 질문과 함께 찾아왔다.1. 첫 번째 질문그날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다가 어린이집 친구 엄마와 마주친 나는 대화 끝에 케케묵은 질문을 받았다. (내가 이혼한 싱글맘임을 안 순간 태도를 바꿔 이런 떠보기 하소연을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이혼할 것도 아니면서).“세상에, 소림 어머님은 별다른 대책 없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순간부터 이혼하기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태풍의 시간이었다. 그것이 소형인지 초대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태풍은 오직 태풍이므로 내 작은 울타리 안의 것들은 속속 찢기고 무너졌다.그 태풍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출산하러 가는 날, 내 눈동자는 어디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설렘이랄지 기쁨이랄지 그런 단어를 억지로 떠올려보다가 진저리를 치며 신에게 빌었다.“아기가 태어난 순간 저를 데려가 주세요.”이보다 끔찍한 기도를 들은 적 없다(이 기도로 내 이름은 지옥행 열차 탑승객 명단에 박혔다). 그러자
산후조리원에서의 나는 새벽마다 구역질을 해댔다.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어김없이 내 방을 점령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엄마 엄마 하면서 훌쩍였다. 우니까 제왕절개 부위가 뒤틀리며 아팠다. 흉터 밴드를 들추자 가로로 길게 난 핏빛 칼자국이 선명하다. 엄마의 나무 도마에 난 수많은 칼자국 중 하나를 떼어다 붙인 것 같았다.미역국을 좋아하는 딸내미 때문에 엄마는 자주 미역을 불렸다. “미역국이 그렇게 좋아? 아이고, 우리 소영이 미역 장수한테 시집 보내야겠다!” 도마 위에 고기를 놓고 칼질 중인 엄마 옆에 딱 붙어 입을 헤벌린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