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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영의 ‘나, 싱글맘’]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 기사입력 2022.04.11 14:11
  • 최종수정 2022.04.11 14:15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 중에서)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소림이가 네 살 때 우리 모녀는 도서관에서 마련한 ‘엄마랑 아이랑 그림책 놀이’ 수업을 들었다. 그림책을 읽고 내용에 맞춤한 그리기나 공작을 하는 식이었다.

일원 중 민우 엄마는 매번 지각하는 걸로도 모자라 소란하게 등장했다. 문밖에서부터 “민우야, 거기서 뭐 해, 빨리 와!” 큰 소리가 들려오면 엄마들은 서로 눈으로 속닥댄다. 민우네는 비어 있는 책상에 슬그머니 가 앉는 법이 없다. 민우는 들어오자마자 강의실 곳곳을 돌아다니고, 민우 엄마는 “이민우, 와서 앉아야지!”로 시작해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민우 기저귀를 종일 하나밖에 안 갈아 그걸 따지느라 늦게 왔다는 둥 묻지도 않은 말들을 떠들었다. 나는 색종이를 오릴 때나 풀칠할 때나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았고, 수업이 끝나면 소림의 손을 잡고 제일 먼저 튀어 나갔다.

마지막 날이 왔다. 작별 인사를 나누느라 그날만큼은 첫 번째로 퇴장하지 못했다. 소림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누군가 “소림 어머님!” 소리쳤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나만 들을 수 있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 동작은 입꼬리만 올리고 뒤돌기. 민우 엄마였다.

“소림 어머님 어느 쪽으로 가요? 다들 나랑은 다른 방향이라고 하네?”

“아, 저는 성당 방향이에요(제발!).”

“웬일이야! 진즉 알았으면 같이 다니는 건데 그랬어요. 항상 제일 먼저 나가시더라고. 마지막 날 알다니 서운하네.”

“(손아래 같은데 은근히 말을 놓는군) 으하하. 제가 좀 동작이 빠르기로 유명합니다.”

우리 넷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민우 엄마가 쉴 새 없이 내뱉는 각종 사회 불만 사항에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마련해 둔 반성 의자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어차피 안 볼 사람들 마지막 인사는 왜 해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인생은 무상하고말고. 공수래 공수거. 아니지? 김국환 아저씨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산다는 건 수지맞는 장사라 좋은 거라고 했어. 그러니 빈 소주병이라도 팔아보자, 공수레 병수거.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

어느덧 건널목 앞, 여기만 건너면 우리의 길은 갈라진다. 작곡자 미상의 허밍을 흥얼대면서 붉은색 신호등을 보고 있는데 민우 엄마가 “소림 어머님” 넌지시 불렀다. 목멘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 민우가 좋아질까요? ADHD 검사받고 싶은데 그건 돈이 많이 들겠죠.”

색종이를 접다 말고 자기 엄마 핸드폰을 보다가 다른 아이 툭툭 건드리다가 또 돌아다니다가 하던 민우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좋아지고 말고요. 소림이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못 보셨어요? 네 살이잖아요.”

“내 성격도 변했어요. 어디에서든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니 자꾸 이유를 설명하고 아이가 차별받는다 싶으면 ‘엄마가 여기 있다!’ 알려주려고 큰 소리 내게 돼요. 사람들이 저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죠. 집에서 입 꾹 닫고 누워있고 싶어요. 도서관 가는 길이 제겐 너무 멀어요. 민우가 럭비공이잖아요.”

신호등이 바뀌었다. 길을 건너고도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저는 한부모예요. 이혼하고 소림이랑 둘이 살아요. 소림이도 산만하다 소리 자주 듣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이 아빠의 부재를 이유로 세울까 봐 제 마음이 뾰족해져요. 다만 불안을 아이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해요. 노력해도 묻어 나오지만요. 그럴 땐 괜히 웃긴 말 떠들어대면서 소림이 정신을 쏙 빼놔요. 효과 좋으니 한번 해보세요. 하하하.”

민우 엄마의 눈이 커졌다. 내 전화번호를 묻기에 잠깐 망설이다가 알려줬다. 연락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오면서 소설가 이기호의 수필 ‘잔소리 대마왕’이 떠올랐다. 이기호의 형수가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아홉 살 조카딸이 잠깐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기호가 첫째도 맡기지 왜 둘째만 보내냐고 하자 형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첫째는 어머님에게 부탁할 거라고, 둘째 맡기는 것만으로도 제수씨에게 미안하다 했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다. 닷새가 지나면서 본색을 드러낸 조카딸. 조카딸은 이기호 부부와 세 명의 사촌에게 온갖 참견을 하고 다니면서 잔소리를 한다. 일일이 대꾸해주던 이기호의 아내도 어느 순간부터는 묵묵히 콩나물만 다듬고.

그러던 중 조카딸과 이기호의 아들이 놀이 도중 말다툼을 벌인다. 놀이의 룰을 어긴 아들이 조카딸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기호의 아들은 방으로 뛰쳐들어가 울부짖는다.

“혼자 있고 싶어요. 누나는 말이 너무 많아요. 엉엉.”

그날 밤, 재워주는 이기호에게 조카딸이 말한다.

“작은 아빠, 동생들이 제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죠? 제가요, 우리 오빠 때문에 말이 많아졌거든요. 우리 오빠가 많이 아프잖아요. 제가 말을 많이 해야 우리 오빠가 다치지 않거든요.”

예상이 빗나갔다. 집에 들어온 지 30분 만에 민우 엄마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우리 집 주소를 묻더니 그로부터 30분 뒤에 또 전화해서는 잠깐만 나와보라고 했다. 빌라 출입문을 나서자 민우 엄마가 보였다. 그녀가 수줍은 표정으로 오른손을 쑥 내밀었다. 손에는 주먹만한 스누피 인형이 들려 있었다.

“소림이가 인형을 좋아하더라고요. 지금 사 온 건 아니지만 새것이에요.”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지금은 내게 없는 그 인형을 나는 가끔 떠올린다. 사실은 손때가 조금 묻어 있었지만 소림을 생각하면서 인형을 골랐을 그녀의 순정만이 보였다. 한부모의 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해야겠다는 그 단순하고 납작한 발상이 나는 이상하게 좋았다.

민우 엄마는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일 수 없었다. 그녀를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으로 상정한 내가 마을의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저 다른 결을 지녔을 뿐이다.

다만, 우리의 소망은 같으리라. 모두가 나를 미워해도 괜찮고,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은 나를 좋아하기를. 사는 동안,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그들과 부둥켜안고 웃고 울 수 있기를.

이기호 작가의 수필집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중 ‘잔소리 대마왕’ 부분.
이기호 작가의 수필집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중 ‘잔소리 대마왕’ 부분.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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