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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소영의 ‘나, 싱글맘’] 한부모 양육수당에 무릎 꿇던 날

  • 기사입력 2022.06.27 13:29
  • 최종수정 2022.06.27 13:44

매달 20일이면 한부모 양육수당 20만 원이 입금된다. 재산도 수입도 적은 한부모여야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받진 못했다. 본인이 여전히 영세한 부류는 아니라는 착각에 한부모 되고 4년이 지나도록 신청하지 않았다. 다른 일을 보러 주민센터를 찾은 2018년 어느 날, 내가 수급 요건에 아슬아슬 충족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 달 20일, 딩동, 메시지가 떴다. “130,000원 입금” (당시의 양육수당은 13만 원이었다). 입이 귀에 걸렸다. 딱 태권도장 값이다. 어린이집 친구 재민이를 태운 태권도장 노랑 버스 꽁무니를,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꿈쩍 않고 바라보던 소림의 등을 기억한다. 소림의 앞모습은 그깟 태권도장 안 가도 그만이라고 큰소리쳤으나 뒷모습은 달랐다. “엄마, 나도 노랑 버스 타고 싶어” 작은 목소리지만 정당하며 또렷한 요구였다.

다음 해, 양육수당이 20만 원으로 인상됐다. 인상된 날 나는 입 짧은 소림이가 좋아하는 족발을 사 왔다. 세종대왕님이 일곱으로 늘어나자 태권도장을 다녀온 소림 앞에 빨주노초파남보 미끄럼틀이 생겼다. 우리는 족발을 뜯으며 무지개를 타고 놀았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20일이 됐는데도 핸드폰이 잠잠했다.

주민센터에 전화하자 구청으로 문의하란다. 구청에서는 담당자 번호를 알려줬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조금 이따가 다시 하라고 한다. ‘조금 이따가’ 동안 나는 연습했다. ‘말하기’ 젬병인 나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지원이 왜 끊겼죠? 아, 전산상 오류가 있었다니 그것참 다행이네요!” 그래, 떨 것 없어. 연결음이 간다. 여보세요?

- 선생님, 살고 계신 주택이 자가죠? 공시지가가 2만 원 올라서 떨어졌네요. 그 정도로 탈락하기엔, 안타깝게 됐습니다.

- 2만...원요?

전화를 끊고 내 집을 둘러보았다. 원룸 크기를 억지로 두 공간으로 나눈, 아이를 데리고 2년마다 이사할 순 없기에 억지스럽게 샀던 이 집. 한참을 벽을 향해 누워 있었다.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뽀로롱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눈 뜨지 않는 한 여기는 파라다이스. 그 순간 뜬금없이 그가 떠올랐다. 개그맨 A가.

소림이가 세 살 때, 우울감 타파 차원으로 코미디 프로를 자주 틀었다(효과는 없었다). 티벳여우 표정으로 뚱하니 보고 있는데 ‘충청도의 힘’이라는 코너가 시작됐다. 개그맨 A, B, C는 어린이, D가 할머니 분장을 하고 나왔다. B가 새로 산 장난감을 자랑한다.

B: 이것 봐라, 우리 아빠가 로봇 사줬다. 너네는 이런 거 없지?

A: 야, 오늘 며칠이냐? 25일이면 자축인묘...으잉,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다.

C: 어허, 듣겠다. 쟤 때문에 부모 갈라선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 얘 들어요.

A: (B에게) 부러워서 그래. 니는 봐라. 얼마나 좋냐. 네 생일 때 선물을 양쪽에서 받잖여. 이거 재테크여, 재테크.

D(할머니): 근데 너는 엄마 집으로 가냐, 아빠 집으로 가냐.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른 여자랑 두 집 살림 차렸다고 소문이 아주 다 돌고 있어.

B: 할머니한테서는 이상한 냄새 나거든요.

D: 지 애비 닮아서 여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너 동생 생겼단다. 서울에.

‘재테크? 지 애비 닮아서? 동생?’ 내가 들은 게 무엇인지 한동안 멍했다. 그들은 정치인도 아닌 이혼가정 아이를 조롱했다. 며칠간 세상은 시끄러웠고 금세 잠잠해졌다. 내 화병만 도졌다(심지어 소림에게도 나에게도 이복동생이 있다).

양육비 지원 중단과 개그맨 A의 조롱 사이엔 어떤 연관도 없지만 나는 벌떡 일어나 담당자 번호를 다시 눌렀다.

- 선생님, 또 연락을...

-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공시지가가 2만 원 올라서 탈락했다고 하셨는데요. 여기에 와보시면, 아니 공시지가만 봐도 아시겠지만 너무나 작은 집이에요. 제겐 돌봄 대체자가 전혀 없어요. 아이가 엄마랑 오래 떨어지면 불안해해서 당장 일할 수도 없고요. 지원금이 필요해요. 다시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 사정은 잘 알겠지만 이미 결정돼서요.

- 그렇지요. 결정을 되돌리긴 힘들겠지요. 그런데, 우리 애가 태권도장을 무척 좋아해요(이때부터 눈물 콧물이 터졌다). 부유하지 못한 한부모 아이도 태권도장 다니면 좋잖아요. 다닐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아직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해서..그러니까 우울증이 있어서....그치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요. 그날이 오면 뭐든 할게요!

-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안 하셔도...그러면 선생님, 아이 통장이 있던데 그것도 부모 재산에 들어가서요. 워낙 아깝게 탈락한 거라 잔액만 비우심 다시 수급자 신청할 수 있어요. 물론 이달 치는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전화 주셔도 소용없습니다. 아셨어요?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웠다. 됐다. 어쨌든 됐다. 다시 받을 수 있게 됐다. 전화를 끊고 손바닥으로 눈물 콧물을 훔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다리가 저려서 보니 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서였을까. 태권도장 이야기할 때? 우울증을 고백할 때? 한동안 일어설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집값 하락을 이유로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었던 발달장애인 엄마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무릎은 비굴하다. 이기적이다. 내 무릎이 더 절실한 누군가의 몫을 빼앗았다.

보물상자에서 뽀로로 통장을 꺼냈다. 우울증을 앓아도 소림을 기쁘게 해주고픈 마음만은 자주 생기곤 했다. 훗날 뽀로로 팬인 소림 앞에 짜잔, 내밀겠다고 은행 이벤트 기간에 신청한 통장. 그날의 나는 시간을 들여 선보일 이벤트 생각에 히죽히죽 뽀로로를 품에 안고 은행 문을 나섰다. 인도영화 주인공처럼 뜬금없는 뮤지컬이라도 펼칠 기세였다.

통장을 열자 ‘박소림’ 석 자 아래에 20만 원이 찍혀 있다. 무릎을 편 나는 이 돈을 빼서 태권도 비를 내고 족발을 살 것이다. 개그맨 A가 여전히 잘나가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꼭꼭 감추고서.

20만원이 들었던 소림이의 ‘뽀림이 통장’이다.
20만원이 들었던 소림이의 ‘뽀림이 통장’이다. 이제 소림이 돈은 장난감 금고에 저축한다.

(홍소영은) 아기 행성에서 놀다가 나를 보고 지구로 날아왔다는 여덟 살 딸 소림과 살고 있다. 페이스북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좋아하는 페친이 매우 많다. 우주 이야기에 열광하고 동화 작가와 오로라 여행을 꿈꾼다. 여전히,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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