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방송가 예능 프로 “풍성”... 성인지ㆍ인권감수성 “부족”

OTT 예능 홍수...성평등·동성애 다루는 콘텐츠 증가

  • 기사입력 2023.02.17 10:35
  • 최종수정 2023.02.17 16:05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최근 성평등, 동성애 등 과거 방송에서 민감하게 다뤘던 주제를 프로그램 기획의도 자체에 녹이는 방송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편에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소비자 수요에 맞춘 콘텐츠 다양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달라진 성에 대한 인식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시청자로부터 적나라하게 지적받는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OTT 예능의 홍수 속에서 다양한 콘셉트의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 (넷플릭스)
OTT 예능의 홍수 속에서 다양한 콘셉트의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넷플릭스의 '피지컬: 100'. (넷플릭스)

◇ 결혼·연애 예능 증가...성인지 감수성 지적도 잇따라

최근 예능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콘셉트의 연애·결혼 프로그램이다. 그 가운데 몇몇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내용을 방영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MBC에서 방영하는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과 MBN ‘고딩엄빠’가 대표적이다. 각 프로그램은 아동 성추행 논란과 그루밍 범죄 미화 논란으로 폐지 이야기까지 오갔다. 

‘결혼지옥’의 경우 외도, 폭언, 성차별, 부부간 성추행 등 우려 장면을 내보내면서 지속적으로 시청자의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고스톱 부부’ 사연에서는 계부의 성추행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남편이 7살 난 의붓딸이 싫다는 의사를 밝히는데도 아이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스킨십하는 모습이 방송돼 논란이 됐다. 시청자들은 해당 장면이 ‘아동 성추행’이라고 지적하면서 여과 없이 편집한 제작진에게 비판을 쏟아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심의 민원이 이어졌고 거주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될 정도로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후 제작진이 공식 입장문을 내고 사과를 하고 2주간 휴식기를 가졌다. 방송은 지난달 재개됐지만 여전히 자극적인 사연이 소개되면서 시청자들은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MBN에서 방영 중인 ‘고딩엄빠’의 경우 10대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아직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이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보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한다는 기획 의도로 만들어졌다. 방송 초기에는 음지에 머물렀던 10대의 성 문제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평도 받았다. 

그러나 기획 의도와 달리 성인 남성과 미성년자 여성의 연애를 미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작년 11월 22일에는 18세 여성이 10살 연상의 남성을 만나 임신하고 미혼모 센터에서 홀로 아이를 출산한 사연이, 12월 6일에는 19세 여성이 11살 연상을 만나 임신, 출산 후 산후 우울증을 겪는 모습이 방송됐다. 시청자들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를 미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민원을 제기하고 프로그램 폐지를 요청했다. 

방통위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말 심의 결과 ‘문제없음’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문제없음’ 의견을 낸 김우석 방통위 위원은 “책임감을 갖고 애를 키운다면 칭찬해줘야 한다. 만약 문제를 제기한다면 가정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견진술’ 의견을 낸 옥시찬 의원은 “방송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자체가 10대 미혼모를 다루는데 불건전한 남녀관계를 오락적으로 보여주는 건 100% 문제”라고 말했다. 이광복 소위원장은 “방송사에서 소재 선택을 할 때 좀 더 고민해봤으면 한다. 제작진이 시청률에 유혹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며 ‘권고’ 의견을 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를 미화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고딩엄빠'는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최근 시즌3로 돌아왔다. (MBN)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를 미화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고딩엄빠'는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최근 시즌3로 돌아왔다. (MBN)

제작진은 논란이 일자 2주간 프로그램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고 시즌3로 돌아왔다. “고딩엄빠들이 좀 더 성숙한 부모가 되길 바라고 시청자들에게는 경각심을 심어줌으로써 10대의 올바른 연애와 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고자 했다”는 해명과 함께였다. 시즌3에서는 전문가 패널을 구성해 각 가정을 방문, 지적과 충고를 가감 없이 하고 거주환경 개선 프로젝트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청소년의 성적권리를 이해하려는 취지와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이 아닌 태도로 접근하는 건 좋은데 이를 선정적으로 묘사한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성인 남성과의 연애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청소년의 권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잘 살펴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결혼해서 잘 살았다는 것만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최유경 활동가는 “‘고딩엄빠’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우한 청소년 부모들을 지속해서 노출하는 프로그램은 결국 ‘애가 애를 낳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만 강화하게 만든다. 이런 프로그램이 과연 실질적으로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 같다. 단순히 성인과 미성년자 관계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통위 위원들이 어떤 관점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는지 역시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여여’ 커플 데이트 장면...성소수자 조명 콘텐츠 증가

연애 프로그램 중 최근 가장 주목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로는 웨이브에서 방영한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을 빼놓을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울리는 ‘좋알람’ 앱을 설치한 남녀 8인이 하트 쟁탈을 펼치는 게임이다.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의 세계관을 실사 예능으로 기획해 신선하다는 반응을 이끌었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그동안의 연애 프로그램이 ‘남녀’ 커플을 기본값으로 보여줬던 것과 달리 여성 출연자끼리 소위 ‘썸’ 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스민’과 ‘백장미’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성 출연자들의 이름을 붙여 ‘스민-장미’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해당 커플의 데이트 모습이 방영되면서 패널과 시청자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동성을 선택하면 안 된다’라는 규칙은 없었지만 예상하지 않았던 여여 커플끼리의 선택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커뮤니티와 언론에서는 “국내 연애 프로그램 최초로 ‘여여’ 커플이 탄생하는 것 아니냐”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최종회에서 커플 성사가 되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퀴어베이팅 논란이 일기도 했다. 퀴어베이팅(Queerbaiting)이란 동성애 로맨스나 기타 LGBT 표현을 하는 듯이 해 퀴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실제로는 서사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대중의 불편함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당시 트위터에서는 ‘퀴어베이팅’이 실시간 트렌드 순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시청자 농락”, “소재로만 이용한 명백한 퀴어베이팅”이라고 말했다. 

웨이브에서는 그동안 남성들끼리 합숙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그린 ‘남의 연애’, 레즈비언·게이·트렌스젠더 등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 커플의 일상을 담아낸 ‘메리 퀘어’와 같은 소수자를 조명한 콘텐츠를 선보여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소수자의 사랑과 일상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과 달리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의 경우 이성애 연애 프로그램으로 알고 보던 시청자가 많았던 만큼 다양한 사랑의 형태와 성수수자의 현실을 더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평이 나온다. 

연애 프로그램 최초로 '여여' 커플 탄생의 기대를 키웠던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포스터. (웨이브)
연애 프로그램 최초로 '여여' 커플 탄생의 기대를 키웠던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포스터. (웨이브)

◇ ‘여성의 몸’ 고정관념 바꾸는 프로그램에 환호

최근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피지컬: 100’이 있다. ‘피지컬: 100’은 15일 기준 넷플릭스 공식 차트 ‘글로벌 톱10’에서 비영어 TV쇼 부문 1위에 오를 정도로 현재 가장 ‘핫’한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피지컬: 100’의 콘셉트는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해 100인이 벌이는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게임을 통해서 신체 능력을 겨루고 최종 1인이 3억 원이라는 상금을 갖는다. 

100명의 출연자는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와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일반인이다. 올림픽 체조선수부터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야구선수, 씨름선수, 보디빌더 출신, 특수작전부대 UDT 출신 등 선수들도 다양하다. 원 직업이 요식업계 CEO, 자동차 딜러, 일러스트레이터, 여행 유튜버인 사람들도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 기계체조 선수 양학선,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였던 더스틴 니퍼트, 운동 유튜버 심으뜸 등 이미 시청자들이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대거 출연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성별’에 따른 몸이 아닌 ‘개인’에 따른 몸의 차이를 보여줘서 좋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스타일을 분리해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서 좋다”, “몸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서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화제가 된 매치도 있다. 보디빌더 춘리와 격투기 선수 박형근의 대결이었다. 당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를 지목해서 명치 쪽을 누르면서 공격해 논란이 되었는데 “룰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지만 상식적이지 못하다”와 “남녀를 떠나서 힘을 겨루는 것이 취지니까 아무 문제 없다”로 시청자 의견이 나뉘었다. 

이에 당사자인 춘리가 “운동인으로서 정당하게 대결했고 이 대결에 아무런 문제나 불만이 없다. 참가자 전원이 남녀 구분 없이 대결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해당 공격은 격투기 기술이었을 뿐”이라며 문제 삼지 말아 달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러한 이슈에 대해서 일부 시청자는 “그동안의 ‘여성의 몸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오히려 다양성을 장려한다”, “남녀 구별 없이 몸에 집중할 수 있다”, “논란이 된 장면은 좋은 승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이윤소 활동가는 “논란이 된 장면에서 느낀 건 남녀 차별이 아니라 안전 문제였다. 운동을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위험성이 있는 상황에서 안전장치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룰이 출연자에게 잘 전달되고 합의가 되었나 역시 중요하다”고 전했다.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진행자 황선우 작가는 방송을 통해서 “운동하는 여성들, 강한 여성들, 지지 않는 여성들을 발견할 때의 쾌감과 영감은 아주 크다. 그걸 다른 이유로 놓치지 않길 바란다”며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서 말했다. 

◇ “인권 기준에 맞는 모니터링 필요”

유튜브, 웹 등 OTT 예능 홍수 속에서 민감할 수 있는 주제는 계속 나오고 논란 또한 계속될 것이다. 프로그램의 다양성이라는 미명 아래 놓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명숙 상임활동가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권 기준에 맞는 모니터링이 필요한 것 같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당 전문가나 여성인권단체, 청소년인권단체 등에 자문을 구해서 모니터한 다음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 선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윤소 활동가는 “일반인 출연자의 인권침해를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 출연자는 방송에 나왔을 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방송 이후의 영향을 판단하기 어렵다. 판단하더라도 실제 방송에서 어떻게 편집될지 알기가 어렵다. 실제로 예상치 못한 관심과 부정적 반응을 받고 있다.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원하지 않는 장면은 내보내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건 좋은 현상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 프로그램에서는 다양성이 워낙 결여돼 있었다. 다양한 사람의 삶을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더 많은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