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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상품을 바꾼다...기업 흔드는 팬슈머 파워

달라지고 넓어진 소비자 영역과 더욱 커진 힘
단순한 소비 넘어 제품 기획과 마케팅에도 영향
2022년의 팬과 소비자...기업과 수평적인 관계

  • 기사입력 2022.10.12 16:55
  • 최종수정 2022.10.12 16:57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소비자는 말 그대로 ‘소비하는 사람’이다. 돈 내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에게는 구매 행위가 끝이 아니다. 기획이나 생산 또는 홍보·마케팅에 직접 힘을 보태는 사례가 많아졌다. 기업이 돈 주고 고용한 게 아니라 소비자가 스스로 즐거워하거나 의미를 찾으면서 그 일을 한다. 어떤 까닭일까?

소비자는 이제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뜻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 그 역할과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제공)
소비자는 이제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뜻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 그 역할과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제공)

이런 경향을 이해하려면 우선 새로운 단어 하나를 짚어보는 게 좋다. ‘팬슈머’라는 단어다. ‘팬’과 ‘컨슈머(소비자)’의 영문 약자 조합이다.

어떤 대상에 큰 애정을 가지고 그와 관계된 것들을 소비하는 경향을 말한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 등이 집필한 책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 해당 키워드를 당시 10대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골랐다.

책에 따르면 팬슈머는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만 고르는 게 아니라 직접 투자와 제조 과정에 참여해 상품이나 브랜드를 성장시킨다. 스스로 키웠다는 뿌듯함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소비하지만 그와 동시에 애정을 바탕으로 간섭과 견제도 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왜 그런 일을 할까?

◇ 연예가에서 시작된 ‘팬덤’의 발전

팬슈머는 전통적인 의미의 열성팬이나 흔히 말하는 ‘팬덤’과 구분된다. 당시 책은 과거의 팬덤이 동경 관계와 지지자의 역할, 그리고 후원 가치로 이뤄졌다고 정의했다. 하지만 최근의 팬슈머는 상호 보완 때로는 견제 관계 그리고 파트너 역할과 관여 가치로 이뤄졌다고 구분했다. 쉽게 말하면 관계가 더 깊어졌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과 흐름은 여러 업종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우선 대중문화 영역을 보자. 팬슈머는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의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생산도 한다.

팬들은 스타 소속사에 해당 인물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하거나 마케팅 활동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실제 국내 한 유명 그룹 팬들은 과거 논란에 선 경험이 있던 해외 제작자와의 협업 계획이 발표되자 ‘리스크가 있는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해 프로젝트를 무산시켰다.

가수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의 팬슈머는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링, 앨범디자인이나 음악 스타일, 어떤 작곡가와 협업하는지, 어떤 무대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어떤 이미지의 광고 모델이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일정이 많아 아티스트가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스케줄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게 하라는 의견도 낸다.

응원하는 스타가 특정 제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팬들이 해당 제품 제조사 공식 계정을 등을 통해 ‘아무개를 CF모델로 써달라’며 영업(?)활동을 벌인 사례도 많다. 브랜드 담당자들이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마케팅 제안 여부를 검토하거나 실제 협업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스타의 광고도 팬들이 직접 만든다. 홍대나 강남역, 코엑스 등 도심 주요 역사에는 팬들이 직접 제작한 연예인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영상 공유 사이트에는 소속사나 방송사에서 만든 영상보다 팬들이 편집해 올린 콘텐츠가 더 많다. 스타의 사진이나 영상 또는 캐릭터 등을 활용해 굿즈(기념품)를 만드는 팬들도 많다. 스타의 생일에는 팬들이 카페 등에서 이벤트도 연다.

◇ 제작과 유통, 홍보에 직접 참여하는 요즘 소비자

팬 또는 소비자의 적극적인 목소리는 연예계 등 대중문화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실제로 소비자가 자신이 쓰는 제품의 제작이나 유통 과정 등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요즘은 산업계 전반에 걸쳐 폭넓게 이뤄진다. 이런 경향에서 사회의 새로운 흐름도 읽을 수 있다.

2020년 일이다. 깡통햄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스팸’을 둘러싸고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뚜껑을 반납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캔뚜껑이 아닌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밀봉 상태로 출시되는데 굳이 플라스틱 뚜껑을 덮으면 쓸데없이 버려지면서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소비자단체 ‘쓰담쓰담’이 ‘스팸 뚜껑은 반납합니다’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소비자들은 CJ그룹에 스팸 뚜껑 관련 의견을 보냈다. 멸종위기 전문매체 뉴스펭귄이 당시 보도한 바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플라스틱 뚜껑에 대해 “가공햄 유통 중 통조림 개봉 부분 보호 차원”이라고 밝혔고 이후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뚜껑을 없앤 추석 선물세트 등을 내놓았다.

그보다 몇 개월 앞선 시점에는 한 소비자가 매일유업에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이 마신 음료에 붙어 있던 빨대를 쓰지 않고 돌려보냈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여야 하니 빨대는 없어도 된다는 메시지였다.

2021년 1월 매일유업이 내놓은 빨대 없는 우유 제품. “빨대를 없애 달라”는 소비자의 친환경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매일유업)
2021년 1월 매일유업이 내놓은 빨대 없는 우유 제품. “빨대를 없애 달라”는 소비자의 친환경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매일유업)

당시 매일유업은 임원 명의로 자필 답장을 보냈다. 매일유업은 친필 편지에서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음용하기 편리한 구조의 포장재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포장재 개발과 함께 빨대 제공에 대한 합리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은 이후 2021년 1월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해봤던 제품에서 실제로 빨대를 빼고 생산하는 등 제품 생산 과정을 혁신했다.

◇ 소비자는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활동이 CJ제일제당이나 매일유업에 대한 팬심에서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애정 또는 관심에서 비롯된 변화라는 점에서 비슷한 지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트렌드코리아’는 “팬슈머 활동 동력이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라고 정의한다. 소비 패러다임이 단순한 경험에서 ‘관여’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당시 책은 “이 관여에 대한 열기는 선발과 양육, 기획과 제조, 유통과 홍보, 그리고 지지와 비판까지 시장의 전 영역에 드리워진다”고 짚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서바이벌 생존 다큐멘터리 중 일부 내용을 시청자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기획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투표 방식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등이 국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끈 것도 비슷한 방향이다.

게임사 컴투스는 자체 진행 문학상을 통해 작품을 공모받아 시나리오 등에 활용했다. 식음료기업 농심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굿즈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농심켈로그는 소비자들의 유머러스한 장난이 섞인 ‘파맛 첵스’ 요구에 실제로 제품을 출시했고 ‘1일 1깡’운동은 가수 비와 스테디셀러 과자 새우깡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과거의 팬들은 열성적으로 지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이콧’하는 것이 소비 활동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홍보하는 과정 전반에 소비자들이 직접, 그것도 스스로 참여하고 있다. 팬과 소비자 그리고 기업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한 ‘팬슈머’ 시대의 모습이다. 소비자는 이제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의 전 과정을 직접 주관하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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