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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 ②[데스크 칼럼] '여성’과 ‘성평등’이 빠진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 여가부 폐지 공식 발표
복지부 신설 차관급 ‘본부’와 노동부로 업무 이관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 고집
여성을 '인구 생산'과 묶어버려

  • 기사입력 2022.10.06 16:39
  • 최종수정 2022.10.07 17:10

우먼타임스 = 한기봉 편집국장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되고 말았다.

폐지되는 여성가족부 업무를 이어 받을 보건복지부 산하 신설 조직 명칭이다. 당초 당정 협의 과정에서는 본부 이름을 ‘여성가족본부’로 하는 것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6일 행정안전부가 공식 발표한 정부조직법개정안에서는 ‘여성’ 두 글자가 빠지고 ‘양성평등’이란 말이 들어갔다. 또 ‘인구’ ‘가족’이란 단어가 포함되면서 조직의 이름이 상당히 길어졌다.

굳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꼭 빼버려야 했을까. ‘성평등’ 대신 굳이 ‘양성평등’이라고 못박아야 했을까.

행안부는 여가부 폐지 배경 설명에서 “새로운 갈등으로 심화하는 젠더 갈등을 해소하고 실질적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말은 여가부를 폐지하면 젠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여가부는 사라져도 대다수 업무는 다른 신설 조직이 가져가 맡게 되는데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까.

신설되는 조직도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여성 관련 정책을 담당하게 되는데 ‘여성’이란 말을 넣지 않은 건 왜일까. ‘여성’이란 두 글자를 빼면 ‘실질적 양성평등’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대남’의 표심을 의식한 걸 기억한다면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이란 단어를 기필코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성평등’은 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주로 사용해온 단어다. 

여성단체들은 ‘성평등’이란 단어를 써왔다. ‘성평등’과 ‘양성평등’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성평등은 꼭 남자와 여자가 아닌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만큼 모든 성을 평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양성평등’은 성을 오로지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이분법으로만 보는 것이다. 동성애나 성전환, 동성결혼, 성소수자 등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단체와 맥이 닿아 있다. '양성평등'이란 용어가 더 젠더갈등적인 용어다. 보수정치세력이 굳이 이 단어를 고집하는 건 상대적 피해의식을 지닌 젊은 유권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성·인권단체들은 ‘양성평등’이란 용어 자체가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 이 단어는 남성 역차별 주장과 여성 혐오와 맞물려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과 남녀 간 젠더 대결 구도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선 '성평등'은 여성에게 유리한 말이고 '양성평등'은 남성의 입장을 거드는 것으로 해석되는 게 현실이다. 유엔에서는 ‘성평등(Gender Equality)’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여성정책을 담당할 새로운 조직에 '인구'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도 의외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정책 수립은 여가부의 일이 아니다.  결국 여성을 '인구 생산'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묶어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올 정기국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면 여성가족부는 출범 2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여성가족부는 2001년 1월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권익증진을 목적으로 여성·가족 정책 및 청소년·아동 복지업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부서로 설치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대선 후보의 확고한 공약이었다. 여가부의 정책이 페미니즘에 기울어져 오히려 젠더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일단 여가부장관은 임명되었으나 폐지는 시간 문제였다.

지난 1월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아무 설명 없이 페이스북에 단 7글자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4시간 반 만에 같은 방식으로 여가부를 강화하라고 반박했다. 심 후보 글의 바탕색인 보라색은 성평등을 상징한다..
지난 1월 7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아무 설명 없이 페이스북에 단 7글자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자,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4시간 반 만에 같은 방식으로 여가부를 강화하라고 반박했다. 심 후보 글의 바탕색인 보라색은 성평등을 상징한다..

여가부가 맡던 대부분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신설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맡게 된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는 인구·가족·아동·청소년·노인 등 종합적 생애주기 정책과 양성평등, 여성의 권익증진 기능을 총괄한다. 다만 여성고용 촉진 업무는 고용노동부에 넘어간다.

신설 조직의 수장인 본부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통상교섭본부장처럼 장관과 차관 사이의 직급이다.

행안부는 또 여가부 폐지의 다른 이유로 여성·청소년 등 특정 대상 업무 수행으로 생애주기에 걸친 종합적 사회정책 추진이 곤란하다는 점을 들었다. 복지부·노동부와 여가부의 업무영역이 중복돼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부처 간 일부 업무 중복은 실제로 흔히 있는 일이다. 복지와 주거, 노동 및 취업 등은 복지부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노동부 등도 담당하고 있다

행안부는 “정부조직개편안은 고위당정협의와 야당 설명을 거쳤다”며 “개정안이 11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과정은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명시적으로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행안부가 5일 민주당 지도부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설명하러 간 자리에서 민주당은 차관급 본부장으로는 타 부처와의 교섭력 등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한 발 물러서 “민주당이 반드시 여성가족부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유엔에서도 성평등 관련한 독립부처의 필요성을 권고하는 게 국제적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정부 여당에 협조할지, 개정안을 일부 조정해서 협상을 벌일지 공은 이제 민주당에 넘어갔다. 여성단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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