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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는 꺼져라”…여성단체들, 백래시에 연대 투쟁한다

백범넷, "최근 심각해진 백래시 더이상 묵과하지 않겠다"
반페미 단체 신남성연대, 페미니즘 ‘뻔뻔해졌다’ 반박

  • 기사입력 2021.08.16 13:19
  • 최종수정 2021.08.16 19:12

우먼타임스 = 김성은 기자

지금은 '백래시(backlash)'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다. 이 용어의 원래 의미는 사회‧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이에 반발하는 대중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위협을 느끼는 보수 기득권층에서 일어난다.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반발한 백인 차별주의자들의 운동은 ‘화이트 백래시(white backlash)’라고 불렸다.

지금의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영역에서 자주 쓰인다. 미투에, 페미니즘 트렌드에, 여성들의 강력한 연대에 놀라거나 위협을 느낀 남성 집단이나 반페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벌어지는 반발의 움직임을 통칭 백래시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선거후보 벽보를 훼손하거나, 미투 바람이 불자 아예 여성을 배제하는 '펜스 룰' 같은 거다.

이 용어가 페미니즘과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1991년에 쓴 ‘백래시’라는 제목의 책에서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 물결이 미국을 덮치면서 정치, 미디어, 대중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일련의 안티페미니즘 공격을 ‘백래시’라고 불렀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투를 겪으며, 여성 차별과 억압에 대한 여성들의 연대가 강렬해지고 페미니즘의 중요한 사회의제가 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백래시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 단체들은 한국 남성들한테 보이기 시작한 백래시가 처음에는 '투정' 정도의 '유치한' 수준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 백래시는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며 '뻔뻔하게'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단체들이 힘을 합쳐 백래시에 공동대응하기로 연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자대학교페미니스트네트워크 W.F.N.등은 13일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이하 백범넷)’을 발족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페이스북에서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 발족을 선언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페이스북에서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 발족을 선언했다.

백범넷은 발족 선언문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백래시 사례를 꼬집었다.

“살면서 누구나 수만 번은 할 손 모양이 남성 혐오라며 온갖 곳에 시비를 걸자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줄줄이 사과하고 멀쩡한 창작물을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계자를 징계까지 했다. 여성 혐오의 실태를 섬세하게 살피고 변화를 약속해야 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반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이를 이용해 표몰이하고. 대선 주자들은 단지 주목받기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명백한 백래시다”고 말했다. 

또 최근 달라진 백래시 현상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도 지적했다.

“근래 백래시에 남다른 점이 있다면 더욱 공공연하고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혐오자들은 이제 여성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행위를 대놓고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못된 페미’들은 그런 대접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언론은 아무런 고찰 없이 조회 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성별 간의 갈등’이라고만 보도한다.” 

백범넷은 이 같은 성차별‧성범죄가 계속되는 현실이 남성들의 침묵과 방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여성 대상의 높은 범죄율에, 성별 간 임금 격차에, 어떤 여성도 피해갈 수 없는 성적 대상화에, 거대한 성매수 산업에, 그리고 일상에 만연한 성희롱과 여성 혐오에 여성들은 분노하고 반박하지만, 남성들은 침묵하고 방관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화내는’ 이유는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4차 산업혁명이 와도 성차별과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백범넷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 부조리의 시대를 무기력한 냉담으로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이루어왔다.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는 이가 당신 혼자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다시 한 번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모순의 시대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용기와 저항으로 통과하기 위해 발을 내딛고자 한다. 그 단순한 사실이 우리가 모인 이유”라며 “버티고 싸우다 흠뻑 젖은 모습이 숨겨야 할 불리함이 아니라 당당한 저항의 이력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연세대, 동국대, 성균관대 등 총여학생회 관계자들이 2018년 12월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최근 총여 폐지 흐름과 관련한 '백래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세대, 동국대, 성균관대 등 총여학생회 관계자들이 2018년 12월 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최근 총여 폐지 흐름과 관련한 '백래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백래시에 굴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연대는 역시나 다시 백래시를 불렀다. 반페미니즘 단체인 신남성연대는 이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가 발족되자 신남성연대는 여성단체들이 정부보조금을 타내려고 여성단체를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사진=신남성연대 카페]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가 발족되자 신남성연대는 여성단체들이 정부보조금을 타내려고 여성단체를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사진=신남성연대 카페]

신남성연대는 이렇게 주장했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여성단체들이 난립하고 있어 업무가 중복되는 기관들은 폐쇄해도 모자랄 판에 또 여성 단체 끌어 모아 계속 여성단체 만들어 정부 보조금 얻어 페미니즘 활동하려는 수법이다. 자세히 보면 늘 같은 사람들만 모여 수십, 수백 개의 단체나 연대체를 만들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등 주류 여성계나 제도권, 정치권에 진입하지 못한 비주류 영페미들이 정부보조금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페미니즘이 비판받으면 여성계 내부 자성이 먼저 아닌가? 요즘 페미니즘 뻔뻔해졌다.”

백범넷은 26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함께 ‘백래시 한국사회, 혐오가 아닌 성평등을 이끄는 정치로’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다.

수전 팔루디 저 '백래시'.
수전 팔루디 저 '백래시'.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 발족선언문 전문]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너무나 유치하고 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그 투정을 사회가 진지하게 받아주면서 모순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수만 번은 할 손 모양이 남성 혐오라며 온갖 곳에 시비를 걸자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줄줄이 사과하고 멀쩡한 창작물을 수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계자를 징계까지 했다. 여성 혐오(Misogyny)의 실태를 섬세하게 살피고 변화를 약속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반페미니즘’을 내세우며 이를 이용해 표몰이를 했다. 대선 주자들은 단지 주목받기 위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폐지의 이유 역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국가의 새로운 역할 고민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이거나 혐오 논리로 점철되어있다.

명백한 백래시(backlash)이다. 마치 온 사회가 더이상 참지 않고 싸우기를 선택한 여성들의 입을 막고 납작하게 누르려 혈안이 되어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백래시가 오늘만의 일인가.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불편하게’ 만들 때마다 의도를 꼬집고 비트는 행위, 거짓뿐인 반박은 언제나 따라붙었다. 근래의 백래시에 남다른 점이 있다면 더욱 공공연하고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혐오자들은 이제 여성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행위를 대놓고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못된 페미’들은 그런 대접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언론은 아무런 고찰 없이 조회 수를 부르는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성별 간의 갈등’이라고만 보도한다.

애초에 왜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구도처럼 그려지는가. 그 이유는 남성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여성 대상의 높은 범죄율에, 성별 간 임금 격차에, 어떤 여성도 피해갈 수 없는 성적 대상화에, 거대한 성매수 산업에, 그리고 일상에 만연한 성희롱과 여성 혐오에 여성들은 분노하고 반박하지만, 남성들은 침묵하고 방관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예민하고 까칠하고 화내는’ 이유는 아무리 사회가 발전해도, 4차 산업혁명이 와도 성차별과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여성 혐오자들만 모르고 있다.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을 구조적 차별로 보장받으며 쉽게 ‘그런건 없다’고 떠든다. 그리고 이제 이 정치 권력의 시스템은 그 아둔함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고안해냈다. 이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조리의 시대를 무기력한 냉담으로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손을 잡고 한목소리로 반격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가정폭력을 사회 문제로 만들었고, 성폭력처벌법을 제정시키고 최근의 n번방 방지법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며, 호주제와 낙태죄를 폐지시켰다. 수많은 여성 혐오와 여성폭력 그리고 그 생존자들의 말하기가 또다시 ‘해프닝’으로 묻히지 않도록 다 함께 거리로 나와 ‘생각하고 설치고 떠들었다’. 유례없는 백래시,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가 쉽게 무너뜨리기에는,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이루어왔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직진할 것이다.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는 이가 당신 혼자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다시 한번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모순의 시대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용기와 저항으로 통과하기 위해 발을 내딛고자 한다. 그 단순한 사실이 우리가 모인 이유이다. 지친 서로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다 보면 수많은 파도가 쉼 없이 몰아칠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는 아프기만 했던 순간들을 함께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버티고 싸우다 흠뻑 젖은 모습이 숨겨야 할 불리함이 아니라 당당한 저항의 이력이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숨죽이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며 성평등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2021. 8. 13.
백래시 대응 범페미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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