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 황예찬 기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이 잇달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자율배상에 나서는 모양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29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 기준안을 토대로 자율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ELS 가입자들은 자율배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조정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KB·신한까지 수용...5대 은행, 자율배상 본격 돌입
29일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이사회를 개최하고 홍콩H지수 ELS 손실 관련 자율배상 안건을 논의했다. 두 은행은 모두 금감원의 분조안에 따른 자율조정안을 결의하고 투자자에 대한 자율 배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의 불확실성 해소와 신뢰 회복을 위해 만기 손실이 확정됐거나 현재 손실 구간에 진입한 투자자를 대상으로 빠르게 보호조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기존 고객보호 전담 부서와 함께 자율조정협의회를 신설하겠다는 방침도 나란히 내놨다. 신설된 협의회에는 금융업 및 투자상품 관련 법령과 소비자보호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된다. 외부 전문 위원들은 투자자별 판매 과정상의 사실 관계와 개별 요소 등을 파악해 배상금액 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의 평생금융파트너로서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실천해 나가겠다”라며 “손실이 확정된 사례부터 순차적으로 신속한 배상 절차를 이행하고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4월부터 고객과 접촉해 배상 내용, 절차 등의 안내를 시작하고 배상비율 협의가 완료된 고객부터 배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이로써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5대 시중은행은 모두 금감원 분조안에 따라 자율배상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앞서 NH농협은행(28일)과 하나은행(27일), 우리은행(22일)도 각각 이사회를 열고 금감원의 분조안을 수용하기로 밝힌 바 있다.
◇ 과징금 리스크 피해갈까...가입자들 ‘원금배상’ 요구
이처럼 5대 은행이 모두 자율배상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금감원의 요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1일 분조안을 내놓으면서 “자율배상을 하면 과징금 등 제재 감경 사유로 고려하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에 따라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입증되면 은행은 전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내야 하는데, 자율배상에 나서면 해당 과징금 결정 시 감경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은행들은 과징금 리스크를 키우기보다 자율배상에 나서는 모양새다.
다만 이러한 은행들의 자율배상이 향후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콩H지수 ELS 가입자들은 여전히 금감원 분조안에 따른 자율배상안을 거부하며,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ELS 피해자모임은 29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번 집회는 지난 15일 NH농협은행 본점 앞에서 있었던 집회 이후 두 번째로 은행 본점 앞에서 진행된 집회다.
피해자모임은 은행권의 홍콩H지수 ELS 판매 자체를 사기로 본다. 피해자모임 측은 “배상에 관한 조치나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피해자들의 통장에 사기당한 금액이 들어와야 한다”라며 “전액 피해 보상과 피해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표명한 바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양정숙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DLF 사태 배상안보다 더 후퇴한 배상안”이라며 “은행에서 잘못된 일이 없었음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금감원이 내놓은 배상안은 어떤 경우에도 은행 책임이 50%를 넘기지 않는 것”이라며 “이복현 금감원장은 원금배상안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