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화도 없이 분뇨 청소”...경비노동자 괴롭히는 갑질

직장갑질119, 2023 경비노동자 갑질보고서 발행
초단기 계약·다단계 고용 구조로 고용불안 발생
모욕·부당지시 만연하지만 문제제기 못하는 구조

  • 기사입력 2023.03.16 16:48
  • 최종수정 2023.03.16 16:54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14일 서울 강남아파트 경비노동자가 관리소장의 갑질로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경비원은 2차 하청 단기계약 등 고용불안과 심각한 갑질에 노출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가운데 경비노동자를 비롯한 아파트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용불안과 갑질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가 나왔다.

경비노동자들이 욕설·모욕·부당지시에도 단기계약과 다단계 고용 구조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경비노동자들이 욕설·모욕·부당지시에도 단기계약과 다단계 고용 구조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 업무 비하부터 해고 종용까지...입주민 갑질 심각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9명을 심층면접해 정리한 갑질 피해 실태를 담은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16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심층면접에 참여한 9명의 공동주택 종사 노동자 전원이 입주민 갑질을 경험했다. 고성·모욕·외모 멸시는 물론 천한 업무라고 폄훼하거나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와 간섭 등이 사례로 확인됐다. 

경비대원 A씨는 “(자녀 앞에서) 대놓고 너 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비하한다”고 말했다. 

경비대원 B씨는 “아침 8시쯤 분리수거 차량이 오기 때문에 차를 옮겨달라고 직접 이야기했더니 쌍욕을 했다. 반장과 이야기하는 중에도 계속 삿대질을 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해고를 종용하거나 당사자에게 직접 해고를 빌미로 협박성 발언을 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났다. 그 배경에는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용역업체를 거쳐 간접고용으로 일하고 있고 1년 이하 단기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경비노동자가 극심한 고용불안과 해고·임금삭감·직장 내 괴롭힘 등 직장갑질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지적된다. 

실제로 심층면접에 참여한 9명 중 4명이 입주민들로부터 교체 및 해고 종용을 받았다고 답했다. 2명은 동료가 입주민 민원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9명 중 경비회사에 고용된 5명의 경비원은 모두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개월 단위 근로계약 체결자도 있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범위 명확화의 고용영향분석’에 따르면 응답자 3150명 중 94%가 1년 이하 단기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간접고용 비율은 9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됐다. 

◇ 갑질 근본은 간접 고용 구조·초단기 근로계약기간

경비노동자에게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하는 ‘원청 갑질’도 지적됐다. 심층면접에서도 9명 중 6명은 ‘원청 갑질’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경비대원 C씨는 “관리소장 지시로 갑자기 정화조 청소를 했다. 장화도 신지 않은 상태에서 분뇨가 발목까지 찼다. 당시 분뇨인줄도 모르고 1시간 넘게 작업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똥독’이 올라서 2주 넘게 약을 바르며 치료했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서 자살한 경비노동자가 남긴 유서에도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됐다. 10여 년간 근무해온 해당 경비원은 지난해 말 부임한 관리소장의 갑질로 힘들어했다고 전해진다. 유서에는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70대 청소노동자가 해고 통보를 받고 9일 자택에서 숨진 것도 관리소장의 갑질과 관련 있다고 적혀 있었다.

조사 결과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은 ㄱ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ㄴ업체 소속이다. 경비노동자는 ㄴ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ㄷ경비업체 소속이었다. 말하자면 위탁에 위탁을 한 구조 속에서 갑과 을이 발생한 셈이다. 

집장갑질119는 “두 사람이 같은 회사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아 경비노동자는 관리소장을 신고할 수조차 없었다. 자살한 경비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고용불안으로 갑질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용역회사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기간’ 관행을 꼽았다. 공동주택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주자 대표 회의 책임 강화,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가 제시됐다. 무엇보다 직접 고용 구조로의 전환이 강조됐다.

임득균 노무사는 “3·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 다단계 고용 구조, 다수의 입주민·관리사무소 등 수많은 갑들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 2014년, 2020년에도 갑질로 경비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입주민과 관리소장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했다. 입주민, 관리소장 등의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갑질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