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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주도한 베이비 부머, 기후위기 해소에도 앞장서야”

[에코페미니즘 인터뷰]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
새로운 기후시민의 등장...기후위기 만든 노년 세대의 책임감
기후위기는 자본주의 물결 만든 주역이 걷어낼 그늘
‘나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

  • 기사입력 2023.02.07 11:58
  • 최종수정 2023.02.07 15:21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인류의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요즘 여성건강, 생태위기, 제로웨이스트, 자원순환, 바른 먹거리와 함께 ‘에코페미니즘’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학(Ecology)과 여성주의(Feminism)의 합성어다. 자연해방과 여성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이 왜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일까? 

우먼타임스는 에코페미니즘이 왜 지금 주목해야 하는 가치인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일상에서 에코페미니즘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다. 60+기후행동의 활동과 기후위기 대응에 왜 노년층이 나서야 하는지, ‘에코 실버 세대’의 활동이 바꿔놓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편집자주]

녹색연합 상임대표이기도 한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37년 차 시민운동가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환경과 생태 공부를 시작했다. 과학에 대한 사고가 바뀌면서 인생관과 세계관도 전환됐다.
녹색연합 상임대표이기도 한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37년 차 시민운동가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환경과 생태 공부를 시작했다. 과학에 대한 사고가 바뀌면서 인생관과 세계관도 전환됐다.

지난해 1월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모였다. 손에는“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60+기후행동’ 창립식의 모습이다. 

연대와 책임이라는 목적의식에서 탄생한 이들의 등장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윤정숙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에코 실버 세대’가 기후정의 활동의 정면에 나선 이유와 활동들에 대해서 “당연한 책임”이라고 말했다.  

◇ 나의 전환의 계기는 ‘후쿠시마 참혹사’

윤정숙 대표는 37년 차 시민운동가다. 현재는 녹색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지만 오랫동안 여성운동가로 활동해왔다.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 창립 멤버로 상임대표까지 역임하며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2006년부터는 아름다운재단과 동그라미재단 이사를 맡으며 시민운동을 이어왔다. 현재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전환의 계기가 찾아온 건 아름다운 재단에 있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다. 

“그 사건이 저에게는 인생 전환의 계기였어요. 일, 철학, 가치관, 미래 활동이 전환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환경 공부에 집중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환경·생태 분야에 매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페미니즘처럼 환경 생태를 알게 되면서 세계관이 변했어요. 인생관의 변화가 수반될 정도로 자기 안에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거죠.” 

윤 대표는 당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면서 과학에 대한 사고 자체가 전환됐다고 했다. 핵발전소가 어떤 계기로든 사고로 연결되면 살아있는 모든 것, 인간뿐만 아니라 물, 숲, 하늘, 동물, 꽃이 다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과학이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처절하게 돌아보고 있을까 생각 들었어요. 우리들의 문명의 방식, 성장 중독적인 방식이 저에게 계속 질문으로 남았어요. 당시 나이가 50대 중반으로 들어섰을 때인데 그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럼에도 강력하게 ‘나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어요. 운동가로서의 인생 전환, 활동 전환이 필요했어요.”

윤 대표는 집요하게 이어지는 내적인 질문의 꼬리를 물며 몇 년간 계속 공부했다. 에코페미니즘, 생태학, 우리 사회의 거대한 전환을 공부를 하면서 ‘나의 전환’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나갔다. 그렇게 몇 년 후 그는 녹색연합에 들어갔다. 60살이 되던 해 이전까지 하지 않던 일인 ‘환경’을 주제로 운동조직의 대표로 들어간 것이다. 

머릿속에만 있던 지식과 약간의 문제의식만으로는 일할 수가 없었던 그는 현장에 다니면서 오감으로 생태를 감각했다. 울진의 산양 서식지에 가서 200만 년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생명을 보존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논란의 중심지인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과 사육곰 구출을 위한 현장에 갔다. 에코페미니즘과도 유연하게 연결되는 주제들이었다. 생태와 생명에 대한 감각이 민감하게 깨워지는 과정이었다. 운동이라는 건 지식과 이슈 파이팅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확고해졌다. 녹색연합에서 그는 현장의 절실함을 절절하게 느꼈다.

윤정숙 공동대표가 손주들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윤정숙 공동대표가 손주들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성장만큼의 그늘...모두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

60+기후행동의 탄생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기후위기 미래세대’는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기후위기는 모두가 당사자인 지금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라는 인식이다. 윤 대표는 그 모두에 포함되는 ‘우리 세대’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 세대는 탄소배출을 하면서 압축적인 산업화를 이뤘어요. 엄청난 물질적 풍요에는 엄청난 그늘이 따르는데 그동안 그늘을 안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괜찮아, 성장하니까’에 기댄 거죠. 그렇게 엄청난 산업 쓰레기를 만들고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세대가 되었어요. 우리 세대가 대학에 들어갔던 70년대는 처음으로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이 생기던 때였어요. 그때는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지 경제 성장의 신화 뒤에 따르는 부정의함, 불평등, 생태위기와 같은 그늘은 하나도 몰랐어요. 사실은 다른 길의 삶도 가능하다는 걸 잘 배우지 못한 세대 같아요.”

성장중독 상태로 살아온 50년 이상의 세월에 대한 후폭풍을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 그에 따르는 책임감. 무엇보다 미래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만 조명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왜 세대 간 갈등만 해야 할까, ‘세대연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작용했다. 

그런 마음을 뿌리 삼아 지난해 1월 1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최연소 60세 이상의 세대로 구성된 60+기후행동이 탄생했다. 창립식의 날짜도 장소도 허투루 선정한 게 아니었다. 불이 나서 ‘119’ 소방관이 출동하는 것과 같은 다급함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서 날짜를 선정했다. 노인들이 사회의 시혜자로 자리 잡은 전형적인 모습이 보여지는 장소로 통용되는 탑골공원은 원래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 봉화의 불이 붙은 장소였다. 그러한 의미 전환까지 생각했다. 

“60+기후행동의 전초는 3년 전 코로나 직전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러다 코로나로 논의가 잠시 중단되었는데 2021년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서 성명서를 온라인으로 돌렸어요. 닷새 정도 해보자 했는데 하루에 100명씩 서명이 들어왔어요.”

서명서 한 줄 멘트에는 ‘기다렸다’, ‘나서줘서 고맙다’, ‘그동안 근면 성실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산 게 잘 산 것 같지가 않다’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온 계층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해 기후행동의날 전날인 9월 23일 ‘60+기후행동을 시작해보려 한다’는 창립 준비 기자회견을 했다. 작은 겨자씨 같은 전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전무후무한 일이라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달력을 펴놓고 ‘60+ 월간 기후행동’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3월 3일 납세자의날 국회 앞에 모여서 ‘우리가 낸 세금을 기후위기에 써라’고 시위했다. 이어서 지구의날, 어린이날, 환경의날, 생명다양성의 날마다 사회적인 화두를 꺼냈다.

“60플러스 기후행동으로 민주주의를 다시 실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한번은 미국 기자가 연락이 왔어요. 한국처럼 막강한 부를 일군 나라에서 부를 일궈낸 사람들이 이건 잘못됐다고 유턴하자고 앞장서는 게 재미있고 궁금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장의 그늘을 말했어요. 성장은 그냥 되지 않아요. 성장하는 만큼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착취해야 하거든요. 기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고 지금 멈춰도 늦어요. 그런데 아직도 잘못된 에너지 개혁안들이 나오고 있죠. 막강한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렇게 해야 하나 싶어요.”

그래서 60+기후행동은 젊은 기후 시민의 뒷배가 되기로 했다. 이른다 ‘뒷배운동’이다. 청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부르면 행사, 후원회, 재판장까지 어디든 간다. 같이 연대하지만 때로는 뒤에서 기댈 언덕도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2030 청년층과 연결되고 있다. 반대로 그들의 자문위원은 10대 중학생부터 50대까지의 청년층이다.

2022년 1월 19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60+기후행동이 탄생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는 고정관념이 장착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년들이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2022년 1월 19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60+기후행동이 탄생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는 고정관념이 장착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년들이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60+기후행동은 최연소가 60살이다. 실버 에코 세대들이 모여서 외치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기후정의에 대한 것이다.
60+기후행동은 최연소가 60살이다. 실버 에코 세대들이 모여서 외치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기후정의에 대한 것이다.

◇ 사회적 상속은 기후시민으로서의 당연한 역할

60+기후행동은 운영위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고 있다. 교육과정에 젠더 관점이 들어가야 한다는 기준도 두고 있다. 운영위원회는 은퇴한 교사부터 수도원 원장, 목사, 중등교사 출신, 전현직 교사, 기자, 시인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함께 일하다 보니 디지털 리터러시도 올라가고 있다. 윤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서로 놀라면서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오프라인 모임의 모습도 놀라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국에서 120명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바로 나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돼 있는 기후시민들이었다. 60+기후행동은 현재 운영위원 포함 3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작년에는 ‘방탄노년단(BTN)’도 만들었다. 운영위원 20명 중 5명이 모여 만들었다. 악기와 노래를 연습할 연습실도 알아뒀다. 반백의 머리를 한 사람들은 왜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일까. 

“예쁜 강물과 시냇물에 대한 노래를 불러가면서 우리 세대의 굳어진 생태 감수성,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수성을 깨우는 거죠. 에코페미니즘과도 통하는데 융합을 통해 서로의 거울로 공명해가는 거예요. 에코페미니스트로서 그런 가치관과 관점이 이 활동을 관통하는 걸 많이 느껴요.”

60+기후행동은 올해 은퇴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사회적 상속’도 화두다. 산업화와 물질적 성장 시대에서 보상을 받은 세대가 기후민주주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이다. 젊은 기후시민 활동가의 개인적 운동의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커뮤니티가 커지고 유지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시니어 기후시민으로서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속이란 실제로 재산의 10%를 나누자는 것부터 가치관의 상속까지 다양한 차원을 아우른다. 결국 세대 간에 무엇을 나눌 것인지에 대한 논의인 셈이다. 

“우리 베이비 부머 세대는 마음만 먹으면 아파트도 늘릴 수 있었고 대학만 나오면 어디든지 취직이 됐어요. 물적 결실을 달콤하게 누린 세대죠. 그런데 우리가 산업화를 이룬 산업역군 인 한편 민주화 운동을 이룬 세대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불의나 부정의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해요. 뒤늦게 깨달았지만 성장주의 중독, 물신주의를 깊이 성찰하고 기후시민으로서 전환을 얘기해야 할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후민주주의 전환의 스텝을 밟는 것이에요. 이 세대에 태극기부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녹색태극기부대’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윤 대표는 제인 폰다를 예로 들었다. 2018년 스웨덴에서 2003년생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나왔다. 이듬해 82세의 폰다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폰다는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전선에 나서서 싸우는 걸 보고 통렬히 반성하면서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에 매주 금요일마다 4개월 동안 시위했다. 젊었을 때 반전운동 벌였던 배우는 은발의 나이가 되어서는 그린피스의 기후정의운동 프로젝트인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즈(Fire Drill Fridays)’ 운동에 참여하며 기후정의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기후위기 앞에서는 국경이 없어요. 그렇게 같이 목소리 내는 거예요. 우리 세대가 거대한 자본주의의 물결을 만들고 결국 그늘을 만들었지만 그늘을 걷어내는 양심과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이죠. 작은 물결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슬러서 얘기하고 전환을 이야기하고 그게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감이며 사회적인 상속입니다.”

우리는 세대는 달라도 기후위기 시대,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운명공동체다. 우리 사이의 연결을 기억하면 세대나 인종은 선을 나눌 기준이 되지 않는다. 생명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공존한다는 감각은 10살도 60살도 모두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으면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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