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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비동의간음죄’ 왜 필요하고 뭐가 문제인가

여가부, 강간죄 요건을 ‘폭행·협박→동의 여부’로 개정 추진
발표 반나절 만에 법무부 반대로 스스로 철회
권성동 의원 “여가부 폐지 명분을 스스로 증명”

  • 기사입력 2023.01.27 15:40
  • 최종수정 2023.01.27 15:44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라면 강간죄로 처벌하는 게 온당한가.

현행법으로는 당시의 상황과 경우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처벌할 수가 없다. 강간죄를 규정한 형법 제297조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바뀌지 않았다.

이 조항에 따라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저항이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강간죄가 적용되고 성폭력 피해가 인정됐다.

또 ‘비동의간음죄’가 이슈가 됐다. 비동의간음죄는 형법을 개정해서 ‘폭행과 협박’이 아닌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강간죄는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 형법 체계에서 오래 논란이 돼왔다. 여성계는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실제로 지난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비동의간음죄 입법을 추진했고 지난번(21대) 국회에서도 10건이나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반대와 신중론도 만만치 않고 충분한 논의 없이 회기가 만료되면서 입법까지 이뤄지지는 못했다.

◇여가부 비동의간음죄 추진 발표에서 철회까지

여성가족부는 26일 오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면서 법무부와 함께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자 스스로 반나절 만에 철회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 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 기본계획에 비동의간음죄 추진이 포함돼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 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 기본계획에 비동의간음죄 추진이 포함돼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여가부 브리핑에는 법무부 관계자도 참석했으나 비동의 간음죄 도입 배경을 묻는 기자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고,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이 대신 나서 필요성에 대해 답변을 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여가부 발표 9시간 후 “비동의 간음죄 관련 법 개정 계획이 없다”고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법무부는 “비동의간음죄는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법무부는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여가부 입장을 정면 반박했다.

친윤 핵심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가담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 법(비동의간음죄 처벌)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동의 여부를 무엇으로 확증할 수 있나”고 비판했다.

여가부의 비동의간음죄 추진에 직격탄을 날린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페이스북.
여가부의 비동의간음죄 추진에 직격탄을 날린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페이스북.

그는 “무엇보다 비동의간음죄는 성관계 시 ‘예’, ‘아니오’라는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성인남녀를 평가절하한다.이와 같은 일부 정치인의 왜곡된 훈육 의식이야말로 남녀갈등을 과열시킨 주범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부처가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여가부는 폐지의 명분을 스스로 증명했다”라고 여가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정부와 여당에 국민적 우려를 충분하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법 개정의 주무부서인 법무부와 여당 실세의 반대가 나오자 여가부는 이날 저녁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스스로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여가부는 “비동의간음죄 개정 검토와 관련해 정부는 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히고 “이 과제는 2015년 제1차 양성평등 기본계획부터 포함돼 논의돼온 과제로, 윤석열 정부에서 새롭게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물러섰다.

여가부가 비동의간음죄 도입 의사를 발표할 때까지 법무부 등 유관부처와 어느 정도까지 사전 협의나 교감을 거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비동의간음죄는 박근혜 정부의 강은희 여가부장관이 발표한 ‘제1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추진 계획이 담겼었다. 이어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제2차 기본계획에도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과 여가부, 법무부는 당정 간담회 등을 통해 비동의간음죄 신설에 전향적 입장이었다. 당시엔 법무부도 긍정적 기류였다.

◇비동의간음죄 필요성

비동의간음죄 도입 목적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실질적이고 진정한 보호라는 측면에서다. 찬성론자들은 성폭력 범죄에 있어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행위를 할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를 의미한다고 본다.

성행위가 상대방의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어도 성적 침해를 느끼는 경우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동의간음죄 도입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1~3월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66개 상담소의 강간피해 상담 사례를 분석한 적이 있다.

그 결과 1030명의 피해 사례 중 ‘직접적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성폭력 피해 사례’는 71.4%(735명)였다. ‘직접적 폭행·협박이 행사된 경우’는 전체 상담 사례의 28.6%(295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폭행·협박이 없었다 해도 피해자의 취약성 상태나 형편을 악용해 이뤄지는 성관계에서는 피해자가 자유롭고 자발적이고 명확한 동의를 하기가 어렵다는 측면이 있다.

이런 경우가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적·사회적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이거나, 수면 또는 가수면의 무방비 상태이거나, 무의식 상태이거나,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태, 장애인의 경우, 위압적인 가정폭력 상황 하에서의 부부 성관계, 금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경우, 상대방이 높은 권력의 위치에 있는 경우, 소문이 날 우려가 짐작되는 경우, 가해자의 체격이 월등하게 우월해 거부하다가는 다칠 우려를 느낄 경우, 가해자가 전과 전력이 있어서 보복이 두려운 경우등에서 이뤄지는 성관계다.

대표적인 국내 사례는 2018년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가 최종적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다. 이때 비동의간음죄가 거론됐다.

선진 외국들은 비동의간음죄를 채택한 나라가 많다. 영국, 독일, 스웨덴,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미국(11개 주) 등에서는 폭행과 협박이 없었어도 피해자의 명시적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강간죄 등으로 규정해 처벌한다.

비동의간음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간편하게 성관계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는 성관계 동의 앱까지 나왔다. 2020년 덴마크에서는 ‘iConsent’라는 앱이 나왔는데 남녀가 동의를 누르면 법원 서버에 동의 기록이 저장된다.

2021년 5월에는 국내에서도 유사한 앱이 나왔다. 현재 다운로드 건수는 550회다. 법적 효력은 없다.

국제법적 역할을 하는 국제규약은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7년 일반권고 제35호를 통해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한국 정부가 제출한 제8차 성평등 정책 보고서를 심의한 후, 강간죄 구성 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반대 입장

‘성적자기결정권’은 사실 모호한 개념이다. 내심 원치 않으면서도 거부 의사를 비치지 않고 참여한 성행위가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윤리적 문제는 되더라도 형사법상의 범죄 행위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은 업무나 고용, 지위 등에서 위계·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이미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동의 여부에 대한 증거 수집이나 채택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피고인의 자기 방어권 보장이 침해를 입을 수 있고, 대법원에서도 강간의 범주를 넓게 보고 있다는 점 등을 든다.

또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한 해외에서도 그 부작용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 수렴과 성폭력 범죄 처벌 법체계 전반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단순한 동의 여부가 성폭력범죄의 결정적 기준이 된다면 남녀 사이의 성적 소통과 행위에 대한 자율성을 침해하게 되고 국가가 지나치게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에 간섭하며 과잉형벌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비동의간음죄는 ‘Yes means Yes’ rule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2심과 대법원에서는 징역 3년 6월 유죄)는 이례적으로 판결 말미에 두 가지 룰(rule)을 거론하면서 비동의간음죄에 대한 입법 메시지를 던졌다.

바로 ‘No means No’룰과 ‘Yes means Yes’룰이다.

‘No means No’ 룰은 강압이나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면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이유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든 그 즉시 상대방은 당사자의 의사 표현을 존중해 성적 행위를 중단해야하며 이는 성관계 도중이더라도 적용된다고 본다.

반면 ‘Yes means Yes’ 룰은 한 걸음 더 엄격하게 나간 것으로 비동의간음죄의 이론이 된다. 상대방의 적극적인 승낙 표현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접촉은 성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어도, 승낙 의사 또한 밝히지 않았다면 성폭력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No means No’ 룰에서는 후에 성폭력 관련 분쟁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표현했음을 증명해야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Yes means Yes’ 룰에서는 반대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적극적인 승낙의 표현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무고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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