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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이 뭐냐고요?... 인간이 누리는 것들에 대한 근본적 질문"

[김현미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소장 인터뷰]
남성ㆍ성장중심 패러다임 아닌 생태주의로 눈 돌려야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로 나의 삶을 바꾸는 데서 시작

  • 기사입력 2023.01.27 13:24
  • 최종수정 2023.01.27 15:55

우먼타임스 = 곽은영 기자 

인류의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요즘 여성건강, 생태위기, 제로웨이스트, 자원순환, 바른 먹거리와 함께 ‘에코페미니즘’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에코페미니즘은 생태학(Ecology)과 여성주의(Feminism)의 합성어다. 자연해방과 여성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이 왜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일까? 

우먼타임스는 에코페미니즘이 왜 지금 주목해야 하는 가치인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일상에서 에코페미니즘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김현미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소장이다. 에코페미니즘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 개념인지 풀어본다. [편집자주]

김현미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소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우먼타임스)
김현미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소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까지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에코페미니즘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우먼타임스)

에코페미니즘 하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념도 어렵고 실천도 어렵다는 것이다. 김현미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당연하고 익숙하게 누려온 것들, 이를테면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 우리가 부를 이뤄온 방식,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삶의 세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질서가 편안하고 당연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질서를 역전시키고 다른 방식의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은 구조나 체제 안에서 차별과 억압을 경험한 사람이다. 구조적으로 억압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 환경문제에, 지구를 착취하는 문제에 더욱 공감하고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김현미 소장이 몸 담고 있는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는 NGO단체인 여성환경연대 부설로 설립된 곳이다. 처음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페미니스트 공부 모임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기후위기와 생태주의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지식공동체로 발전했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에서는 연구자와 활동가, 예술가, 농부 등이 모여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에코페미니즘은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나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한 갈래다. 1970년대부터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명명 체계가 생겼다. 그전에도 페미니즘 관점과 생태주의 관점을 결합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70년대에 들어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에코페미니즘과 기존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를까. 발전주의적 관점에서 이뤄진 기존의 페미니즘이 거대한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동의와 함께 ‘여성도 자본주의적 수혜를 받아야 한다’, ‘발전의 결과물과 똑같이 나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에코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발전주의가 안고 있는 폐해에 주목한다.

김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이란 인간을 비롯한 비인간 생명체가 자본주의 성장을 위한 도구와 상품이 되는 것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풍요로운 삶’이란 엘리트 남성 인간의 관점에서 내 욕구를 충족시키고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동식물을 종의 본질대로 살지 못하게 만들어요. 비육화하고 실험하고 유전자 조작을 하죠. 에코페미니즘은 바로 그것에 의문을 제기한 거예요.”

그래서 페미니즘 안에서도 에코페미니즘은 불편한 위치에 있다. 익숙한 삶의 세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니 불편한 지점이 생기는 것이다. 

“‘여성들이 발전에서 차별받지 않는 수혜자가 되길 원한다’가 페미니즘의 끝이 아니라는 거거든요.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켜서 만든 발전의 수혜물을 나누는 것은 좋은 파이가 아닌 ‘썩은 파이’를 나눠 먹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거니까요. 반생태주의적이고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많은 여성의 몸을 위험에 빠뜨리는 싹은 파이라는 거죠.”

김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에코페미니즘은 여전히 자유주의적 페미니즘과 같이 평등을 주장하지만 기존의 발전주의적 패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방식의 틀을 사회구성 비전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서 ‘누가 이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행위자인지’를 묻는다. 비인간종, 동식물, 대기, 물까지 하나의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한 행위자이자 행동 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김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의 핵심은 ‘종간 정의(Interspecies Justice)’에 있다고 했다. 과거 인간 중심주의에서 종들 간 정의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남녀 간 성별 정의, 젠더 정의도 중요하지만 ‘종간 정의’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 놓은 파괴의 결과물을 현재 누가 부담하고 있는지, 환경적 부정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남성중심적이고 성장중심적인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생태주의적 삶을 전망하는 거죠. 대안적 삶의 형식을 통한 ‘공거’, 즉 같이 살고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에요. 어쩌면 급진적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장황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 에코페미니즘은 어렵다? 자기돌봄의 확장일 뿐

김 소장은 많은 사람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구조적 문제’라 실천이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거창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에 두려움이 많아요. 동물권을 생각하고 인간과 비인간종의 공존과 공거까지 모색하는데 내가 고기를 먹어도 될까? 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에코페미니즘은 절대적 금욕주의나 무맥락적인 생태주의적 관점에 도달하자는 게 아니에요.”

흔히 에코페미니즘 하면 기후위기의 대안, 지구를 보살피는 것, 이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김 소장은 ‘자기돌봄과 지구돌봄을 연결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저만 하더라도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된 게 알러지가 많고 미세먼지에 내 몸이 영향을 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예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소비하면서 자기 몸이 파괴되고 있다는 경험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건 일종의 감정을 갖는 일이에요.”

그래서 에코페미니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운동을 하듯 어느 날 한 번에 해결되는 감각이 아니다. 법으로 풀어서 100%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건 많은 사람이 기존 라이프 스타일을 다른 ‘대안적 방식’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데 들어가는 시간성이다. 나 자신을 바꾸고 타인과 관계 맺으며 협력적 자아를 만들어 가는 자기 실천의 시간, 자신의 인생 경로 안에서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김현미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의 방점은 ‘종간 정의’에 찍혀 있다고 말한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종간 정의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먼타임스)
김현미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의 방점은 ‘종간 정의’에 찍혀 있다고 말한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종간 정의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먼타임스)

◇ 기후위기야말로 세대 간 불평등의 핵심

에코페미니즘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생태위기와 세대 간 불평등 문제에 주목한 건 아니었다. 초창기 에코페미니즘은 ‘재생산노동’의 가치에 주목하며 거대한 지구를 ‘어머니 지구’로 상상하고 은유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많은 노동을 주로 여성들이 했어요. ‘어머니 지구’ 역시 발전주의 시대에 착취당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죠. 다만 초창기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자연의 회복력, 포용성, 희생, 돌봄, 인내가 여성성을 연상시키는 메타포로 인식됐어요. 초창기의 '문화에코페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초창기의 '문화에코페미'에서는 여성에게 남성중심적인 가치관과는 다른 대안적 능력, 즉 돌봄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영성 치유'와 ‘어머니의 품으로’가 콘셉트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사회의 이분법적 구조를 해체하거나 체계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었고 이후 왜 남성은 개발과 발전주의를 의미하고 여성은 '어머니의 지구'로서 돌봄과 인내만 의미하느냐는 반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희생시키며 이익을 내는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발전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최근 에코페미니즘에서는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하면서 발전의 수혜를 입는 사람과 환경피해를 입는 사람이 다르다는 불공평과 불정의가 이야기되고 있다. 가뭄과 산불과 같은 거대 재해가 일어나고 인류가 죽음과 고통을 겪는 과정이 눈앞에서 목격되고 있다. 

“북반구 사람이 일생 동안 쓰는 에너지가 아프리카 사람의 500배인데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피해는 적도 부근, 동남아시아 섬에 가중되고 있어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자와 피해를 감당하는 자 사이가 지역적으로 분리돼 전지구적으로 불공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조사해보면 재난과 재앙의 피해자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들이에요. 그런 부분이 겹치다 보니 최근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젠더 정의를 생태정의와 환경정의와 결합해 사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미국에서 만들어져서 전 세계로 수출된 이 시스템의 문제는 대량 생산을 위해 각 종이 가지고 있는 맥락, 자기조절 능력, 자기 몸에 대한 자율적 결정, 재생산 권리를 빼앗는다는 데 있다. ‘너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야’라는 시각으로 종을 대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유를 계속 얻기 위해 강제 임신을 통해 소를 평생 임신 상태에 두면서 암컷의 몸을 경유해 자본주의 경제를 돌리는 행태가 있다. 닭은 어떨까. 닭가슴살을 만들기 위해서 부리를 망가뜨려 닭을 불구로 만들고 인간의 푸드 체인에 맞춰 30년은 살 수 있는 닭을 28일 만에 도살한다. 김 소장은 이러한 예를 들면서 수많은 비인간종이 제조된 생명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은 젠더 정의나 생태적 관점에서 모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에코페미니즘에는 생태부채 개념이 있어요. 미래세대나 미래 지구 환경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자원을 남용해버려 빚을 진 거죠. 생태부채는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 미래세대와 현재 나 사이에 있어요. 지금 세대는 살아있는 동안 쓴 화석연료에 부채감을 가지고 과소비한 걸 갚아나가야 해요. 기후위기야말로 세대 간 불평등의 핵심이죠.”

생태부채는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갚아야 할까? 김 소장은 에너지를 아끼고, 기후위기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탄소 포집이 되는 땅을 만들어서 지구에도 나에게도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존책임주의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기업의 환경적 윤리적 의식이 중요하다. 사용 후 책임을 소비자에게 넘길 것이 아니라 생산방식 안에 리사이클링 시스템, 저에너지 시스템, 탄소배출 저감 시스템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분명한 만큼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보존해야 지속가능한 소비 구조가 만들어진다.

◇ 중요한 건 ‘스테이 홈’...테크노 판타지 방관자 되지 말아야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김 소장은 에코페미니즘은 ‘테크노 판타지’에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로 재활용이 가능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예를 들어 인공 강수를 뿌리고 인공위성을 띄어서 지구 밖에서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판타지가 있어요. 그런데 에코페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가 ‘스테이 홈’이거든요. 저는 테크노 판타지를 믿되 방관자는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경험한 맥락 위에서, 내 삶의 장소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죠.”

집에 머물면서 집 주변, 내가 사는 나라를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생태부채를 갚아나가겠다는 태도다. 내가 망친 것에 책무성을 가지고 다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고치고 장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과학기술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타지는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공동체적 실천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대신 나와 동시적으로 연결되는 존재를 살펴야 한다. 삶의 연관성과 연결성을 보게 되면 존재를 분리해서 대상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호연결돼 있다는 건 상호 역량이 투사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공기가 나빠지면 나 역시 그 영향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에서는 테크노 판타지가 아닌 고대 지혜로부터 해결책을 배우라고 한다. 

“아프리카 인디언들이 강, 여우, 늑대를 친족 이름으로 부르잖아요. 킨십(kinship), 즉 친족이란 개념을 복원하는 거죠. 에코페미니스트는 친족이란 개념을 많이 쓰는데 혈연적 친족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죽음을 애도하고 축복해주는 관계라는 의미에서예요. 다양한 생활양식을 가진 문명권 사람들이 어떻게 협력하며 살아왔는지, 동물을 정복하지만 한편 그 신비로움에 경외심을 가지고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사유하는 방식을 고대 지혜로부터 배우는 거예요.”

아무리 21세기에 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심리적 감정적으로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건 이성, 과학, 합리가 아니다. 누구나 불안하고 불규칙한 감정을 안고 있다. 김 소장은 다양한 문화권과 인간이 살았던 고대로부터의 지혜를 감각하고 실천하면 우리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종간 차이와 이질성을 인정하고 생태계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발전주의와 경쟁주의 패러다임에 투사하고 남은 건 뭘까요? 뒤처지고 있다는 끊임없는 불안감과 미래 없음이에요. 한국인이 많이 느끼는 감정,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느끼는 이 감정은 어떤 부분에서는 발전의 결과가 뭐냐는 질문을 남기죠. 몸을 지치게 만들고 정서를 피폐하게 만든다면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구성 방식에 대한 반성과 재점검이 필요해요. 이건 이데올로기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삶, 거주지, 다음 세대와의 연결성과 책무감, 그러니까 기본적인 인간 윤리에 관한 것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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