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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100대명산 ⑧ 월출산] "호남 제일 그림같은 산"

설악산・주왕산과 함께 한국의 3대 바위산으로 꼽혀

  • 기사입력 2023.01.13 11:17
  • 최종수정 2023.02.01 09:55

우먼타임스 = 박상주 편집국장

남도는 막연한 그리움입니다. 한동안 가지 않으면 그리움이 쌓입니다. 최근 며칠 간 남도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설국으로 변한 남도의 산하가 눈에 어른거립니다. 배낭을 둘러메고 길을 나섭니다. 영암 월출산으로 향합니다. 

월출산은 설악산・주왕산과 함께 한국의 3대 바위산으로 꼽히는 산입니다. 월출산은 육형제바위 사자봉 구정봉 향로봉 등 기암괴석들로 그 근육질을 뽑냅니다. 너른 호남 벌판에 올려진 정교한 수석과도 같은 산입니다.

예부터 한 가닥 글줄이나 한다는 문인들은 앞다퉈 월출산을 예찬했습니다. 세조 때의 방랑시인 매월당 김시습은 “호남에서 제일 가는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산간을 오르더라”고 썼습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는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지리’에서 “월출산은 깨끗하고 수려하여 화성(火星)이 하늘에 오르는 산세”라고 평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 정상에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높다란 뿔 하나가 창공에 꽂혀 있어
남쪽 땅 진압하는 그 기세 당당하네.”

목포와 영암을 잇는 2번 국도를 따라 차를 달립니다. 눈을 뒤집어 쓴 망망한 벌판입니다. 어제까지 눈을 쏟아내던 하늘은 어느새 쾌청하게 갰습니다. 

영암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벌판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산의 표현대로 높다란 뿔 하나가 창공에 꽂혀 있습니다. 흰 눈을 머리에 인 암봉들의 기세가 자못 당당합니다. 저 설산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렙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경포대탐방지원센터입니다. 경포대삼거리를 지나 약수터~경포대능선삼거리~사자봉~구름다리~바람폭포~광암터삼거리~통천문삼거리~천황봉~바람재삼거리~경포대삼거리를 거쳐 경포대탐방지원센터로 원점 회귀하는 9킬로미터 여정입니다.

하얀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눈을 밟으며 산을 오릅니다. 경포대능선삼거리까지 2.4킬로미터는 등산 초보자들도 오를 수 있는 편안한 길입니다. 포근하게 월출산 품에 안깁니다. 멀찍이 바라볼 때의 우락부락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경포대능선삼거리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을 합니다. 왼쪽은 통천문삼거리를 거쳐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사자봉과 구름다리와 바람폭포를 둘러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월출산 등산지도를 보면 ‘매우 어려움’을 뜻하는 까만 색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월출산 전체 구간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한 난코스입니다. 눈까지 쌓여 있으니 더 위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른쪽 길을 택합니다.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를 꼭 건너 보고 싶었습니다. 사자봉에 가까이 갈수록 발자국이 점점 줄어듭니다. 어느 순간 한 두 사람의 발자국만 보입니다. 눈이 발목까지 올라옵니다. 가파른 오르막이 막아 섭니다. 다시 아찔한 내리막이 나타납니다. 

가파른 경사를 몇 번이나 오르내렸을까요. 마침내 계곡에 걸린 빨간색 구름다리가 나타납니다. 사자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길이 51미터에 너비 1미터의 구름다리입니다. 구름다리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사방으로 사자봉과 매봉과 시루봉과 연실봉이 솟구칩니다. 땅을 내려다보니 어질어질할 정도로 까마득한 협곡이 입을 벌립니다.

출렁출렁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를 건너 좁고 가파른 경사길을 얼마나 내려 갔을까요. 넓고 편안한 등산로를 만납니다. 천황사 쪽에서 올라오는 큰 등산로입니다. 삼삼오오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바람재 폭포는 은빛 빙벽으로 변했습니다. 한 줄기 거대한 고드름 앞에서 너도나도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해가 많이 기울었습니다. 조금 속도를 내야합니다. 광암터 삼거리를 지나면서는 능선길입니다. 계곡을 치고 올라오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매서운 바람은 눈부신 상고대를 빚어냅니다. 나무들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다이아몬드로 멋을 낸 듯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코 앞으로 통천문이 다가올 지점에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바위굴이 나옵니다. 하늘로 오르는 문이라는 통천문입니다. 통천문을 지나면 곧 월출산 정상이니 월출산 정상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침내 ‘창공에 꽂혀 있는 높다란 뿔’인 월출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호남에서 제일 가는 그림 같은 산’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영암평야와 나주평야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 한 복판으로 구비구비 영산강이 흐릅니다. 그 너머 어름은 목포이고, 화순이고, 나주이고, 강진일 것입니다. 

정상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습니다. 겨울철에 큰 산의 정상에 남아 있기엔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갑자기 거센 돌풍이 몰아칩니다. 조금 전까지 파랗기만 하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카만 눈구름으로 덮입니다. 정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서둘러 셀카로 인증샷을 찍고는 하산을 시작합니다. 

눈발이 폭설로 변합니다. 폭설은 앞선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을 삽시간에 지워버립니다. 살짝 걱정이 됩니다. 초행길에 악천후를 만나면 아무리 산에 익숙한 사람도 겁이 나게 마련입니다. 

바람재삼거리까지 왔습니다. 눈 앞에 구정봉이 유혹을 하지만 다음을 기약합니다. 눈을 뒤집어 쓴 이정표가 경포대삼거리까지 1.2킬로미터라고 안내를 해줍니다.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그 정도 거리라면 크게 겁을 집어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경포대 삼거리 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아는 길입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옵니다. 그러고보니 점심도 거른 채 산을 탔습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눈발을 뒤집어 쓰면서 참치 캔 하나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습니다. 에너지를 보충하니 마음이 한결 느긋합니다.

아름다리 나무들로 무성한 계곡길로 들어섭니다.  몰아치던 폭설도 그 매서움을 누그러트립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 위에 발자국을 새로 내면서 걷습니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인 푸른 조릿대들의 사열을 받으면서 걷습니다. 한 겨울 월출산의 품은 참 포근하고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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