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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안전진단] ② 지옥철에 시달리는 일상 언제까지

일상 속 안전 위협하는 10대 리스크 점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안전시스템 살펴봐야

  • 기사입력 2022.12.19 15:23
  • 최종수정 2023.02.01 19:01

우먼타임스 = 이한 기자

<편집자 주>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세상”이라고 말입니다. 재난과 사고, 범죄 같은 위험 요소가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안전 문제는 이제 뉴스 속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닙니다. 이태원이나 세월호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 폭우나 홍수 또는 지진 등 뜻밖의 재난, 죄 없는 사람을 덮치는 범죄, 역사 속 이슈로만 생각했던 전쟁, 식량난과 에너지난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한민국은 정말 안전하고 당신의 가족은 언제나 편안할까요?

일상 속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사고를 10가지 주제로 나눠 짚어보고 해결책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입니다. 당신도 좁은 곳에서 사람 틈에 갇혀본 적 있나요?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검색창에 그 단어를 검색해보면 관련 기사가 끝없이 이어진다. 올해 1월에는 당시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근하면서 ‘지옥철을 체험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수도권 광역 교통망 개선 공약을 발표하기 전 직접 붐비는 지하철을 체험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12월 1일 서울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모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장소와 등장인물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지난 12월 1일 서울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모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장소와 등장인물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붐비는 지하철’은 누군가에겐 일상이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덜했던 1990년대에는 승강장에서 승객을 열차 안으로 밀어 넣는 이른바 ‘푸시맨’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이런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수도권 출퇴근 지하철은 여전히 ‘초만원’이다. 기자도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 “꽉 찬 지하철 갑갑해...나도 위험할까봐 두렵다”

‘지옥철’에서는 팔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는 사람 중 일부는 “예전에는 그냥 심리적으로만 갑갑했는데 요즘에는 종종 두렵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이 몰려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후에는 특히 그렇다고 했다.

서울 삼성동에서 9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홍대 방향으로 2호선 환승해 출근하는 박모씨(43세)도 그런 경우다. 박씨는 “앞뒤 좌우로 사람이 바짝 붙어 있으면 어떤 날은 팔도 제대로 못 움직인다. 들고 있는 가방이 다른 사람에게 닿아 불편할까 싶어 바꿔 들려고 해도 그것조차 어려운 날이 많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태원 압사 사고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만원 전철에 두려움이 생겨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출근한다”고 했다.

박씨는 사람에 밀렸던 과거 상황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고 했다. 그는 “오래 전 여의도 불꽃축제에 갔다가 사람이 많아 지하철역 계단에서 인파에 갇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신각 타종행사나 연말 강남역 등 인파가 몰리는 곳에 이제는 안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윤모씨(39세)는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이 심리적으로만 갑갑한 게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씨는 “평소에도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사람이 많은 경우가 있다”면서 “숨이 턱 막힐만큼 만큼 갑갑한 순간도 있는데 최근 사고 소식을 듣고 나서는 그 갑갑함이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말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으로 잠실에서 을지로까지 출퇴근하는 최모씨(34세)는 평소 만원 지하철은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사람이 늘 많아 어렵다고 했다, 최씨는 “사람이 많으면 한 대 보내고 후속 열차를 타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역이라 요즘은 늘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최씨는 과밀 문화에 상대적으로 둔감했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예전에는 스탠딩 공연장에서 옆 사람과 밀고 밀리면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밀면서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하거나 앞사람을 밀면서 빨리 가려고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 몰리는 안전 리스크

대도시에는 사람이 많다. 서울도 그렇다. 수년간 이어진 집값 오름세 등으로 서울 인구는 과거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943만여 명(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기준)으로 많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며 여기에 경기도 인구 1358만여 명을 더하면 수도권에는 2300만명 넘는 사람이 산다.

이런 상황에서 만원 전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걸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한 량 정원은 160명이고 실내 넓이는 55㎡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1㎡에 2.9명 정도가 적절한 상태다. 하지만 (2021년 기준) 서울지하철 혼잡 구간 중 하나인 9호선 ‘노량진→동작’ 구간의 경우 한 량에 296명이 탑승해 정원의 185%를 기록했다(평일 출퇴근 시간대 최고 혼잡도 기준). 당시 이 전동차 ㎡당 인원은 5.4명이다.

조선일보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일보가 서울교통공사 철도통계연보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동작 구간의 오전 8시 혼잡도는 179%에 달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몰리는 일은 지하철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세훈 교수 연구팀(도시설계연구실)은 지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서울시 군중 밀도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도로 폭 5m 미만, 길이 30m 이상인 좁은 도로 중에서 생활인구가 상대적으로 높고 역세권에서 반경 200m 이내인 곳을 추렸다. 그 결과 ‘잠재적 과밀 도로’가 강남역과 홍대입구 등 14곳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내용은 KBS와 채널A등 방송 뉴스를 통해서도 보도됐다.

지난 10월 29일 사고 당시 이태원 상황은 어땠을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당시 해당 골목 밀도는 제곱미터(㎡)당 6명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골목 등기부상 넓이가 160㎡이고 참사 당시 이곳에 1천 명 넘는 인파가 몰린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골목에 1천 명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당 6.25명이라다. 전문가들은 1㎡에 6명 이상이면 압사 사고 위험이 크다고 본다.

'한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고 위험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한편에서는 '과밀이 위험 요소인 건 맞지만 지난 이태원 참사는 안전 시스템 운용 문제와 연계해 살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픽사베이)
'한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고 위험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만 한편에서는 '과밀이 위험 요소인 건 맞지만 지난 이태원 참사는 안전 시스템 운용 문제와 연계해 살펴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픽사베이)

◇ 안전 관련 대책·시스템 꼼꼼하게 챙겨야

전문가들은 과밀 환경에 너무 익숙해지지 말고 위험 요소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난 관리 전문가인 줄리엣 카이엠 전 미국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지난 10월 CNN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서울 사람들은 붐비는 공간에 익숙해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붐비는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특정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에 익숙하다는 분석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1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그 안에서도 교통 등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우리는 어느새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졌다”고 분석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거시적·미시적 고민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연합뉴스에 만원 지하철 등을 언급하면서 “일상이 되다 보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과밀 문제에 대해 “인파가 많이 몰린다고 무조건 위험하지는 않다”고 전제하면서 “제야의 종소리 타종 행사는 서울시가 안전에 각별하게 신경을 써 참가 인원이 많은데도 위험 방지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성공적 사례다. 이 같은 모델을 토대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현장이 안전할 수 있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이태원 참사를 모두 과밀 현상과 연계해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옥철’이나 역대 다른 핼러윈 행사에도 사람이 많이 몰리지만 보통 큰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평소에 잘 작동하던 안전 시스템이 왜 이번에 붕괴했는지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민 모두 관련 인식을 높이고 과밀 환경에 대한 대책을 꼼꼼하게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지난 11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와 국민 모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압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간 안전 대책도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이송규 협회장은 “이번 사고로 생긴 학습효과로 정부는 과밀 환경에 대한 대책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연재 계획

1회 : 당신 가족은 무사한가요?

2회 : 지옥철에 시달리는 일상 언제까지

3회 : 한반도, 지진 안전 지대 아니다?

4회 : 널뛰는 날씨에 망가지는 일상

5회 : 생필품이 당신의 안전을 노린다

6회 : 정직한 몸 흔드는 위험한 음식들

7회 : 안전지대란 없다... 신당역 그 다음은?

8회 : 매년 2천명이 회사에서 사라진다

9회 :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위험한 불

10회 : 기후변화에 달라진 대한민국 작물지도

11회 : 폰 멈추면 일상도 멈춘다

12회 :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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