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인 청소년기에 교육과정 안에 ‘성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들어갔을 때 발생할 여러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했다.”
성소수자를 언급한다는 자체가 청소년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준다는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육부가 9일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 통합사회 과목과 도덕 과목 부분에서 ‘성소수자’와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삭제됐다. ‘교육과정’은 학교 수업의 가이드라인으로 앞으로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된다. 이 개정안이 확정된다면 2025학년도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성소수자라는 표현은 사라진다. 교육과정이 전면 개정되는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교육부가 행정예고한 교육과정 개정안 통합사회 과목에는 기존 교육과정에 담긴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소수자 등’이라는 표현이 ‘성별, 연령, 인종,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사회구성원 등’으로 바뀌었다. ‘성소수자’라는 표현이 아예 빠지며 ‘차별받는 사회구성원’ 중에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은 사라진 것이다.
도덕 과목에서는 기존의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뀌었다. ‘올바른 성평등 의식을 내면화’라는 표현이 ‘성에 대한 편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진보적 인권 및 여성단체들이, ‘양성평등’이란 용어는 보수진영이 주장하면서 두 용어는 대립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양성평등’이란 용어를 써왔다. 지자체들은 ‘성평등’이란 표현이 들어간 부서 명칭을 ‘양성평등’으로 바꿔가고 있는 추세다.
‘양성평등’은 성별을 남자와 여자로만 구분하고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나 성전환,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보수 단체가 중심에 있다. 반면 ‘성평등’은 현대사회에서 꼭 남자와 여자가 아닌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만큼 모든 성을 평등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권단체들은 ‘양성평등’이란 용어 자체가 성적 다양성을 배제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의식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용어 표기에서의 진영 간 갈등을 우려해 아예 두 표기 자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존 교육과정에서 쓰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라는 표현 중 ‘재생산’은 ‘생식’으로 수정됐다. ‘재생산’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여성단체들은 ‘생식’으로 표현한다면 권리 측면보다는 임신·출산을 위한 개인의 건강 에만 초점이 맞춰진다고 비판한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성평등, 성소수자와 관련된 문제는 상이한 의견이 많이 제시됐고, 교육부가 전문성이 있거나 직언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협의를 거쳐 우리 국민들이 또는 학부모들이 우려하지 않는 수준 범위 내에서 반영됐으면 좋겠다 하는 관점에서 조정·보완됐다”고 설명했다.
개정 교육과정은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성 정체성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을 더욱 조장할 거라는 비판과 반발이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조직국장도 “사회에서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일상에서 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표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성차별을 마치 개인이 편견을 갖지 않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보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