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성과 산업] ⑪ 최초의 헤드셋을 장착한 ‘전화교환원’

평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근무
1980년대 자동식 전화 등장으로 자연스레 사라져

  • 기사입력 2022.07.07 09:15

우먼타임스 = 최인영 기자

“어느 지역 몇 번을 연결해드릴까요?”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한국 최초의 공중전화 ‘덕률풍’이 설치됐다. 이를 시작으로 교환시설을 갖춘 전화소가 개성과 평양, 수원 등으로 확대되며, 3년 만인 1905년에는 개인전화 가입자 수가 80명까지 늘었다.

1960년대 전화교환원. (인터넷 커뮤니티)
1960년대 전화교환원. (인터넷 커뮤니티)

당시 전화기는 핸들을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는 ‘자석식(磁石式)’과 전화기를 들면 교환원이 나오는 ‘공전식(共電式)’ 등 중간에 전화를 연결시켜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들을 ‘전화교환원’이라고 불렀다.

◇ 예민한 청각과 명량한 목소리 필수...키는 141cm 이상

전화 사업 초기 전화교환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그러다 1920년대 이후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고객을 응대해야한다는 직업 특성상 여성이 전화교환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화교환원 조건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구분을 위해 청각이 예민해야 했다. 또 목소리가 명랑해야 하고 나이는 15~20세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전화 교환기 높이에 따라 당시 도량형으로 4척 7촌(약 141cm)의 키를 가진 사람이 응시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전화교환원. (인터넷 커뮤니티)
1960년대 전화교환원. (인터넷 커뮤니티)

전화교환원의 근무시간은 평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였다. 교환원 한명 당 하루 평균 고객은 200명 이상이었으며, 통화량은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까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업무는 고객이 몇 번과 연결시켜달라고 요청하면, 해당 코드를 상대방 전화와 연결시켜주는 식이다. 이에 장거리 전화의 경우 전화선을 따라 교환대가 있는 여러 읍면단위의 지점을 통해야 해서 통화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통화를 하는 중에 통신 장애로 전화가 끊기는 경우도 많아서, 고객의 불평을 받아내기도 했다.

◇ 70년대에 교환원 거치지 않는 자동식 전화기 등장

1971년 교환원 중개 없이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걸 수 있는 자동식 전화가 개통됐다. 이에 전화교환원을 거치는 수동식 전화기는 ‘흑통’, 교환원 없이 가입자가 직접 전화를 걸 수 있는 자동식 전화기를 ‘백통’이라 불렀다.

백통은 당시 신청을 해도 한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할 정도로 귀했으며,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 부를 상징하는 대표 물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전화 수요와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화가 대중적 통신매체로 자리잡게 되었고, 1987년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렸다. 이로써 수동식 전화는 점차 국민들에게 외면 받게 되었고, 전화교환원도 사라지게 됐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만 안 본 뉴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