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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공중화장실, '남녀 공용'으로 회귀한다

남·녀·장애인·성 소수자가 함께 쓰는 화장실 설치는 세계적 추세
성공회대가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설치
국내엔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 아직 요원해

  • 기사입력 2022.03.19 10:10
  • 최종수정 2022.03.19 10:13

우먼타임스 = 천지인 기자

휠체어를 탄 채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장애 아버지를 모시는 딸이나 그 반대의 경우, 어린 딸과 함께 외출한 아빠,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성 정체성을 겪고 있는 성 소수자들은 화장실 앞에서 망설여야 한다. 자칫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성중립 화장실’(all gender restroom unisex toilet)은 아직 국내엔 생소한 개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남녀로 나뉘어진 화장실이거나 별도의 장애인 화장실 정도다. 하지만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강남역 살인 사건의 경우에서처럼 거꾸로 남녀공용 화장실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중립 화장실’이란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 장애인 등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말한다. 그런 표시가 붙어있다.

그런 화장실이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16일 성공회대에 만들어졌다. 학교측은 ‘모두의 화장실’이라고 이름 붙였다. 화장실에 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부터 차별받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다.

성공회대 총학생회는 16일 '모두의 화장실' 준공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성중립화장실이 확산되기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성공회대 총학생회는 16일 '모두의 화장실' 준공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성중립화장실이 확산되기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성공회대 본부와 총학생회는 이날 서울 구로구 캠퍼스 내 강의동으로 쓰이는 새천년관 앞에서 모두의 화장실 준공을 알리는 기자회견까지 개최했다.

총학생회는 “수많은 성 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시민들은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외치고 있으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모두의 화장실은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어떤 사유로든 배제되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더욱더 널리 알려지고, 설치돼 차별 없는 한국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공회대가 만든 '모두의 화장실' 표식과 내부 설치물. (성공회대)
성공회대가 만든 '모두의 화장실' 표식과 내부 설치물. (성공회대)

식당이 있는 새천년관 지하 1층에 들어서는 ‘모두의 화장실’은 남성화장실을 개조한 것으로 많은 장치가 설치돼 있다. 음성지원과 자동문, 자동닫힘 버튼, 점자블록,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접히는 거울, 손잡이 등 장애인 편의 기능을 갖췄고 샤워기, 유아용 변기 커버와 기저귀 교환대, 생리컵을 처리할 수 있는 소형 세면대, 접이식 의자, 외부 비상통화 장치 등이 설치됐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표시와 함께 남자 여자 장애인 표식이 그려져 있다.

외국이 성 소수자 인권 차원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성중립화장실’보다 더 확대된 개념의 공간이다. 트랜스젠더, 남녀로 정의되지 않는 성 소수자를 비롯해 휠체어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생리컵을 쓰는 여성,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 등 평소 공중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게 한 명씩 들어가서 사용하게 했다.

성공회대 학생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는 지난해 5월 모두의 화장실 설치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처음에는 학교 측이 예산과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소극적이었다. 학생회는 대자보·현수막 등을 게시하고 학교 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학교의 결단을 이끌어냈다.

[성중립 화장실은 세계적 추세]

미국은 2015년 백악관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된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됐고 스웨덴은 성중립 화장실이 전체 공공 화장실의 70%나 된다. 북유럽 공중화장실은 이미 상당수가 성별 구분이 없다.

반면,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라 일부 인권단체 사무실 등에만 설치돼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과천시장애인복지관 등을 비롯해 일부 시민단체와 민간 건물에 있다.

성중립 화장실은 21세기 들어와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성 소수자의 인권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법적으로 성중립화장실 설치를 명문화한 곳도 많다. 미국 백악관에도 2015년에 성중립 화장실이 생겼다. 미국에는 70만 명의 트랜스젠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억2000만 인구의 미국에서 소수인 70만 명을 위해 이같이 공공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주변의 반발이 두려워 화장실 이용에 애를 먹거나 봉변을 당하곤 한다.

적어도 2000년부터 미국 내 대학 캠퍼스와 레스토랑, 도시 등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대학 150군데가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했고, 뉴욕은 2016년에 공중화장실에 남녀 성구분을 없애는 조례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외국의 성중립 화장실 표식들. 
외국의 성중립 화장실 표식들. 

화장실의 역사가 (남성 위주의) 남녀 공용-남녀 분리-남녀 공용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 화장실의 남녀 분리는 여성 인권의 문제였다. 1800년대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남녀로 나뉘어 있지 않았거나 남성 전용 밖에 없었다. 188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처음으로 기업에 여직원 전용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1920년대 들며 다른 주에서도 이와 같은 법률이 제정돼 남녀별 공중화장실이 대중화됐다.

현대에 들어서는 공공건물에서 남녀 화장실 설치 비율을 여성 화장실이 훨씬 많도록 규정하는 게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다시 화장실을 남녀구별 없이 통합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남녀 겸용 화장실을 의무화하도록 법이 바뀌어가고 있다.

성중립 화장실에 문제점은 있다. 여성들이 이용을 꺼리거나 성범죄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 성공회대는 ‘여성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모두의 화장실’을 1인용으로 했고 수시로 불법촬영 카메라를 탐지하는 검사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없다.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보다는 성범죄 등에 대해 훨씬 민감한 국내 정서상 반대 의견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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