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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부그룹 前 집주인’ 성범죄자 신분에도 ‘회장’ 노릇

김준기 전 회장, ‘미등기’로 남아 돈·명예 누려

  • 기사입력 2021.10.29 16:48
  • 최종수정 2021.10.29 17:20

[우먼타임스 = 이동림 기자] 

“여비서 성추행 의혹에 연루되면서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재벌총수가 집행유예(불구속) 기간에 ‘미등기’로 경영에 참여한 것도 모자라 돈·명예를 누리면서 책임은 안지는 비정상적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현 DB그룹) 회장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이 그렇다. 김 전 회장이 불구속 신분에도 불구하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서다. 그는 올해 6월말 현재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DB와 DB하이텍에 각각 ‘창업회장’이라는 직위로 미등기 임원에 등재돼 있다. 두 회사는 김 전 회장의 담당업무가 ‘경영자문’이라고 공시했지만 실질적으로 복직된 상태라 해도 무방하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측은 “김 전 회장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큰 획을 그어 온 분”이라며 “그의 경험과 안목이 회사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고 직위도 갖고 있는데 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명은 ‘눈 가리고 아웅식’의 논리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사진=동부그룹]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사진=동부그룹]

물론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한 전례는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 등은 무보수·비상근·미등기 임원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에 보수를 수령했거나 이 기간에 슬그머니 복직해 논란을 빚은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성범죄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된 총수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는 2017년 9월 자신의 여성 비서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의혹으로 피소되자 동부그룹 회장 직에서 사임했고, 2019년 10월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인천국제공항에서 긴급 체포된 후 구속 송치됐다.

법원은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에 각 5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집행유예는 형집행(수감)을 면제한다는 처분으로 이 기간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경우 선고받은 형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은 현재 회사 경영 참여는 물론 ‘창업회장’이라는 직위로 미등기 임원에 등재돼 있다. 미등기 임원은 오너인데도 경영책임은 지지 않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만 진력하는 성향을 보인다. 법적으로 책임질 일 등 궂은일은 마다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 일에 양보하는 법이 없다.

재벌 총수의 무책임경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재벌의 총수에 해당하는데도 미등기 상태로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인물로는 박성수 이랜드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이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이만득 삼천리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유경선 유진 회장도 마찬가지다.

상법은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통해 주식회사를 운영하도록 하고 이사를 선임해 등기부에 등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사 경영과 관련한 법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상당수 재벌 총수들은 집행유예 신분으로 미등기 임원으로 남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막강 언론사의 논설주간은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살아온 재벌에게 여론을 신경 쓰지 말라며 이렇게 조언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설마 ‘동부그룹 전(前) 집주인’ 께서도 조용해지길 기다리시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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