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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용어 읽기] ⑤미소지니(Misogyny)를 아십니까

  • 기사입력 2021.10.18 17:06
  • 최종수정 2021.10.19 09:17

[우먼타임스 = 김성은 기자]

페미니즘이 3~4년 전부터 지구촌 사회의 강력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용어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용어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페미니즘의 사상을 말하는 고전적 학술 용어들도 있고, 시대상이나 성별 갈등과 혐오를 반영하는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우먼타임스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페미니즘 관련 용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연재를 한다. (편집자 주)

지난 2020년 6월 온라인에서 '묻지마 폭행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포스트잇 시위가 진행됐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지난 2020년 6월 온라인에서 '묻지마 폭행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포스트잇 시위가 진행됐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얼마 전 KBS 드라마 ‘빨강구두’가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극중 권혜빈(정유민)과 윤현석(신정윤)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석이 혜빈에게 ‘된장녀’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된장녀’란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유행어다.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명품을 구입하는 등 사치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 같은 ‘여성혐오적 단어’가 공영방송에서 사용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처음 ‘여성혐오’ 조짐이 보인 것은 온라인에서 성별 집단 논쟁이 벌어진 1990년대다. 1994년 군가산점 제도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발생했고,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해 혐오적 발언을 쏟아냈다. 

‘여성혐오’란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을 뜻한다. 한국의 여성학계에서는 여성혐오를 misogyny(미소지니)라고 한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 잭 홀런드는 기원전 8세기에 지중해에서 여성 혐오가 태어났다고도 말한다. 이때 시인 헤시오도스의 손에서 ‘판도라 신화’가 탄생해 여성은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죄인이 되었고 ‘모든 옛이야기와 철학이 벌을 내리는’ 존재로서 경멸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 저자 박찬효 교수는 여성혐오 현상은 최근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여성·여성집단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재편된 결과라고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제도적 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이수연·윤지소·장혜경·김수아 2018)는 여성혐오에 대해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가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분노로, 점점 더 평등해지는 젠더관계에 대한 남성의 부정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성혐오는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2010년 이후 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이 여성혐오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표현의 수위도 점점 높아져 비상식적이며 극단적인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여성혐오 표현의 구체적 사례로는 ‘김치년(한국 여성)’ ‘스시년(일본 여성)’ ‘짱깨년(중국 여성)’ ‘서양년’ ‘창녀’ ‘메갈(여성) ‘꼴페미나치’ ‘페미니즘 좌석(임산부 배려석)’ ‘성형충’ 등 다양하다.

여성혐오는 성 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상,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성혐오 발언은 여성을 폭력으로 위협하거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목적으로 여성을 비하, 대상화하고 종속시키려고 한다. 여성이라는 전통적 고정관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느끼는 극단적 적대감을 드러낸다. 

수년 전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한 레드벨벳의 멤버 아이린에게 남성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아이린이 팬 미팅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밝힌 후 디시인사이드 등의 커뮤니티에는 “그 책을 읽은 것 자체가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배신감 느낀다” “오늘부토 탈덕(팬을 그만두는 일)한다” “니 팬들 중 상당수가 남자들임을 명심해라” 등의 비난은 물론 아이린의 사진을 불태우는 인증사진까지 올라오는 등 반응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여성혐오는 성차별의 극단적 형태다. 여성혐오자들은 가부장적 권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한다.  

여성계는 여성혐오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말한다.  

올해는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다. 지난 7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올해는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다. 지난 7월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피의자는 2016년 7월 16일 저녁 이 식당 주방에서 흉기를 갖고 나와 배회하다 인근 상가 건물 2층 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피해 여성은 이 건물 1층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에 들렀다가 김씨에게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피의자는 경찰에서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왔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조현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실제 진단서와 진료 기록을 통해 정신질환을 겪고 있음이 확인됐다. 

일각에선 이 사건이 조현병이 유발한 '묻지마' 범죄일 뿐 여성혐오가 원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여성계는 분명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말한다. 

피의자는 범행 장소를 선택한 후 1시간 이상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고 6명의 남성은 모두 그냥 보냈다.  

당시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는 “그냥 아무 사람이 아니라 ‘여성 중 아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 사건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며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폭력이면 잠재적 피해자의 범위가 넓어져 내 문제로 여겨질 가능성이 낮지만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과 같이 특정 집단을 향한 범죄가 빈발하면,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당장 ‘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배은경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진짜 조현병 증상 때문에 생긴 거라고 보면 오히려 여성혐오가 작동한 무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를 했을 때 보인 공격성이라는 것이 여성을 향하게 되는 그 무의식적 구조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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