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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노출은 싫다” 독일 여자 체조 선수들의 반란

독일 여자체조 대표팀, 삼각라인 수영복(레오타드) 거부
하체를 가리는 유니타드 유니폼 착용
노르웨이 여자비치핸드볼 선수들도 반바지 입고 벌금 내

  • 기사입력 2021.07.27 00:01
  • 최종수정 2021.07.27 17:10

우먼타임스 = 김성은 기자

25일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체조 예선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경기 결과에 불복한 반란이 아니다. 유니폼의 반란이다.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이 경기장에 등장하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몸통부터 발목 끝까지 가리는 아래위가 이어진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보통 기계체조 선수들은 원피스 수영복 모양으로 삼각 팬티 라인이 있는 레오타드 유니폼을 입는다. 당연히 하반신 노출이 심하다.

팔다리가 전부 노출됐던 기존 의상과는 달리 양팔만 보여 오히려 절제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이런 의상을 입은 여자 기계체조 팀은 독일뿐이었다.

긴 바지를 입고 기념촬영한 독일 여자체조 대표팀. (파울린 쉬퍼 선수 SNS)
긴 바지를 입고 기념촬영한 독일 여자체조 대표팀. (파울린 쉬퍼 선수 SNS)

독일 대표팀의 파울린 쉬퍼는 2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림픽 훈련 모습 사진을 올리고는 “우리 팀의 새 옷이 어떤가요?”라고 썼다. 반응은 매우 좋았다. 국제체조연맹(FIG)를 비롯해 1만30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대표팀 소속 사라 보스 선수는 23일 연습 직후 가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땐 노출 심한 유니폼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춘기가 오고 생리가 시작되면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자이츠 선수는 “모든 체조 선수들은 편안하고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경기복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여성,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입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일 여자 대표팀이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건 올림픽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유럽 체조 선수권대회에서도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독일체조연맹은 “새 유니폼은 스포츠계 성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25일 도쿄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 원피스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 대신 발목까지 가리는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다. (연합뉴스)
25일 도쿄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독일 여자 체조 대표팀. 원피스 수영복 형태의 레오타드 대신 발목까지 가리는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었다. (연합뉴스)

국제체조연맹(FIG) 규정에 따르면 여자 체조 선수는 몸 전체를 가리는 유니폼을 입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타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관행은 계속돼 왔다.

독일 체조 선수들이 기존의 익숙한 레오타드 대신 유니타드를 선택한 건, 자신들이 ‘성적 대상’으로 비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여자 체조 선수들은 공중과 평균대에서 점프, 회전, 물구나무서기 등 몸으로 고난이도 연기를 보여준다. 품이 넉넉한 옷보다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이 연기하기에 더 좋기는 하다. 그런데 수영복 패션 같은 의상으로 인해 관객은 ‘기술’보다 ‘몸매’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선수들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독일 체조연맹은 선수들의 뜻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들의 결정은 2018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미국 전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의 성범죄 사건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래리 나사르는 30년간 미국 체조선수 150여 명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성폭력 성추행을 저질러 징역 175년 형을 받았다. 미국인들이 보물로 여기는 ‘체조 여제’ 시몬 바일스까지 피해자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영국 BBC는 “독일체조연맹은 나사르 사건을 보고 여성 체조선수의 성적대상화를 막기 위해 의상을 새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미국 선수 시몬 바일스는 “독일 선수들의 결정을 지지한다”면서도 레오타드를 입는다고 말했다. 그는 “레오타드는 다리를 길어보이게 하고 키가 커 보이게 한다. 선수들은 레오타드 또는 유니타드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으면 된다.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체조뿐만이 아니다.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선수들은 지난 18일 불가리아에서 끝난 유럽비치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를 입어 유럽비치핸드볼협회 징계위원회로부터 선수당 벌금 1500유로(약 200만 원) 징계를 받았다.

비치핸드볼은 비치발리볼처럼 모래 위에서 열리는 핸드볼 경기다. 여자 선수들은 유니폼으로 비키니 한 벌을 착용해야 한다. 하의는 길이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노르웨이 대표팀 선수들은 “불필요하게 성적인 느낌을 주고, 무엇보다 불편하다”며 비키니 팬티 대신 반바지를 입었다. 노르웨이 대표팀은 사전에 반바지를 입어도 되는지 문의했지만, 연맹은 허가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핸드볼협회는 “선수들은 편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선택할 기준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벌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대표팀. 이들은 벌금을 각오하고 바지를 선택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SNS)
비키니 대신 반바지를 입은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여자 대표팀. 이들은 벌금을 각오하고 바지를 선택했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SNS)

체조나 수영, 비치발리볼, 육상 종목의 여자 선수들은 노출이 많은 유니폼을 입는다. 여성 선수들의 신체가 불법촬영의 타깃이 돼 논란이 일어난 적도 많다. 체육 전문가들은 노출이 심한 유니폼은 선수들의 주의력 집중에도 방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독일 체조 선수들의 유니폼이 화제가 되자 국내 누리꾼들은 대체로 긍정적 댓글을 달았다.

“남들 눈요기를 위한 복장이 아니라 선수들이 편한 복장을 입고 대회에 참여하는 게 맞다.”

“위험하거나 판정에 어려움이 있거나 속임수에 해당되지 않는 이상 뭘 입든 자유여야 한다. 정해진 선만 넘지 않으면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드러내고 드러내기 싫은 사람은 안 드러내면 된다.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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