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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통계개발원 연구보고서에서 분석
고학력‧전문직 여성일수록 결혼 늦어
사회 관념보다 가치관 중요시하는 젊은 여성 늘어

  • 기사입력 2021.04.14 16:33
  • 최종수정 2021.04.14 21:43

우먼타임스 = 김소윤 기자 

#최근 입사를 한 20대 A씨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직장을 관두려 한다. 맞는 일을 찾고자 공부를 더 하겠다고 생각한 A씨는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준다고 여겼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놀랐다. A씨가 퇴사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결혼 자금만 모아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간 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A씨는 “여자가 남자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결혼자금보다도 나만의 생활을 위한 자금을 만들어 쓰고 싶다”며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A씨처럼 젊은 여성의 가치관이 가부장적 문화에 길들여졌던 과거 세대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혼인율 저조 원인으로 주거문제, 육아정책 등 경제적인 문제가 거론됐지만 이번에는 청년층의 달라진 가치관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통계개발원은 13일 지난해 정책·경제·인구·사회통계 분야 연구 결과를 담은 ‘2020년 통계개발원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 중 ‘한국사회의 혼인·출산 특성과 이행’ 보고서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1.0명에 미치지 못한 한국의 저출산 이유를 분석했다.

전문직 여성일수록 결혼을 미룬다는 통계가 나왔다. [연합뉴스]
전문직 여성일수록 결혼을 미룬다는 통계가 나왔다. [연합뉴스]

이에 따르면 개인주의와 현재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청년층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며 청년여성에게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전문직·고학력 30대 여성의 혼인 지연 현상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혼 여성도 수도권에 거주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직 기혼 여성일수록 출산율이 더뎠다.

반면 결혼 필요성에는 인구 특성이나 경제적 요인보다 결혼·가족 가치관이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고, 자녀 필요성도 객관적 상황보다 결혼과 자녀에 대한 태도가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결국 경제력이 좋은 여성일수록 결혼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흔히 ‘취업, 결혼, 연애’ 등 3가지를 포기한 청년층을 ‘3포 세대’라고 칭하는데,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결혼 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지난해 23년 만에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하며 역대 최소 혼인율을 보였다. 코로나19와 청년인구 감소, 주거, 취업 문제 등이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다.

이처럼 불확실한 요소들이 혼인율을 낮추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성의 가치관이 변한 것도 혼인율이 낮아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 B씨는 “최근엔 여성의 경제활동도 활발해졌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벌어서 풍족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아울러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되면, 가사는 물론 육아까지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기업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남성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홍보하게 된 시기도 불과 몇 년 전이다.

일례로 서울시가 발간한 2020년 성인지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여성의 가사노동 및 돌봄노동시간은 남성보다 약 2~3배 길다. 

만 15세 이상 서울시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2시간 26분, 돌봄노동 시간은 40분인 반면, 남성은 가사노동에 41분, 돌봄노동에 15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가구의 경우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 1분으로 맞벌이 가구 남성의 3배 이상이다. 

여성은 10명 중 9명이 하루 중 가사노동을 한 반면, 남성은 10명 중 6명만이 가사노동을 했다. 시간으로 보면 여성 가사노동 행위자의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 27분, 남성은 1시간 14분이었다. 

남성의 가사노동 비율과 시간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율과 가사노동 시간 모두 여성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있다. 

2019년 기준으로 돌봄노동 참여 비율은 여성은 27.2%, 남성은 17.3%로 여성의 비율이 약 10%p 높다. 시간으로 보면 여성의 평균 돌봄노동 시간은 2시간 29분, 남성은 1시간 31분으로 여성이 58분 더 길다. 

2020년 서울시 성인지통계 - 서울 여성과 남성의 일생활균형 실태. [서울시]
2020년 서울시 성인지통계 - 서울 여성과 남성의 일생활균형 실태. [서울시]

옛날보다 여성의 돌봄노동 비율은 감소했지만 시간은 증가해 여성들의 돌봄부담이 더욱 심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A씨는 “여자는 적당한 때에 시집을 가야된다는 부모의 사고방식이 사회 전반의 성 역할 가치관인 셈”이라면서 “일하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가사 노동까지 많이 짊어지게 되는데 누가 결혼을 하려고 하겠나. 사회의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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