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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심장질환 아이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 업무상 재해 인정 받아
-1심 승소, 2심 패소, 최종심 승소

  • 기사입력 2020.04.30 22:57

[우먼타임스 천지인 기자]

아이의 선천성 질환이 엄마의 근로환경과 연관이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들어 “모성의 보호는 공동체의 존속·유지와도 관련되므로 국가는 임신, 출산 등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해야 할 의무를 진다”고 판결문에 강조했다.

여성 노동자의 모성 보호 범위를 크게 넓힌 전향적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4명이 요양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 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한 간호사 4명은 2009년 임신해 유산 징후 등을 겪은 뒤 이듬해 아이를 출산했다. 그런데 아이 4명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당시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임산부 간호사 15명 중 이들 4명 외에 5명은 유산을 했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 간호사는 6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임신 초기 몸에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에 질병이 생겼다며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거부되자 2012년 소송을 냈다.

2011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역학조사 결과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간호사들의 ‘약품 분쇄 작업’이 지목됐다. 당시 간호사들은 중증 고령 환자를 위해 하루에 400~600정의 알약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먹였는데, 임신부와 태아에게 치명적인 약품이 54종이나 포함돼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임신한 간호사들은 이 작업을 하면서 병원으로부터 마스크·장갑 등의 보호 장구도 지급받지 못했다. 산학협력단은 “약물 분쇄 과정에서 임신부에게 생식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의약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에서는 이런 근로 환경이 태아들의 선천성 질환과 인과 관계가 있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 범위에 태아가 포함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이 근로자 본인에 국한돼 태아는 요양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간호사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다. 여성 근로자가 설사 업무상 입은 재해로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더라도 이는 아이의 질병일 뿐 엄마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요양급여를 받을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태아의 질병과 어머니의 질병을 구분해 판단한 항소심과 달리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태아는 모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태아는 어머니와 함께 근로 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요양급여 수급권자는 근로자여야 한다’는 산업재해법의 규정이 ‘근로자인 원고들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라는 본질을 무력화할 정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태아의 건강손상을 여성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다.

간호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10년이 더 걸린 것이다.

4명 가운데 1명은 간호사 일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 4명 중 2명은 현재까지 소아심장내과 진료를 받고 있다.

의료연대 제주지역본부는 성명을 내 “이번 판결은 단지 보상 문제가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여성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10년이 걸린 법적 투쟁이었다. 대법원은 29일 모성보호에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10년이 걸린 법적 투쟁이었다. 대법원은 29일 모성보호에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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