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반발하는 남성 위주의 움직임/
남녀공존이 아닌 성차별 성갈등 부추겨

[페미니즘 용어 읽기] ②백래시

페미니즘이 3~4년 전부터 지구촌 사회의 강력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용어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용어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페미니즘의 사상을 말하는 고전적 학술 용어들도 있고, 시대상이나 성별 갈등과 혐오를 반영하는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우먼타임스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페미니즘 관련 용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연재를 한다. (편집자 주)

[우먼타임스 성기평기자]

# 2018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신지예 녹색당 후보의 선거벽보와 현수막이 여러 곳에서 훼손됐다. 강남구 21곳 등 총 27개의 벽보가 칼로 찢기거나 뜯겼다. 남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신 후보의 눈빛이나 표정이 시건방지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신 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는 20대 여성 정치인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인에 대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며 단순히 선거법 위반 사건이 아닌 혐오 범죄로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대중에 꽤 알려진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씨는 2018년 5월 서강대 총학생회 초청으로 “섹스, 많이 해봤어?”라는 제목으로 강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남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강연은 취소됐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미투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강의를 스스로 취소했다. 은씨는 이어 연세대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했으나 그를 초청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라는 남학생들의 서명이 이어졌다. 캠퍼스에서는 페미니즘 대자보가 찢겼다.

# 2018년 성균관대, 동국대 등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가 도미노현상처럼 문을 닫았다. 2019년 1월에는 서울권 대학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연세대 총여학생회까지 학생 투표 끝에 폐지됐다. 이는 캠퍼스 내에서 남학생과 거의 대등한 구성 비율이 된 여성이 더 이상 차별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여학생 휴게실 설치나 생리대 배부 등 여학생만을 위한 복지에 학생회 예산이 쓰이는 데 대한 남학생들의 반감도 존재했다.

# 남성 이용자가 절대 다수인 게임 업계에서 페미니즘은 금지어다. 2019년 11월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는 T사는 자사의 외주 일러스트 여성 작가 A씨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A씨는 3년 전 성우 김자연씨가 페미니즘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성들의 항의를 받아 게임업계 일에서 퇴출된 이른바 ‘넥슨 사태’ 당시, 김씨를 지지하는 글을 한 차례 올린 바 있다. 남성들은 그 글을 찾아내 A씨를 교체할 것을 회사에 강력 요구한 것이다.

여성 연예인 몇몇은 백만 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남성들에게 공격받았다. 이 소설이 영화화될 때 주연을 맡기로 한 배우 정유미도 시달려야 했다.

# 페미니즘 운동이 성별 갈등을 일으키자 서울 지하철 역내에 페미니즘 관련 광고가 금지됐다. 서울교통공사는 2019년 3월 광고심의위원회를 열고 지하철 역내에 의견 광고를 금지하기로 했다. 정치, 종교, 이념 등을 홍보하거나 성차별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광고가 대상이다. 페미니즘 행사라는 이유로 장소 대관이 취소되고, 페미니즘 셔츠를 입었다고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된 사례도 보도됐다.

#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베’, ‘메갈리아’, ‘워마드’는 낯선 말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공격과 반격이 이어졌다. ‘디시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갤러리 이름인 일베에는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성적으로 저속한 글을 주로 올렸다. 여기에 반발하는 여성들은 2015년 남성 혐오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만들었다. 이른바 당한 만큼 그대로 되갚아준다는 ‘미러링(mirroring)’이다. ‘김치녀’는 ‘한남충’ 으로 되돌려줬다. 메갈리아에서는 더 과격한 여성들이 떨어져 나가 남성 혐오를 넘어 남성을 공격하는 워마드가 생겨났다.

대학의 여총학생회가 사라졌다. 연세대 여총학생회가 서울 지역 대학 중 마지막으로 2019년 1월 학생 투표끝에 폐지됐다. (연합뉴스)

앞서의 사례들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백래시’다. 백래시(backlash)의 원래 의미는 사회‧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때 이에 반발하는 대중의 움직임이다,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로 영향력이나 권력에 위협을 느끼는 기득권층에서 일어난다.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에 반발한 백인 차별주의자들의 운동은 ‘화이트 백래시(white backlash)’라고 불렸다.

백래시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런데 미투 운동과 더불어 페미니즘의 공습에 놀란 남성 집단을 중심으로 반발 심리가 커지면서 이에 대항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직장에서 여성 직원을 따돌리는 ‘펜스 룰(Pence rule)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간다. 여성계와 언론은 이때부터 백래시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백래시에 대해서는 고전적인 책이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1991년에 쓴 ‘백래시’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그해 논픽션 부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이 한참인 2017년 12월에 번역 출간됐다. 팔루디는 이 책에서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 물결이 미국을 덮치면서 정치, 미디어, 대중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일련의 안티페미니즘 공격을 ‘백래시’라고 명명했다. 이후 이 말은 페미니즘과 관련한 중요한 용어가 됐다.

팔루디는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을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커졌을 때 터져 나왔다. 이는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다.”

미국 CNN은 2018년 9월 “한국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며 “심각한 취업 경쟁과 병역 의무에 따른 박탈감으로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진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백래시 현상이 자주 등장하자 여성들도 세를 모아 반격했다. 2018년 6월 성균관대 여학생들은 ‘백래시 박살대회, 결국엔 우리가 이긴다’라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미투로 뜨거웠던 캠퍼스는 이내 백래시와 마주했다”며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외쳤다.

2018년 5월부터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홍익대 누드 모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12월 집회에는 ‘생물학적’ 여성만의 시위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인 11만 명이 모였다.

그 주체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래시는 남녀공존을 더 어렵게 만든다. 백래시는 명백한 성차별이자 성갈등이다.

2019년 6월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홍익대 누드모델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삭발하는 여성들. (연합뉴스)

.

저작권자 © 우먼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