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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용어 읽기] ①섹스&젠더&섹슈얼리티

섹스는 '선천적' 성, 젠더는 '후천적' 성. 섹슈얼리티는 '성적인 것'

  • 기사입력 2020.01.30 17:33
  • 최종수정 2020.08.01 16:10

페미니즘이 3~4년 전부터 지구촌 사회의 강력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관련 용어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재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용어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페미니즘의 사상을 말하는 고전적 학술 용어들도 있고, 시대상이나 성별 갈등과 혐오를 반영하는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우먼타임스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페미니즘 관련 용어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연재를 한다. (편집자 주)

이 사진에서 연상되는 건 '섹스'일까 '젠더'일까.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우먼타임스 성기평 기자] 오래 전 비행기에서 입국신고서를 쓸 때 ‘섹스(sex)’를 표기하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성별을 ‘남성(male)’과 ‘여성(female)’으로 체크하는 것인데, 잘 몰라서 섹스 횟수를 쓴 사람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제는 세계 공통적으로 ‘젠더(gender)’라고 쓴다.

거장 밀로스 포먼 감독의 ‘래리플랜트’라는 영화가 있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랜트가 포르노의 표현 자유를 위해 법정투쟁을 벌인 일을 영화화한 것이다. 199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영화다. 여기에 그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섹스는 합법적이다. 그러나 섹스를 찍어 배포하면 감옥에 간다. 살인은 불법이다. 그런데 전장에서 살인을 찍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과연 섹스와 살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인간 세상에 해로운가?”

위에 언급한 두 사례는 섹스를 단지 ‘행위’로만 인식한 것이다. 섹스는 한국어로 무엇이어야 할까. 기실 섹스 관련 용어들을 뜻하는 우리말은 빈약하다. 그냥 대체로 뭉뚱그려 다 ‘성(性)’이라고 써왔다. 혹자는 ‘性’이란 한자가 마음을 뜻하는 ‘심(心)’과 몸을 뜻하는 ‘생(生)’의 결합이어서 철학적 의미가 포함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성’이란 한 글자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19금이나 금기어로 통했다.

그런데 이제는 ‘젠더’다. 젠더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 들어온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영어권에서는 젠더라고 써야 할 곳에 섹스라고 쓰면 어색하다.

간단히 말하면 섹스는 신체 구조에 기반한 생물학적, 해부학적 성이고, 젠더는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성이다. ‘섹스’는 생물학적 특징(염색체, 생식기, 호르몬 같은 생리적 작용)에 바탕해 자웅을 구분한다. 반면 ‘젠더’는 사회적 요인(사회문화적 역할, 위치, 행동, 규범)에 의거해 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젠더라는 용어를 쓰는 건 인간의 생물학적 결정론, 즉 생물학적 특징이나 생김새가 곧 그 사람의 운명이자 사회적 역할을 고정화한다는 통념에 저항하고자 하는 것이다.

섹스란 용어에는 남녀차별적 느낌이 묻어있지만, 젠더는 대등한 남녀관계를 함축한다. 섹스는 출생과 동시에 ‘선천적으로’ 결정된 성별이다. 그러나 젠더는 역사적·사회적·문화적·환경적 영향을 받으면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남녀의 상태다. 그래서 젠더는 개인의 정체성(identity)을 포함한다. 성적 소수자나 동성애도 다 아우른다. 국제적 명성을 지닌 젠더 이론가인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는 이미 젠더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생물학적 성이 이미 사회적 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전에 젠더라는 용어는 주로 철학이나 언어학 문법의 범주 내에서만 주로 사용됐다. 그러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머니라는 심리학자가 1955년에 이 단어를 사전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성별 구분이 매우 애매한 상태로 태어난 사람’을 젠더라고 불렀다. 그는 생물학적 성별을 남, 여, 젠더로 구분했다. 1970년대 들어 여성 인권 운동이 전개되면서 젠더라는 용어는 후천적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맥락으로 의미가 확대되면서 생물학적 성을 말하는 섹스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 

1993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젠더를 섹스를 대체하는 용어로 채택했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여성대회 정부기구회의에서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 데 섹스 대신 젠더란 용어를 쓰기로 결정했다. 젠더는 섹스까지 아우르는 성의 상층부 개념으로서, 섹스에 선행하는 것으로 인정됐다.
성차별은 역사적으로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여성은 감정적이고 연약하고 논리적이지 않아서 지도자로서는 부적절하다’라고 말한다 치자. 그런데 ‘여자인 것’(섹스)과 ‘감정적인 것’(젠더) 간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 옷을 입히고, 남자아이에겐 파란색 옷을 입히는 것이나, 딸은 인형을 사주고 아들은 자동차 장난감을 사주는 것부터 젠더는 파괴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49년 여성해방의 고전 격인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그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불꽃페미액션'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

섹스와 젠더의 중간쯤에는 ‘섹슈얼리티(sexuality)’가 있다. 섹스가 보통 생물학적 성 구별이나 직접적 성행위를 뜻하는 반면, 섹슈얼리티는 ‘성적인 것’ 전체를 말한다. 성적 욕구, 성적 행동, 성적 현상, 성적 심리나 성적 본능을 의미하면서 성 문화적인 것,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욕망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성에 대해 갖는 태도, 사고, 감정, 가치관, 환상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섹슈얼리티를 ‘성성(性性)’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젠더는 성별을 규정한 언어도 바꾸고 있다. 이른바 성중립 언어다. 영어권에서는 체어맨(chairman, 의장)이 체어퍼슨(chairperson)으로 바뀌었다. 맨카인드(mankind, 인류)는 휴먼카인드(human kind)다. 런던 지하철에서는 더이상 “신사숙녀(ladies and gentlemen)”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여러분(everyone)” 같은 성중립적 호칭을 쓴다. 핀란드에서는 ‘he’나 ‘she’ 대신 남녀를 총괄하는 ‘핸(hän)’이란 단어를 쓴다. 

젠더는 성을 거세하는 중성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성의 구별에서 오는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실현하자는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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