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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리얼돌’이란 딜레마

-몸살 앓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 기사입력 2019.08.20 16:43
  • 최종수정 2019.08.21 11:04
(사진=픽사베이)

[우먼타임스 이동림 기자] ‘리얼돌(사람의 모형) 사건’이 논쟁거리다. 대법원은 6월 항소심(2심)에서 “리얼돌 수입 금지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데 어긋난다”며 여성의 신체를 본 따 만든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 및 판매를 합법화했다.

◇ 사람과 흡사한 리얼돌의 정체성

리얼돌 사건은 한 성인용품 업체가 재작년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받은 후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전체적인 모습이 실제 사람과 흡사한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물건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올 초 1심을 뒤집고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법원과 대법원은 왜 리얼돌 판매에 문제가 없다고 봤을까. 2심 재판부는 사람의 외형을 닮거나 인체 묘사가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면 풍속을 해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외형이 기준이라면 의학 수업을 위한 인형, 인체의 신비를 주제로 한 박물관 전시 인형 등도 문제가 된다. 성기구라는 용도를 배제한 채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음란한 물건은 아니라는 판결이다.

재판부가 보기에 ‘사람과 흡사한 성기구’라는 리얼돌의 정체성은 딜레마다. 사람과 비슷한 외형이더라도 성기구로 쓰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음란’한 물건이 아니다. 성기구라는 목적을 인정한다면 이는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속하므로 국가가 함부로 개입해선 안 된다.

◇ 몸살 앓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

그렇다고 해도 리얼돌에는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음란함’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굳어져 버린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긴 쉽지 않다. 음란한 것은,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넘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사람의 특정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하는 것이다. 

즉 ‘리얼돌이 풍속을 해치는 물건’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7일까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진행된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서명이 청와대가 답변을 해야 하는 기준인 20만명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도 이와 맞닿아 있다.

또 여성계에서는 주로 성풍속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성기구의 여성화가 곧 여성의 성기구화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일각에서는 리얼돌을 ‘강간인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면서 리얼돌 구매자들이 해소하려는 것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 물건을 두고 논쟁이 장기화될수록 성풍속의 관점은 피폐해지고, 이번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몸살을 앓고 있다. 리얼돌은 지금 그런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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