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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 평균 피해액 1억...사칭 직업 ‘군인’ ‘의사’가 가장 많아

피해자에 따라 성별·직업·국적을 바꿔가며 사기
카톡, 인스타, 페이스북, 왓츠앱 등 100% SNS 이용

  • 기사입력 2023.12.04 14:11
  • 최종수정 2023.12.04 14:33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1. 7년 전 여성 A씨는 온라인 채팅 앱에서 50대 남성을 알게 됐다. 이 남성은 자신이 외국 항공사 기장이며, 수억 달러 자산가라고 소개하면서 접근했다.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비행 일정을 상세히 알리고, 항공 지식을 언급했고, 체류 중인 도시명을 언급했다. A씨는 이 남성을 믿게 됐다. 두 사람이 연인 감정을 교환한 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 이 남성은 자신의 달러자산이 동결됐다며 생활비와 의료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고 금액도 점점 커졌다.

경찰에 구속된 이 남성은 이런 방식으로 여성 4명에게 9억 8000만 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매번 국제전화를 걸어 의심을 피했는데, 실제로는 발신자 번호를 바꾸는 앱을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번호를 바꾸는 앱을 실행하면 바로 옆에 있는데도 해외에서 전화가 온 것처럼 번호가 바뀐다.

#2. 여성 B씨는 2021년 한 애플리케이션에서 알게 된 남성에게 7차례에 걸쳐 5010만 원을 보냈다. 이 남성은 영국에 거주하는 선박회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비슷한 시기에 남성 C씨도 페이스북을 통해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라는 여성을 알게 됐다. 이 여성은 영국인 남편과 이혼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상황이 급하니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C씨는 돈을 보내주었다.

B씨와 C씨한테 돈을 받아낸 두 인물은 같은 사람이었다. 2012년 단기방문 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뒤 난민을 신청해 체류 중이던 외국인이었다. 그는 범죄 조직에 가담해 인출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데이팅앱이나 SNS를 이용한 ‘로맨스 스캠’의 전형적 수법이다. ‘로맨스 스캠’은 온라인을 통해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쌓은 뒤 거짓 재력·외모 등을 뽐내 신뢰를 얻고 급기야는 만남과 결혼을 빌미로 금전을 요구해 챙기는 사기 범죄다.

국가정보원이 111 콜센터로 접수한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최근 6년 동안 140억여 원, 올해만 48억 원대로 급증하고 있다.

이런 로맨스 스캠의 실체를 연구한 학술 논문이 나왔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한국범죄학’에 발표한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로맨스 스캠 범죄의 양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로맨스 스캠 범죄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판결문 73건을 분석했다.

피해 금액은 적게는 2만 원, 가장 많은 액수는 13억 8000만 원이었다. ‘2억 원 이상’과 ‘5000만~1억’이 각각 20.5%로 가장 많았다. ‘1000만~3000만’(16.4%), ‘1억~2억’(15.1%) 등이 뒤를 이었다. 평균 피해액은 1억 원 수준이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로맨스 스캠 시나리오는 ‘돈과 선물을 보내려고 하니 소요되는 비용을 보내달라’는 수법으로 전체의 56.6%를 차지했다. 본인이나 가족의 처지가 어렵다고 호소하며 돈을 요구한 경우는 18.9%, 입국할 테니 짐을 보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대신 내달라는 경우는 15.1%였다.

대부분 가해자는 피해자에 따라 직업과 국적은 물론 성별까지 바꿔가며 농락했다. 이들이 사칭한 신분은 ‘시리아에 파병된 한국계 미군 여성’,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컨설턴트’, ‘한국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올 예정인 미국 의사’, ‘폴란드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영국 금융감독원 고위 여성 간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 소장’ 등이다.

사칭한 직업은 군인이 32.1%로 가장 많았다. 박 교수는 “국외 군사시설에 거주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좋고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넘어가기 좋고 군인의 이미지를 활용해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의사(15.1%), 승무원(1.9%), 회사원(1.9%) 등이 많았다.

성별을 바꿔가며 사기를 친 경우도 24.7%였다. 박 교수는 “가해자들은 실제 성별과 상관없이 만들어 낸 프로필의 성별을 피해자에 맞춰 던지는 방식으로 성별을 설정했다”며 “피해자가 특정한 성별에 한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로맨스 스캠이 이뤄지는 통로는 100% SNS였다. 카카오톡·인스타그램(각각 18.1%), 페이스북(13.8%), 왓츠앱(8.5%) 순이다.

국적이 드러나지 않은 피고인 47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26명)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이 13명, 동남아시아 출신이 13명이다. 이들이 사칭한 국적은 미국이 42.9%로 가장 많았고 영국, 프랑스, 유엔, 한국, 스웨덴, 예멘, 홍콩(3.6%) 등이다.

1심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난 피고인 평균 형량은 2년으로, 최소 2개월에서 최대 8년까지 선고됐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8%에 그쳤다.

박 교수는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꺼려 피해가 계속된다”며 “로맨스 스캠 범죄는 신고로 범죄의 실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신고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보이스피싱 범죄와 같은 맥락의 사회적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석만남 앱에서 부유한 여성이나 남성 행세를 하며 돈을 뜯은 전청조 씨가 지난달 10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즉석만남 앱에서 부유한 여성이나 남성 행세를 하며 돈을 뜯은 전청조 씨가 지난달 10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42)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수십억대 투자 사기 혐의가 드러나 구속기소된 전청조(27)씨도 즉석 만남 앱에서 신분을 바꿔가며 사기를 벌였다. 그는 ‘결혼을 원하는 부유한 20대 여성’이라며 교제를 빙자해 임신과 결혼 비용 명목으로 돈을 뜯는가 하면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남성 행세를 하며 사기 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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