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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한센인 돌본 ‘소록도 천사’ 마가렛 간호사 하늘로 떠나다

2005년 건강악화로 돌아간 오스트리아서 88세로 선종
마리안느 간호사와 반평생 한센인 돌봐...노벨평화상 추천도
현지에는 추모 물결 이어져

  • 기사입력 2023.10.01 19:06
  • 최종수정 2023.10.04 09:32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소록도에서 39년간 한센인을 돌본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Margaret Pissarek·한국명 백수선) 간호사가 9월 29일 모국 오스트리아 요양원에서 88세로 선종했다. 

폴란드 태생에 오스트리아 국적인 고인은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20대 나이인 1959년 구호단체 다미안재단을 통해 한국에 파견됐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는 1966년부터 동료 마리안느 스퇴거(89, 한국명 고지선) 간호사와 한센인을 돌봤다.

2016년 '마리안느와 마가렛' 다큐 제작팀과 만난 마리안느와 마가렛(우측) 간호사.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제공)
2016년 '마리안느와 마가렛' 다큐 제작팀과 만난 마리안느와 마가렛(우측) 간호사.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제공)

그는 공식 파견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무 연고도 없던 소록도에 남아 한센인들과 함께 기거하며 자원봉사를 했다. 건강이 악화하자 2005년 11월 “소명을 다했다.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편지를 남기고 함께 봉사한 마리안느 간호사와 조용히 모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마가렛은 귀국 후 요양원에서 지내며 4∼5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겪었으나 소록도에서의 삶과 사람들은 또렷하게 기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넘어져서 대퇴부가 골절돼 수술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노년의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 한국 이름은 '백수선'이다. (연합뉴스)
노년의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 한국 이름은 '백수선'이다. (연합뉴스)

고인은 소록도에서 간호 봉사와 영아원 운영, 한센인 정착 지원, 결핵병동 건축 등 헌신적 봉사로 마리안느 간호사와 함께 ‘소록도 천사’ '소록도 할매'로 불리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오랜 세월 보수 한 푼도 받지 않고 한센인들에게 헌신한 공을 기려 두 사람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전남도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한국을 떠난 후 이들이 살던 사택을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의 집’으로 명명하고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설립하고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윤세영 감독)을 제작하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세 차례나 추천했다.

국제간호협의회(ICN) 플로렌스나이팅게일국제재단(FNIF)은 2021년 두 사람에게 2년마다 시상하는 국제간호대상을 수여했다.  국내에선 호암상 사회봉사상, 만해대상 실천부문 상도 받았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이들의 방한을 추진했으나 건강이 나빠진 마가렛은 오지 못했고 마리안느만 왔다. 정부가 수여한 명예국민증을 김 신부가 대신 받았다.

고흥군은 두 사람이 반평생 이국의 소록도에서 봉사한 참뜻을 기리기 위해 2015년 ‘마리안느-마가렛 선양사업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두 사람에게 매달 각각 1004달러를 보내 며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연준 신부는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사진이 명절 인사를 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가 마가렛의 부음을 접했다”며 “고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시신을 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고 해서 장례 절차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동료 마리안느는 마가렛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서운해 하면서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게 된 그가 부럽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젊은 시절 소록도에서 봉사하는 마가렛(왼쪽)·마리안느 간호사. (고흥군 제공, 연합뉴스)
젊은 시절 소록도에서 봉사하는 마가렛(왼쪽)·마리안느 간호사. (고흥군 제공, 연합뉴스)

마가렛 간호사의 죽음이 알려지자 소록도에는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추석 명절 연휴에 고흥군을 찾은 사람들은 마가렛 간호사의 사택을 찾아 고귀한 삶을 기렸다. 소록도성당은 한센인들이 한 달 동안 매일 추모 미사를 올리기로 했다. 마가렛 간호사를 한국에 데려온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4일 광주 임동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갖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가장 낮은 데로 임하여 오직 봉사하는 삶을 사셨던 고인의 고귀했던 헌신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합니다”며 추모했다.

문 전 대통령은 “방한한 마리안느 수녀님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한 추억이 있다. 대통령 재임 시에는 오스트리아 방문길에 두 분 수녀님께 감사의 편지와 선물을 했는데, 두 분은 귀국 후 정성스러운 손편지 답장을 보내왔다”고 회고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애도문을 내고 “마거릿 님은 40여 년 동안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인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셨고 한센인 한분 한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진심으로 사랑과 나눔을 베풀어 주셨다”고 추도했다.

대한간호협회도 애도성명을 내고  마가렛 간호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봉사를 기렸다.

우먼타임스
국립소록도 병원 개원 100주년(2016년)을 기념해 2017년 개봉한 두 사람의 다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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