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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확진 학교 급식 근로자 52명… ‘폐암 의심’도 379명이나

학교 97%는 환기설비 기준 미달
퇴사자 포함 폐암 산재 근로자는 훨씬 많은 94명
'조리흄' 장기간 노출이 가장 큰 원인
환기시설 개선·대체인력 충원 시급

  • 기사입력 2023.09.08 16:52
  • 최종수정 2023.09.08 18:20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전국의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환기시설이 제대로 안 돼 52명이나 폐암에 걸린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급식실의 환기시설 미비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그동안 계속돼왔지만, 여전히 급식실 대부분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환기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검진 결과에 따르면, 전국 52명의 급식근로자가 폐암에 확진됐으며 379명은 ‘폐암 의심’ 또는 ‘매우 의심’ 단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급식근로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강 의원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결과를 공개하면서 교육당국의 적극적 대책을 호소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득구 의원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득구 의원실)

교육부는 지난 3월, 폐암 확진 판정을 받은 학교 급식 종사자가 31명이라고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17개 교육청 가운데 서울과 경기, 충북 3곳이 급식종사자 인원이 많고 예산이 한정돼 있다는 이유로 발표에서 제외됐다.

이번에 그 3개 교육청의 조사 결과를 입수해 보니 21명의 폐암 확진자가 더 확인된 것이다. ‘폐암 매우 의심’과 ‘의심’도 240명이 추가됐다. 검진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 지역은 폐암 의심 진단자가 129명에 달했다. 서울은 99명이, 충북은 12명이 폐암 의심 소견을 받았다.

폐암 확진자 52명은 검진자 대비 비율 0.12%에 해당한다.

급식실 근로자의 폐암 확진은 퇴직 근로자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7월 말까지 전현직 학교급식종사자 중 폐암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경우는 94건이나 된다.

급식실 근로자가 폐암에 취약한 것은 음식을 기름에 조리하면서 나오는 ‘조리흄’에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이다. 조리흄은 초미세먼지보다 입자가 작아 폐에 쉽게 침투하는 발암 물질이다. 2021년에는 조리흄과 폐암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돼 처음으로 산재인정도 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기준에 못 미치는 환기시설이다. 올해 각 시도교육청이 학교급식실 환기설비를 점검한 4800여 학교 중 환기설비를 개선한 경남 지역을 제외한 4702개 학교, 즉 97% 학교가 환기설비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급식실이 지하나 반지하에 있는 것도 문제다.

급식실 환기설비 개선에는 학교당 1억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7월 기준 각 시도교육청이 편성한 환기설비 개선 예산 편성액은 학교당 평균 4000만 원에 불과하다. 강원은 학교 한 곳당 예산이 588만 원, 부산은 3억 2000만 원으로 편차가 크다.

강 의원과 노조는 지난해 환기설비 개선 시범 사업을 실시한 경남교육청이 학교당 평균 1억 5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한 것을 예로 들며 예산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최근 3년간 급식노동자 퇴직자 수가 1만 4000여 명인데, 퇴직자 중 자발적 중도 퇴사는 지난해 55%가 넘는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급식 노동이 너무 힘겹다는 인식으로 채용공고를 내도 미달 상황이 이어지고, 종사자들은 아파도 대체 인력이 없어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병가도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또 “예산과 시설 개선 두 가지를 잘 하면 길이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는 시도교육청에 분노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적극적인 관심과 근무조건 개선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정경숙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은 “환기시설 개선을 3년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고 있다”며 “세계 1위로 자부하던 급식실 공간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수석본부장은 “중도 퇴사 비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근속을 희망하는 퇴직자를 적극 활용하고 신규 채용자의 교육 훈련 뒤 현장에 파견해서 산재를 낮춰야 한다”면서 “결원이 지속되는 한 산재가 되풀이되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리흄’ 이란

일종의 요리 매연으로 음식을 기름에 튀기거나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다. 초미세먼지보다 입자가 작아 폐포에 쉽게 침투하며 침투 후에는 염증을 유발하고 폐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조리흄에는 일산화탄소, 질소 산화물,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과 같은 서로 다른 화학물질과 입자 및 가스가 혼합될 수 있는데 특히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음식을 굽거나 튀길 때 발생하는 조리흄. (온라인커뮤니티)
음식을 굽거나 튀길 때 발생하는 조리흄. (온라인커뮤니티)

학교 급식종사자들의 높은 폐암 유병률이 확인되면서 수십 년 집에서 요리를 해온 주부들도 주의가 필요하다. 담배를 피지 않는 비흡연 여성들의 폐암이 증가한 것도 장기간 조리흄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리흄을 막기 위해선 환기가 가장 중요한데 환기만 잘되어 있다면 폐암 확률을 22.7배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주방을 창문 가까이에 두고 조리할 때는 창문을 열고 튀김이나 구이류를 요리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한다.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거나 에어프리이어나 오븐과 같이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상부에서 흡입하는 캐노피 후드 방식보다 측면 환기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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