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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딸’이 된 ‘이상한 가족’의 탄생

신간 ‘친구를 입양했습니다’ 저자 은서란
법적 보호자가 필요해 성인 친구를 딸로 입양
성인 입양은 법원도 안 가고 신고만으로 가능

  • 기사입력 2023.08.09 13:54
  • 최종수정 2023.08.10 14:57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친구를 입양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게 가능할까?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왜 그랬을까? 무슨 사연이 있길래 친구를 자식으로 삼았을까.

바로 다섯 살 아래 동성 친구를 딸로 입양한 은서란 작가의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 탄생기’(위즈덤하우스) 이야기다.

추천평만 읽어봐도 해답이 나온다.

“기존 제도를 기상천외하게 활용해 저자가 친구와 함께 만든 이 유일무이한 가족은 우리 사회의 완고한 가족제도에 대한 통쾌한 일격이자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차관, ‘이상한 정상가족’, ‘에이징 솔로’ 저자)

“이건 농담도 소설도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친구가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입양뿐이다. 서란과 어리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는 혼인, 출산, 입양이라는 틀 밖에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족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에겐 스스로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그들이 선택한 성인 입양은 서류 몇 장으로 끝나는 너무나 쉬운 절차이지만, 큰 편견과 맞서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결정이기도 하다. 나와 잘 맞는 조각인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지는 것이 그렇게까지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야 할까? 서란과 어리의 용기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저자)

은서란(44)씨는 비혼주의자다. 그는 지난해 5월 5년간 함께 살던 50개월 어린 어리(39)씨를 ‘딸’로 입양해 ‘엄마’가 됐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단 하나다. 서로에게 법적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은씨는 심한 아토피 때문에 20대 때부터 제주도, 지리산 자락 등지에 내려가 귀농생활을 했다. 귀농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면서 농부 생활을 해봤으나 쉽지는 않았다. 아무 남자하고나 엮어주려는 마을 사람들의 간섭과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그랬다.

은씨는 농촌에서 벗어나 조금 규모가 큰 ‘읍내’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청년귀촌캠프에서 만났던 어리와 친해졌다. 둘은 비건(채식)이라는 공통점으로 함께 밥을 먹다가 자연스레 한 집에서 살게 됐다.

처음부터 입양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은씨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응급실에 갈 일이 몇 번 생기다 보니 법적 대리인이 필요했다. 현행법상 법적 보호자만이 병원에서 중요한 순간에 결정이나 동의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은씨는 “함께 살았어도 정작 위급하고 중요한 순간엔 남이었다”며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는 내가 늙고 병들면 법적 보호자는 누가 돼주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동성인 타인과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길은 입양뿐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둘은 성인입양을 결심한다. 언니 동생하던 사이가 법적으로 엄마와 딸이 된 것이다.

성인 입양(일반 입양)은 미성년자 입양(친양자 입양)과 달리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을 부모로, 늦게 태어난 사람을 자녀로 해 입양신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법원에 갈 필요도 없다. 양자의 친부모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양가는 노년에 돌봐줄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해 기꺼이 동의했다. 입양신고서가 처리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은씨는 시골에서 고군분투했던 경험과 친구를 입양한 이야기 ‘친구에서 딸로, 피보다 진한 법적 가족이 되다’를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조회수 20만 회를 넘어섰다. 독자들은 결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현재 법적 제도의 틈을 파고들어 ‘성인 입양’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가족을 구성한 은씨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

(위즈덤하우스)
(위즈덤하우스)

은씨는 “만약 생활동반자법이 있었다면 입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길 마냥 기다리다가는 이대로 할머니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진 법적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친밀한 관계로 지내진 않잖아요. 1인 가구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결혼이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로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이뤄 정서적으로 더 친밀함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도 있어요.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겠다는데 왜 가족으로 인정해 줄 수 없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은 식구’라고 부르면서 식구는 왜 가족이 될 수 없을까요?”

◇국회 문턱을 못 넘는 '생활동반자법'

민법은 여성과 남성의 결합, 그리고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한다. 헌법에는 별도의 정의가 없다.

2005년 개정된 민법(779조)은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가족’으로 규정한다.

가족 규정이 ‘혼인과 혈연’이라는 틀에 갇힌 탓에 동거, 위탁가정, 비혼 커플, 동성 커플, 황혼 동거 등 다양한 ‘법외 가족’은 의료·주거·사회서비스에서 밀려나거나 ‘없는 존재’가 된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10명 중 7명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생계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봐야 한다’는 쪽으로 진일보했다.

‘생활동반자법’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원의 사회적·법적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특정인 1명과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생활동반자’로 규정하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2014년 초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동성 가족’의 출현, 전통 가족 해체 등을 우려하는 보수단체 등의 반대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후에도 몇 번 발의됐으나 국회가 논의를 하지 않아 폐기됐다.

9년 만인 2023년 4월에 드디어 기본소득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이 함께 생활동반자법(용혜인 의원 대표 발의)을 발의했다. 

법안을 살펴보면 생활동반자는 △국민연금·고용보험 등에 따른 연금 수급자 △소득에 인적 공제 △건강보험 피부양자 △출산휴가·돌봄휴가 사용 △중대한 의료결정의 보호자 △상주 등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신혼부부처럼 주택 정책 수립에 있어 고려 대상도 된다.

용혜인 의원은 생활동반자에 대해 “친구,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 이혼과 사별 후에 여생을 함께 보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며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릴 때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은 더욱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민주당은 적극적인 편이지만 여당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입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성인 입양(일반 입양)이란?

우리나라에서 입양하는 방법은 ‘친양자 입양’과 ‘일반 입양’  두 가지가 있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미성년자 여부, 입양 후 친부모와의 법적 가족관계 단절 여부, 양부모의 결혼 여부, 상속권 등이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입양은 '친양자 입양'이다. 이는 미성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가정법원의 판결에 의해 결정되며 절차와 조건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면 일반 입양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친양자 입양과 크게 다르다. 

입양 송사를 많이 다룬 한샘이 법률사무소 세화 대표변호사는 "일반 입양은 미성년자도 가능하지만, 배우자의 친자녀가 성년이 된 경우에 많이 하거나 법적 보호자가 필요할 때 한다"며  "가장 큰 차이는 입양대상자가 성인이면 법원에 갈 필요 없이 당사자 간 합의와 친부모의 동의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친양자 입양을 위해서는 혼인신고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일반 입양은 혼인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은서란씨의 경우처럼 미혼이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 입양은 친부모와의 법적 관계에서도 친양자 입양과 완전히 다르다.

한샘이 변호사는 "친양자 입양은 친부모와의 법적인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고 성(姓)도 바뀌지만, 일반 입양은 그 전의 성을 쓰고 친부모와의 친족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라며 "친부모가 사망해도 친양자 입양과 달리 법률상 상속권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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