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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숨진 서이초등 학부모 민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1학년 담임교사 사망…애도와 진상 촉구 잇따라
전국 교사들, "남의 일이 아니다" 교권 확립 촉구

  • 기사입력 2023.07.21 15:35
  • 최종수정 2023.07.21 15:59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 여교사(25)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학부모의 지나친 민원과 갑질, 학교당국의 방관, 실추된 교사의 권리 등과 관련한 증언과 주장이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임용된 후 이 학교에 처음 부임한 2년차 교사 A씨는 18일 오전 11시께 교실 옆 창고 공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학년 담임을 맡은 새내기 교사였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안에 만들어진 추모 공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조화와 스티커로 둘러싸였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안에 만들어진 추모 공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조화와 스티커로 둘러싸였다. (연합뉴스)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는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추모와 함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고인의 유족은 “학부모의 갑질이 됐든, 지속적 악성 민원이 됐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됐든 이번 죽음과 관련이 있는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 학교 전현직 동료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으로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불가능했다는 사례들을 교사 노조에 제보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2020년대 초반 이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한 교사는 당시 한 학부모가 “나 ○○아빠인데, 나 뭐하는 사람인지 알지? 나 변호사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증언했다.

노조가 공개한 제보 내용을 보면, 당시 서이초 학부모들의 민원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많아 대부분 교사가 근무를 매우 어려워했다고 한다. 민원과 관련된 대부분 학부모는 법조인이었다고 한다.

한 교사는 고인의 학급 학생이 연필로 뒷자리에 앉은 학생의 이마를 긋는 사건이 있고 난 후,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학부모가 고인의 개인 휴대전화로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고 제보했다.

제보한 교사에 따르면, 고인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소름끼친다. 방학 후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피해 학생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고인에게 “애들 케어(care)를 어떻게 하는 거냐. 당신은 교사 자격이 없다”는 폭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어 매우 힘들어했고, 출근할 때 소리 지르는 학생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가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교사노조연맹)
서울교사노조와 전국초등교사노조가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교사노조연맹)

서울교사노조는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과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을 제보를 통해 확인했다”며 “경찰과 교육 당국은 유족을 비롯한 전국의 교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교사노조는 또 “고인의 죽음은 학부모의 민원을 담임교사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재의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20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전교조는 “개인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실수와 책임에 노출되는 불안감이 학교 구성원 모두를 힘들게 한다”며 “교사를 개인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애도의 뜻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다. 이주호 장관은 20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간담회에서 “교권 침해가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2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현장 교원들과 가진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는 학생 인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제도와 문화로 인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관련 조례 등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을 문제 삼았다.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교사가 제자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은 사건도 있었다. 조희연 교육감은 교육감협의회와 국회, 교육부가 참여하는 교권보호를 위한 공동논의 테이블 구성을 제안했다.

온라인에는 “사망한 교사가 학교폭력 업무 담당이었고, 학교 폭력 가해자 학생 가족 중 국회의원이 있어 압력을 행사했다”는 글이 퍼졌으나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거론된 정치인의 가족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에 퍼진 가짜 뉴스에 대한 서이초등학교의 해명문.
온라인에 퍼진 가짜 뉴스에 대한 서이초등학교의 해명문.

국민의힘은 3선의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유튜브 방송에서 보도한 김어준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서이초등학교에는 교사 등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엄청나게 많은 조화가 배달됐다. 학교 담장은 전국의 교사들이 보낸 근조화환 1500여 개와 애도·항의 메시지를 담은 수백 개의 포스트잇으로 둘러싸였다. 조문한 교사들은 한결같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교권 확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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