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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레터] 지금은 2023년입니다

전·현직 여성 의원 모임 한국여성의정, '남녀 동수의 날' 선포
한 성별이 60%를 넘지 않게 하는 '남녀동등참여법' 제정 촉구

  • 기사입력 2023.05.26 15:15
  • 최종수정 2023.05.26 15:19

우먼타임스 = 한기봉 편집인

46세에 국가수반이 된 페드로 산체스 총리(51)가 이끄는 스페인 정부는 남성 장관을 늘려야 할 판입니다. 현재 스페인 내각 구성은 23명 가운데 부총리 3명과 재무부, 국방부 장관 등을 포함해 14명이 여성입니다. 61%입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한 성별이 내각의 최소 40%를 차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평등법안이 곧 의회를 통과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각에 적어도 남성 장관 1명 이상을 더 기용해야 합니다.

지난해 35세로 취임한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은 24명의 장관 가운데 14명을 여성으로 임명했습니다. 절반에서 두 명이나 더 많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내각’으로 불립니다. 30대 장관도 7명이나 됩니다. 칠레는 2006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미첼 바첼레트가 세계 최초로 남녀 동수 내각을 꾸린 전통이 있죠.

2021년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합정부는 여성 8명, 남성 8명으로 구성된 독일 최초의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켰습니다. 16년간 집권한 여성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도 이뤄내지 못한 것이죠. 프랑스는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했지요.

2014년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 2019년 핀란드 산나 마린 총리도 성평등 내각을 꾸렸습니다. 미국 조 바이든 내각은 동수 내각을 이루진 못했지만 26명 중 여성이 12명으로 거의 절반입니다.

세계 10위 대국인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18개 부처 중 여성 장관은 3명입니다(김현숙 여성가족부, 한화진 환경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20%도 되지 않죠. 문재인 정부 초기 내각에선 5명, 박근혜 정부 초기 내각 때는 2명이었죠. 전국 17개 시·도 어디를 가도 여성 광역단체장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국민이 선출하는 국회의원 남녀 비율은 경우가 좀 다르긴 합니다. 그래도 여성 의원이 과반이거나 근접하는 나라가 세계에 많습니다. 2021년 아이슬란드 총선에서는 여성 당선자가 절반을 넘겼죠. 유럽 최초입니다.

그럼 여의도로 가볼까요. 21대 국회의원 299명 중 여성 의원은 57명입니다. 20%에 못 미치는 19%입니다.

권인숙 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회가 구성된 세계 186개 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여성 장관 비율은 111등, 여성 의원 비율은 121등”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 영역에서의 ‘남녀 동수’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세계사적 흐름입니다. 국제의원연맹(IPU)는 더 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우선 과제로 남녀의 동등한 의회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는 2030년까지 남녀의 지위가 50대 50으로 동등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꼭 정치 선진국이 아니더라도 많은 나라들이 여성의 정치 진출을 보장하는 관련법을 제정했습니다. 2019년 기준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고 있는 126개 국가 중에서 32개 국이 헌법이나 정치관계법에 관련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이 참여한 국회의장 산하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남녀동수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이혜훈 신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정)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이 참여한 국회의장 산하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23 남녀동수의 날 선포식’을 열었다.  이혜훈 신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정)

혹시 ‘남녀 동수의 날’을 들어보셨나요.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 모임인 ‘한국여성의정’이 25일 국회에서 ‘제1회 남녀 동수의 날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5월 25일은 ‘남녀 동등 5=5’를 상징합니다.

한국여성의정은 이 행사에서 ‘남녀동등참여지원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강력 촉구했습니다. 이 법안은 특정 성별이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 전체의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이날 신임 대표로 선출된 이혜훈 국민의힘 전 의원은 선포식에서 “남녀 동수 실현을 통해 진정한 국민주권을 완성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축사에서 “취약한 민주주의를 유능한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남녀 동수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세 대표도 축사에서 남녀 동수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남녀 동등 정치는 2004년 비례대표에만 50% 여성할당을 도입한 이후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각과 여의도는 50대, 60대 남성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각 정당은 내부적으로 지역구 후보 등의 공천에 여성 할당을 마련하고 있긴 하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조항일 뿐입니다.

2015년 44세 나이로 취임한 쥐스탱 트뤼도(52) 캐나다 총리는 30명의 장관 가운데 딱 절반인 15명을 여성으로 임명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의 화제가 되었죠. 그는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한 이유를 묻는 기자 질문에 이렇게 한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Because it’s 2015(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지금은 2023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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