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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에도 혼인 준하는 권리 주는 ‘생활동반자법’ 드디어 국회 발의되다

“새로운 가족 형태 인정, 보호해야” “저출산 위기 해결에 도움”
건강보험, 출산, 돌봄, 세금, 연금, 교육, 의료, 주택 등에 차별 없이
용혜인 의원 대표발의, 민주당·정의당·진보당·무소속 의원들 공동발의
2014년 진선미 의원 추진하다 보수단체 반대로 발의 못해

  • 기사입력 2023.04.26 13:45
  • 최종수정 2023.04.26 14:00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정상가족=결혼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뤄진 가구’.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위해 개정된 민법 779조는 가족의 정의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헌법에는 별도의 정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에 대한 규정이 ‘혼인과 혈연’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친밀한 사람과의 동거, 황혼 동거, 위탁가정, 동성 커플 등 법외 가족들은 세금, 의료, 주거, 다양한 사회보장 복지서비스 등에서 ‘없는 존재’가 된다.

가족 형태는 매우 다양해지고 있지만 법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법은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다른 관련 법들의 원칙이 된다. ‘가족관계등록법’은 부모·배우자·자녀만을 가족으로 기재한다. 가족정책 근간인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다. 금융거래, 병원 입퇴원, 취학, 주택, 건강보험, 연금, 출산, 돌봄, 보증, 세금 부과 등 각종 공공 업무는 필요한 경우 ‘가족 증빙’부터 요구한다.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여러 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10명 중 7명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주거·생계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 여길 수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법률혼 밖의 동거 형태에 대한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족 형태의 법적 보장에 대한 논의는 사실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일명 ‘생활동반자법’이다.

2005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혼인, 혈연, 입양으로만 형성된 건강가정기본법에 다양한 가족과 가정의 형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다.

이에 국회에서는 2006년 관련법 개정안이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하다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마련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가족 개념을 확대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는 진보적 내용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전통적 가정형태가 해체될 거라는 우려를 가진 보수 단체와, 보수 정치인, 종교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동성애, 동성 동거, 나아가 동성 결혼을 조장할 거라는 우려도 섞여 있다. 동성애 혐오단체는 진 의원실에 항의전화를 걸자는 운동까지 벌였다.

◇9년 만에 본격  논의되는 생활동반자법

2014년 당시 진선미 의원실에서 준비했지만 발의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이 9년이 지나 드디어 처음으로 국회에 발의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국민 10명 중 7명이 혈연이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현행법과 제도는 다양한 가족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6일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 제공)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26일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 제공)

생활동반자법은 성인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고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된다.

생활동반자법 발의에는 민주당 강민정, 권인숙, 김두관, 김한규, 유정주, 이수진(비례) 의원,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여당 의원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생활동반자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걸로 보인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는 물론 사회적으로 격렬한 찬반 논란이 빚어질 것이 분명하다.

용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관계 성립·해소, 효력과 그에 관한 등록·증명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생활동반자 당사자에게 동거, 부양·협조의 의무를 규정하고 이들에게 일상가사대리권,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친양자 입양 및 공동입양 등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법률혼과 가장 큰 차이는 상대방 가족과 인척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또 민법을 비롯해 관련 법 25개를 개정하는 내용을 부칙에 담았다. 생활동반자관계가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많은 법적 제도적 문제에서 기존 가족관계와 같이 동등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법안을 살펴보면 생활동반자는 △국민연금·고용보험 등에 따른 연금 수급자 △소득에 인적 공제 △건강보험 피부양자 △출산휴가·돌봄휴가 사용 △중대한 의료결정의 보호자 △상주 등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신혼부부처럼 주택 정책 수립에 있어 고려 대상도 된다.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에 대해 “친구,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 이혼과 사별 후에 여생을 함께 보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며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릴 때 각종 사회제도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은 더욱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용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덴마크·스웨덴 등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들은 이미 다양한 가족을 법 제도로 인정하고 있다”며 “혼인 외 가족 구성과 출산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저출산·인구위기 대응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발의에 참여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프랑스의 혼인에 준하는 법적 보호제도인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를 언급하며 “프랑스는 1999년 팍스를 도입하며 기존 1.76이던 출생율을 1.98까지 끌어 올렸다. 다양한 가족구성원의 안녕, 가족을 구성할 개인의 자유, 더 나아가 출생률까지 높일 수 있는 일거삼득의 생활동반자법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팍스'는 동거를 등록하면 사회보장에서 크게 차별받지 않는 제도다.  이성과 동성 구분 없이 시청에 계약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면 되며, 관계를 끊을 땐 해지 의사를 담은 서류를 제출하면 끝이다. 법적인 기록도 남지 않는다. 현재 팍스와 법률혼 건수는 거의 비슷하다. 96% 이상이 이성애자 커플이다.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시민결합법’은 이미 해외 많은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영국,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일부 주들은 생활동반자관계와 유사한 파트너십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비혼 출산은 서구에선 일찌감치 공론화됐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벨기에, 스페인, 일본 등은 독신 여성과 성 소수자들의 비혼 출산을 인정한다. 비혼 출산과 동거 커플을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혼외 출산 비율은 평균 41%인데 반해 우리는 2% 안팎에 불과하다.

일본은 G7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민결합,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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