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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해 연 5억 마리 동물이 실험실서 죽어간다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
한국에선 연간 500만 마리가 희생돼
비윤리성·비효율성 논란에 ‘유사 장기’ 등 대체기술 개발 중

  • 기사입력 2023.04.24 14:38
  • 최종수정 2023.04.24 14:42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지금 이 순간도 세계 도처의 실험실에서 동물이 죽어가고 있다. 동물이 왜 사람을 위해 온갖 고통을 겪으며 희생돼야 하는가. 동물실험에 따른 문제는 없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4월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World Day for Laboratory Animals)이다. 44년 전인 1979년 영국 ‘동물실험반대협회’(National Anti-Vivisection Society)가 이 단체의 전 대표인 휴 다우딩(Hugh Dowding·1882∼1970) 남작의 생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동물자유연대)
(동물자유연대)

전 세계의 실험실에서 고통 받는 동물의 희생을 멈추고,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찾기 위한 게 설립 목적이다.

매년 4월24일이 되면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린다.

‘동물실험’(Animal testing)이란 교육, 시험, 연구 및 생물학적 제제의 생산 등 과학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실험을 말한다. 인체 실험 전 단계인 임상 단계에서 이뤄진다.

동물실험은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동물과 인간의 신체 장기와 기능은 다르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영국의 생명공학센터인 헌팅던 생명과학연구소에 따르면 동물실험 결과가 인간 임상시험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확률은 5∼25% 수준에 불과하다.

2018년 4월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계 실험동물의 날 기자회견. (연합뉴스)
2018년 4월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계 실험동물의 날 기자회견. (연합뉴스)

◇동물실험 현황

전 세계적으로 매년 5억 마리 이상이 동물실험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2021년 약 500만 마리의 동물이 실험실에서 죽었는데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3년에는 196만 마리, 2017년에는 308만 마리였다.

인간이 사용하는 의약품, 화학물질, 식품 등은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동물실험을 해왔다.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게 마우스(생쥐)이고 토끼 등 설치류 외에도 개, 돼지, 원숭이 등 포유류까지 다양한 종류가 사용된다. 앵무새, 까마귀 같은 조류도 많이 쓰인다. 동물들은 실험용으로 번식되고 실험이 끝난 후에는 99.9%가 안락사 된다.

동물실험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따라 가장 낮은 A등급부터 E등급까지 5단계로 나눠진다. E등급은 관찰을 위해 마취제나 진통제 등을 투입하지 않는다.

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는 D와 E등급 동물실험이 각각 40% 정도를 차지했다. 원숭이 류는 E등급 실험에 이용된 비율이 84%다. 동물보호단체는 미국에서는 D와 E등급이 각각 10% 내외라면서 국내 동물실험이 잔인하다고 비판한다.

◇동물실험, 뭐가 문제인가

2019년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고발당하면서 동물실험 과정에서의 학대가 이슈가 됐다. 이 교수는 공항 검역탐지견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복제견 ‘메이’를 실험에 이용하면서 동물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또 식용 개농장 개들을 복제견 연구를 위해 데려와 난자를 채취하고 대리모견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교수직에서 직위해제됐다.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동물의 희생을 통해 얻은 실험 결과가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실험 반대 운동단체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은 동물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약물 중 90%는 인간에 대한 임상 실험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실험을 통과한 약물 중 약 10% 정도만 최종 승인되는 데 반해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수는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한다.

실험실에 있는 동물들에게는 인위적으로 질병을 발생시키므로 여러 결함이 따른다. 연구실 실험 환경도 제각각이고 동물의 종류나 나이, 성별, 식습관에 따라 여러 물질에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동물실험을 통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한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동물실험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이 크다. 동물실험 외에 신물질의 안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동물실험을 대체할 만한 기술은 완전하지 않고, 수많은 종류의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긴 기간이 걸린다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동물실험 결과는 인간의 경우를 꽤 잘 예측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독성연구동 앞에 세워진 실험동물위령비. 국민건강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 독성연구동 앞에 세워진 실험동물위령비. 국민건강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동물실험 대체 기술은 어디까지?

사실상 지금 당장 동물실험을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제안된 원칙이 ‘3R 원칙’이다. 최대한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대체 수단(Replacement), 사용 동물의 수 축소(Reduction), 동물의 고통 완화(Refinement)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R 개념은 1958년 영국 동물학자인 윌리엄 러셀과 미생물학자인 렉스버치가 ‘인도적 실험 기법의 원리’라는 책에서 제시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개념이다.

​3R 개념을 적용하여 개발된 주요 동물대체시험법으로는 세포와 조직을 이용하는 방법, 시약과 화학반응을 통해 시험하는 방법, 제브라피쉬, 예쁜꼬마선충 등 하동동물인 비포유류 대체동물을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유사 장기’ 등을 만들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기술 ‘오가노이드’다. 사람의 줄기세포를 추출 배양해 인간 장기와 기능과 구조가 유사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작은 칩에 담은 ‘장기 칩’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안구 칩은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골수 칩, 허파 칩, 신장 칩, 자궁 칩 등 다양한 미니 장기 칩이 개발 중이다. 미국의 장기 칩 개발사 ‘에뮬레이트’는 개발 중인 칩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실험한 결과 거의 100%에 이르는 정확도로 독성 물질을 판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11월 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를 설립해 국립농업과학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국립환경과학원이 화학물질의 독성시험에 대한 동물대체시험법을 개발하고 있다.

동물실험의 비윤리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선언을 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화장품 업계가 많다.

◇법적·제도적 개선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제23조는 동물실험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동물 생명의 존엄성, 가능한 한 대체 방법 고려, 윤리적 취급, 고통 경감 조치 등이 담겨 있다.

2008년에는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실험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2020년 12월에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도 여야가 합의해 국회에 계류돼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명시한 것이다.

동물단체들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구분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동물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관련 후속입법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바이든 대통령이 ‘동물실험 의무화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미국 연방 식품의약품화장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약물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해 설치류 등에 대해 진행하던 동물실험 의무가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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