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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부부, 처음으로 법적 지위 일부 인정받다

고등법원, 동성 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1심 “현행법상 혼인은 남녀 결합” 판결 뒤집혀
동성 부부 권익 확대, 가족 개념 변화 계기될지 주목

  • 기사입력 2023.02.22 12:32
  • 최종수정 2023.02.22 16:20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21일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처음으로 일부 인정한 의미 있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혼인은 남녀 간의 결합’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남성 동성 부부가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이긴 것이다.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월 “민법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모두 모아보더라도 혼인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되고, 이를 동성 간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었다.

법원 판단이 나온 후 시민과 법조계, 성 소수자 단체, 보수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기독교 단체 등 사회 구성원들은 환영과 비판 의견이 분분하다.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확정되면 민법상 혼인관계 인정이나 입양 요구, 주거나 세제 혜택, 장례 및 응급 수술 시 보호자 문제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에서 동성 부부의 권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을 끈다. '가족'에 대한 법적 정의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항소재판부(서울고법 행정1-3부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 판결 요지는 이렇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처사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성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관계인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대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사법적 관계에서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동성 부부는 판결이 나오자 기자회견에서 “사랑이 결국 이겼습니다”고 말했다.

“오늘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참 오래 걸렸다. 이 소송이 저희 둘만의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송은 모든 동성 부부들의 평등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지나가는 과정이자, 동성 부부의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다.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제가 서로를 사랑하는 이 마음이 저주나 외면을 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욕을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욕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마음은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이길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다.”

동성 부부를 대리한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동성 부부의 법적 지위를 법원이 인정한 최초 사례이다. 단지 두 개인의 보험료 문제가 아니다. 오늘 판결이 계속해서 권리관계에서 배제되고,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배우자를 국가가 배제해선 안 된다는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임을 커밍아웃한 변호사로, 성 소수자 권익을 지키기 위한 송사를 주로  맡아오며 TV에도 자주 등장했다.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소송의 전말

30대 초반인 소성욱(아내)-김용민(남편) 동성 커플은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소씨는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크게 기대하지 못한 신청이 놀랍게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건보공단은 “담당자의 업무상 실수였다. 동성 배우자는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결정을 취소하고 소씨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다.

이에 소씨는 “사실혼 관계임을 이미 밝혔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냈다.

이들은 얼굴과 이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동성 부부의 권익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성 소수자 단체는 적극 이들을 지원했다.

동성이 아닌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현재 피부양자 자격을 받고 있다. 한 쪽이 직장 가입자이고, 다른 한 사람이 상대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경우에 대해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항소심 1회 변론기일에서 이미 ‘행정법상 평등의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동성 부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률 용어가 명시돼 있지 않은 사실혼 관계자들은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받고 있는데, 동성 부부의 경우만 해당 자격을 얻을 수 없다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라는 취지로 공단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환영과 비판

민감한 사안인 만큼 판결 하루 후인 22일까지 공식 논평이나 성명을 낸 단체는 많지 않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성소수자가족구성권네트워크는 21일 논평을 내고 “사법부가 동성 부부와 사실혼 관계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평등의 원칙에 따라 건보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이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환영했다.

이어 “성소수자의 평등권 실현에 기여하는 중요한 판결이며 건강보험 상의 피부양자 지위라는 혼인·가족과 관련된 하나의 권리를 넘어 혼인 평등을 향한 여정에 징검다리를 놓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또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해 "오늘 사법부 판단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 성 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한 가족구성권 보장,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현행법 하에서도 용인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했다건보공단은 모든 국민에게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고 환영했다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은 22일 오전 현재 없다. 보수적 기독교계도 성명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법률혼 대상도 아닌 동성 커플을 보호해주면 남녀 양성의 혼인제도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질서에 모순되고 큰 사회적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부여해주면 동성 커플을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안 된다는 것이다.

21일 법원의 선고 직후 환영하는  소성욱(가운데 왼쪽)-김용민 동성 부부와 지지자들. (연합뉴스)
21일 법원의 선고 직후 환영하는  소성욱(가운데 왼쪽)-김용민 동성 부부와 지지자들. (연합뉴스)

◇법 밖에 있는 동성 결혼, 외국 경우

우리나라에서 동성 결혼은 엄연히 ‘법 울타리’ 밖에 존재한다. 대법원은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혼인은 이성 사이에만 허용하고 동성 결혼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 역시 혼인은 양성이 기초라고 하고 있고, 민법도 마찬가지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번 판결은 동성 부부를 인정한 게 아니라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 결합’이라고 지칭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판결문 끝 부분에 이례적으로 성 소수자 차별을 비판하는 의견을 덧붙였다.

재판부는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이라며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남은 차별도 언젠가 폐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누구나 어떤 면에선 소수”라며 “다수결 사회일수록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성애 등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발의된 후 지난 20대 국회까지 7차례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보수 단체와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는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독일, 영국 등 서방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 중심으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동성혼 부부들도 일반 이성 부부처럼 큰 차별 없이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현재 33개 국가가 동성혼을 완전 인정하고 있다. 유럽과 남미 국가는 대부분 허용한다. 아시아에서는 2019년 대만이 유일하게 동성혼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성혼 완전 인정 국가는 다음과 같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공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우루과이 프랑스 브라질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미국 콜롬비아 핀란드 몰타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 대만 에콰도르 영국 코스타리카 칠레 스위스 쿠바 슬로베니아 멕시코

◇김용민-소성욱 부부

김용민(33)-소성욱(32) 부부는 2012년 사회복무요원(당시엔 공익근무요원) 선후임으로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당시 소씨(아내)는 동성애자였고 김씨(남편)는 이성애자였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살던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다 동거를 시작했고 한 쪽이 아파서 간호를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에 합의하고 2019년 가족과 지인 300여 명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둘 다 양복 차림으로 입장했다. 동성애자 친화도시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두 사람은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월 7일 서울행정법원 1심에서 패소한 후 을먹이며 기자회견을 하는김용민(오른쪽)-소성욱 부부. (연합뉴스)
2022년 1월 7일 서울행정법원 1심에서 패소한 후 을먹이며 기자회견을 하는김용민(오른쪽)-소성욱 부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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