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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여성은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없을까?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 칼럼서 반박
"여자라서 후계자 못 된다는 건 잘못된 판단"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과 자질"
"북한에서 여성의 정치 사회적 지위 높아져"

  • 기사입력 2023.02.10 17:58
  • 최종수정 2023.04.11 16:10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최근 북한에서 공개적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는 김정은의 9세 딸 김주애가 북한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 여부를 두고 분석과 논란이 분분하다.

아직까지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그 근거 중 하나는 김주애가 아직은 가부장적 문화인 북한에서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정성장 박사는 이런 분석은 오류이며 김주애가 북한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북한 연구자다.

그가 1월 11일 진보 성향의 대안미디어 ‘피렌체의 식탁’에 게재한 칼럼 ‘김주애의 등장, 4대 세습의 신호탄?’을 요약 소개한다.

[칼럼 요약]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1대 지도자인 김일성의 권력이 그의 아들 김정일에 의해 승계되었고, 2대 지도자인 김정일의 권력이 다시 그의 아들 김정은에 의해 승계되어 군주제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에게 어떤 자녀들이 있고, 그들이 어떠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외부의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2013년생으로 추정되는 그의 둘째 자녀 김주애를 2022년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데리고 나와 공개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당시 김주애가 만 9세의 매우 어린 나이였고, 아들이 아닌 딸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북한에서 과연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 대부분이 과거에 김정일의 후계 문제와 관련해 부정확한 평가를 내렸던 데에는 그들의 ‘희망적 사고’나 ‘장남’만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주애가 매우 어린 나이이고 딸이라는 사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넘어서서 김주애가 어떠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북한 언론매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선전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2022년 11월 19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전날 김정은의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 현지 지도를 소개하면서 파격적으로 그가 자신의 딸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ICBM을 근처에까지 가서 관찰하고 발사 장면을 참관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신형 ICBM 시험발사 성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김정은의 딸 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가 앞으로 김정은의 핵무력 강화 노선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이어 11월 27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다시 김정은과 김주애가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을 공개하고 김주애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매우 특별한 존칭을 사용했다.

<로동신문> 사이트에서 ‘존귀’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이 용어는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선대 수령’ 그리고 김정은과 같은 ‘현재 수령’에게만 사용되어 왔다. 이처럼 북한의 절대권력자를 의미하는 ‘수령’에게만 사용된 용어를 김주애에게 사용한 것은 곧 그가 북한의 ‘후대 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존귀’라는 표현은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에게도, 북한의 ‘사실상 2인자’로 간주되는 김여정에게도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다.

<로동신문>은 11월 19일자 보도에서는 ‘사랑하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27일자에는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김주애가 앞으로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보다 명확히 시사했다. 왕에게 여러 명의 자녀가 있을 경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를 후계자로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7일자 <로동신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백두혈통’인 김주애에 대한 충성 맹세까지 소개했다.

11월 19일자 <로동신문>은 2면과 3면에서 김정은과 김주애가 함께 있는 사진을 6장을 공개했다. 그런데 27일자는 1면과 2면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을 무려 15장이나 게재했다. 북한 언론이 이처럼 ‘김주애 띄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김주애의 공개가 ‘즉흥적인 결정’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지난해 11월 18일 김주애는 김정은과 함께 신형 ICBM 시험발사를 참관했을 때 흰색 겨울 패딩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그런데 11월 26일 김주애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고급스러운 모피를 덧댄 검은 코트를 착용하고 리설주와 비슷한 옷차림을 했다.

<로동신문>이 공개한 사진들에서 김정은과 김주애는 계속 손을 꼭 잡고 있거나 김주애가 김정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다. 아들이 아닌 딸을 4대 지도자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김정은도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신형 ICBM 시험발사 성공 현장에 김주애를 대동하고 나옴으로써 그에 대한 북한 간부와 주민의 충성심이 그의 딸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이 김주애와 함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과 KN-23 시찰 사진을 공개했다.

2023년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KN-23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새해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와 KN-23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주애를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내세우면서 미래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핵무기의 필요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왜 김정은이 다른 자제도 아니고 김주애의 사진을 세 번째로 그것도 새해 첫날에도 공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첫째, 김정은의 ‘가장 사랑하는 자제’ 김주애가 미래에 후계자가 될 것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김여정이 부부장으로 있는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새해 첫날 방송을 위해 미리 치밀하게 김정은과 김주애의 시찰 사진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김정은이 김주애를 ICBM 시험발사 현장 참관에 이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 무기고 시찰에까지 동행하고 그 사진을 공개한 것은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김주애 시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주애도 김정은의 그런 의지를 계승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셋째, 김주애가 지금은 비록 ‘후계수업’ 단계에 있지만, 미래에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어 김정은을 보좌하게 되고 결국 권력을 승계하게 되면 핵 버튼까지도 물려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나중에 김주애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인 핵․미사일을 확고하게 지휘 통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서서히 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미, 대일, 대남 군사전략에 대한 ‘후계수업’ 차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 상당수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북한에서 여성이 후계자가 될 수 있겠는지 의구심을 표시한다. 그러나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자질이다. 북한의 후계자론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0대에 스위스에서 4년 반 조기 유학 생활을 한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처럼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김정은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장남’을 선호하겠지만, 그의 장남이 김정철처럼 온순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예술에만 관심이 보인다면 그런 장남을 후계자로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김정은의 장녀 김주애가 비록 여자이기는 하지만, 김정은처럼 배짱이 있고, 정치적 야심이 있으며, 김정은의 권력과 정책을 승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김정은으로서는 김주애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북한에서 11년간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필자와의 2003년 인터뷰에서 북한의 당과 군부 간부들이 김정일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여동생 김경희를 대하는 태도가 거의 비슷했다고 증언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북한에서도 ‘백두혈통’인 김경희가 일반 간부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에는 그것이 대외적으로까지 표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김여정은 백두혈통으로서의 그의 공식적 직책인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직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김여정은 2018년 2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명목상의 단장인 김영남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직접 전달한 바 있다.

2018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2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북한인권백서 2022>는 2018년 이후 김여정(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최선희(현 외무상), 현송월(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선희의 외무상 발탁은 북한 여성 최초의 장관급 간부 임명으로, 여성 사회진출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정치적,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증을 가진 여성은 무조건 간부로 등용되며 판사, 보위부, 보안원을 하는 여성들도 많고, 여성 군관도 많아졌으며, 여성 대의원도 늘어났다고 북한 이탈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또한, 기업소와 협동농장 등에서 지배인, 작업반장, 분조장을 하는 여성들이 많으며 능력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증언도 다수 수집되고 있다.

이처럼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고, 여성이라도 ‘백두혈통’은 다른 간부들보다 우월적인 신분/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은 무조건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평가는 북한의 현실과 괴리된 ‘남한 중심적’ 편견일 수 있다. 북한과 비슷한 유교문화를 가진 한국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세종연구소는 1986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일해재단이 전신으로 안보, 통일, 외교 정책 분야를 주로 연구하는 민간 연구소다. 필자는 프랑스 파리 낭떼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부, 국방부, 한미연합군사령부 등에서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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