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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아직은 어렵다

홍콩 최고 법원, "성전환 수술 안 해도 가능하다"
대다수 유럽국, "본인 선언만으로 성별 정정 가능"
우리나라는 아직 엄격한 대법원 예규 존재

  • 기사입력 2023.02.08 18:11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대부분 나라는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태어난 성과 다르게 느끼는 사람)가 성별을 법적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기준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인권적 측면에서 진일보한 움직임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법적인 성을 변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나라가 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법원이 성전환 수술까지 요구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별 정정의 기준은 엄격한 편이다.

◇홍콩 최고법원,  "성전환 수술 전제는 위헌"

홍콩 최고법원이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을 바꿀 수 있다고 판결했다.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은 6일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신분증상 젠더를 변경할 수 있다는 정부의 정책은 위헌이며 수용할 수 없는 가혹한 부담을 안긴다”며 “이는 성적 정체성과 신체 보존성에 대한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불균형적이다”고 밝혔다.

2019년 트랜스젠더 활동가 헨리 에드워드 쯔 등 두 명은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홍콩 정부가 성별 변경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이들은 영국 여권에서는 성별을 변경한 상태였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들은 자궁과 난소, 외부 성기를 제거하고 남성으로 재건하는 수술은 위험하고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많은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은 불필요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번 홍콩 법원의 판결은 LGBTQ(성 소수자) 커뮤니티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홍콩의 트랜스젠더 활동가 헨리 에드워드 쯔가 6일  종심법원 앞에서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과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홍콩의 트랜스젠더 활동가 헨리 에드워드 쯔가 6일  종심법원 앞에서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과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랜스젠더 선언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한 나라들

현재 유럽 대부분 국가는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외부 성기’를 갖출 것을 요구하지 않는 추세다.

핀란드 의회는 지난 1일 18세 이상 트랜스젠더는 ‘자기 선언’ 과정만 거치면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은 전문가의 의학적, 정신과적 승인이 있어야만 성별을 바꿀 수 있었다.

여성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어린 시절 성소수자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마린 총리는 “성전환자 권리를 대폭 강화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법안이 통과하자 보수 진영은 반발했다. 야당의 우파 정당들은 이 개정안이 남성의 병역 기피나 범죄자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일 등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페인 하원도 지난해 12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료진 판단 없이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종전에는 성별을 바꾸기 위해선 2년간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는 증빙서류와 성별과 정체성 사이에 불일치를 느낀다는 의학적 진단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철폐하는 결정이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 성전환자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생식능력 제거 및 성전환수술을 규정한 법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성적 자기결정권,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에서도, 최근에는 대만에서도 같은 판결이 있었다.

유럽인권재판소도 2017년 본인이 원치 않는 불임수술을 성별 변경의 조건으로 하는 건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 정부는 지난달 17일 본인 선택만으로 성별 정정이 가능하도록 한 스코틀랜드 의회의 ‘성 인식 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영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집권 보수당에선 “법적 성별을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이를 악용하는 일이 계속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코틀랜드에선 그즈음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남성이었던 시절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당국은 그를 여성 전용 교도소로 보냈는데, 그곳의 여성 수감자들이 반발했다. 그가 남성일 때 결혼했던 전 아내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밝히자 형을 감면받기 위한 ‘위장 성전환’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직은 기준이 엄격한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세계적 추세와 비교하면 아직은 보수적인 편이다.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 법원 판결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2006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했다.

핵심 내용은 ‘전환된 성으로의 외부 성기 성형 수술’, ‘생식능력 상실’이다. 즉 성전환 수술을 해야만 성별 정정이 가능했다. 이밖의 전제 조건으로 ‘미혼’, ‘자녀 없음’, ‘부모 동의’, ‘만20세 이상’, ‘사회생활상 전환된 성으로 살고 있을 것’, ‘2인 이상의 정신과전문의의 정신과 진단’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임을 지적하고 지방법원이 이 예규와 다른 판결들을 내리기 시작하면서 대법원은 2009년 일부 조항을 수정했다. 하지만 끝내 ‘성기 수술을 마친 미혼 무자녀 성년자’ 규정은 “우리나라 신분법질서와 양립하기 어렵다”며 유지시켰다가 최근에서야 '필수사항'이 아닌 '참고사항'으로 바꾸었다.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았어도 성별 정정을 허가한 판결도 적지 않다.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법적 성별이 여성이지만 남성으로서의 성별정체성을 가진 30여 명의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해 외부성기 성형수술까지 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판결했다. 201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이후 여러 지방법원에서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이 여전히 성별 정정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판결 기준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혼자거나 미성년 자식이 있으면 안 된다는 점도 여전하다. 이런 기준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이 가능한 국가 중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2022년 10월에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기준에 관한 청문회’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정정을 받기 위해서 소위 ‘판결이 잘 나오는’ 법원을 찾아 다녀야 하고, 성전환 수술 요건에 대해서도 판사마다 요구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법학자, 전문가들은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대법원의 성전환 수술 요건을 삭제하고 성별 정정을 원하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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