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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이제는 '엄마 성 따르기’에 대한 본격 논의가 필요하다

엄마 성 부여할 수 있지만 혼인신고 때 결정해야
"출생신고 시 자녀 성 결정하게 하라"
"민법의 여전한 '부성 우선주의' 는 위헌"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 제기

  • 기사입력 2023.01.17 15:47
  • 최종수정 2023.01.17 16:55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김수민 전 SBS 아나운서는 15일 산후조리원을 퇴원하면서 자신의 유투브 채널에서 약속대로 아들에게 자신의 성(姓)을 주었다고 밝혔다.

배우 진태현-박시은 부부는 2019년 입양한 대학생 딸을 엄마 성으로 바꾸었고, 최근 둘째 딸에게까지 엄마 성을 줬다.

고 최진실 배우는 야구선수 조성민과 이혼한 후 2008년 아들과 딸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꾸었다.

아이돌 그룹 AOA의 찬미는 지난해 4월 본명이 ‘김찬미’에서 ‘임찬미’가 됐다. 가정법원에 낸 성본변경신청이 받아들여져 27년 만에 엄마 성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혼한 엄마와 살아온 그는 “내 모든 것의 뿌리는 엄마이고 앞으로도 사랑하는 엄마와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혼하면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재혼을 하지 않고 자녀를 키우는 여성 중에도 아이의 성을 자기 성으로 바꾸고 싶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태어날 자녀나 기르는 자녀에게 합법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 지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 이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모성(母姓)’은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한 법률이다.

민법은 개정됐어도 여전히 ‘부성(父姓) 우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모성을 따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단서가 붙어 있어서 이를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2020년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허가 촉구를 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2020년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의 성·본 쓰기'  허가 촉구를 하는 사람들. (연합뉴스)

◇민법과 ‘부성 우선주의’

2005년까지 민법 제781조 1항은 자녀의 성에 대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이 개정된 것은 그해 3월 헌법재판소 결정 때문이다.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만을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호주제가 전격 폐지됐고, 2008년에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에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예외조항이 붙었다. 이에 맞춰 가족관계등록법도 바뀌어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줄 수 있게 됐지만 기본적으로 ‘부성 우선주의’는 고수됐다.

부성 우선주의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당시 법제처가 “가족관계에서의 남녀평등 이념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법에 따르면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엄마 성 따르기는 혼인신고 때 결정해야

부부가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주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에 ‘예’를 체크해야 한다. 또 별도의 협의서도 제출해야 한다.

◇양육 중에 성을 바꾸려면

양육 중에 자녀의 성을 모성으로 바꾸려면 가정법원에 성·본 변경 심판을 청구해 재판을 거쳐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방법도 있다.

민법 제781조 제6항은 “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를 변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정법원이 성본 변경 신청을 다 받아들이는 건 결코 아니다. 결정을 내릴 때 모성을 따르는 게 자녀의 복지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므로 기각 판정이 나는 경우도 많다.

가정법원은 결정에 신중하다. 자녀의 나이와 성숙도, 자녀 또는 친권자⋅양육자의 의사, 가족 구성원 사이의 정서적 통합,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이익, 자녀 본인의 정체성 혼란, 자녀와 성을 함께 하고 있는 친부나 형제자매 등과의 유대관계 단절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 결정을 내린다.

◇혼인신고 때 0.2%만이 엄마 성 선택

지난해 4월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혼인신고 시 자녀가 엄마의 성·본을 따르게 하겠다고 신청한 건수는 2017년 198건에서 2018년 254건, 2019년 379건, 2020년 448건, 2021년 612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전체 혼인신고 건수와 비교하면 모성을 따르는 경우는 0.2% 수준에 불과하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의 성만 따르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예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성은 한 쪽만 따르게 되어있다. 1세대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벌였지만 그건 단지 사회생활에서 사용하거나 필명으로 쓰는 성명이다. 보통 아버지의 성 뒤에 어머니 성을 붙인다.

◇‘엄마 성 따르기’에 제기되는 문제점

민법이 개정되어 엄마 성을 따를 수 있게 됐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출생하거나 양육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혼인신고를 할 당시 에 미래의 자녀가 모친의 성을 따르겠다고 사전에 부부가 협의해 신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부는 결혼 전후와 출산 전후에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혼인신고부터 출산까지의 공백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혼인신고 때가 아니라 출생 신고를 할 때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모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르니 행정부가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자녀를 여러 명 갖고 싶을 때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부성과 모성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혼인신고 시 내야 하는 협의서에는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딸은 엄마 성, 아들은 아빠 성을 갖는 식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점은 남성들의 결심을 망설이게 한다.

◇'부성 우선주의' 헌법소원 제기, 법무부의 반대 논리

2020년 5월 법무부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민법 781조를 전면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부성 우선주의 폐지를 거론했다.

이 문제는 결국 헌법재판소로 갔다. 2021년 3월 시민단체 활동가인 이설아·장동현 부부가 민법 781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아이의 성을 혼인신고 때 정해야 하고 이를 번복하려면 소송을 해야 하는 점, 부친의 성을 따르는 것은 별도의 협의나 신고가 필요하지 않지만 모친의 성을 따를 때는 별도의 협의와 신고를 요구하는 것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을 규정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2021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3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부성 우선주의가 위헌이 아니니 헌법소원 심판을 기각해달라는 의견서를 지난해 11월 헌재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혼인신고 시 부부가 협의하도록 한 건 “형제·자매간 상이한 성으로 인한 갈등 및 괴리감, 가족관계 내에서 성이 갖는 전통적 의미, 부부간, 자녀 간, 부모 자녀 간의 안정된 혼인·가족관계 등을 고려해 정한 것”이라며 “가족의 동일성 및 결합을 강화하는 입법 목적 달성에 있어 적합하고 유효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부 협의 시기의 제한을 폐지하거나 자녀 출생 시마다 자녀의 성에 대해 협의하도록 한다면 자녀의 성에 대한 불확정성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고,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협의 시마다 가정 내 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성우선주의에 대해서는 2005년 3월 헌재의 결정 이후 추가로 반영해야 할 사회적 변화가 없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과거 부성 우선주의를 원칙으로 정한 민법 조항에 대해 “우리 사회 일반이 부성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2019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서는 국민의 70%가 ‘자녀의 성이 반드시 아버지와 같을 필요가 없다. 부모가 협의해 결정하는 게 좋다’라고 답했다.

헌재가 '부성 우선주의'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정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가장 전면적으로 개정이 된다면 ‘자의 성과 본은 부 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누구의 성과 본을 따를지는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결정한다’가 될 것이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반발 또한 상당히 클 것이다.  헌재가 심의를 하기 앞서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외국은 거의 아버지 성 따른다...법으로 규정하진 않아

결혼해도 여성이 원래의 성을 유지하게 하는 한국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유럽, 미국 등 서양은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꾼다. '부부동성제'를 오랫동안 사회문화적 관행으로 유지해왔다. 자연히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도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는다. 미국은 70%, 영국은 90%라고 한다.

이는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다. 여성이 결혼 후 자신의 성을 유지해도 좋다. 남편이 부인의 성으로 바꾸는 것 또한 가능하다. 이는 자녀의 성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기혼 여성이 자기 성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았다. ‘메르켈’은 전 남편의 성이다.

일본은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것이 민법으로 강제된다. 거의 대부분 여성이 결혼 후 남편 성으로 바꾼다. 자녀도 자연스레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된다. 일본최고재판소는 2015년 이 조항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착된 것이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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