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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짚기] 정권마다 거듭되는 대통령 풍자 전시와 논란

윤 대통령 부부 풍자한 국회 로비 전시회 철거돼
진보 예술 단체와 야당 의원이 주최
여야 간에 정파적 비방전으로 비화

  • 기사입력 2023.01.09 15:59
  • 최종수정 2023.01.09 21:42

우먼타임스 = 한기봉 기자

진보 성향 예술단체와 일부 야당 의원들이 9일부터 국회의원 회관 로비에서 열기로 했던 정치 풍자 전시 ‘2023 굿바이전 인(in) 서울’이 국회사무처에 의해 개막을 몇 시간 앞두고 철거됐다.

상당수 작품들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지나치게 모욕했다는 이유에서다.

강제 철거는 법원 판단이 아니라 국회사무처의 ‘국회의원회관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에 따른 것이다. 이 내규는 사용을 불허할 수 있는 사례로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해석이 자의적일 수 있는데다 국회사무처가 구체적 기준이나 설명 없이 모든 작품을 철거한 상황이어서 현존 권력을 향한 ‘표현의 자유’ 한계에 대한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주최 측인 야당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국회사무처의 일방적 조치에 강력 항의했고, 여당은 이 전시가 풍자라는 허울을 쓴 흑색선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작품들은 이런 것이다.

#왕의 곤룡포를 입은 윤 대통령이 어의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얼굴과 주요 부위는 A4용지로 가려졌고 종이에는 ‘사정상 안쪽의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궁금하시면 들춰보세요’라고 적혔다. 배경에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낙서들이 잔뜩 써있는데 ‘대통령 계속하면 국민들 쪽팔려서 어떻게 사나’ ‘꼴도 보기 싫다 빨리 물러나라’ 등의 낙서가 있다.​

#온통 붉은 배경 속에서 김건희 여사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윤석열 대통령 배 위에 앉아 있다. 윤 대통령 손 옆에는 술병이 놓여있다. 김 여사는 꽃을 들고 있다. 두 사람은 옷을 입은 채다.

#​윤 대통령이 나체로 김 여사를 감싸 안고 망나니가 쓰는 큰 칼을 휘두르고 있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 뒤에 숨어 고개만 내밀고 있다. 배경은 시가지의 구름 낀 하늘.

​#윤 대통령, 김 여사, 천공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진 포스터. 제목은 ‘대통령실, 사저 공사 수의계약 해먹을 결심’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패러디했다.

작가 30여 명이 출품한 대다수 작품들은 패러디 또는 직설적 표현으로 윤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전시는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가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 강민정·김승원·김영배·김용민·양이원영·유정주·이수진·장경태·최강욱·황운하 의원과 무소속 윤미향·민형배 의원 등 국회의원 12명이 공동주관했다.

처음에는 전시를 허가했던 국회 사무처는 개막 전날 밤에 전시회를 공동 주관한 민형배 의원 등 주최 측에 세 차례 공문을 보내 자진철거를 요청했다. 사무처는 ‘국회의원과 회의실 및 로비 사용 내규를 위반할 수 있는 작품은 전시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용을 허가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나 해당 규칙에 의거해 전시작품들을 1월 8일 오후 11시까지 자진 철거해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주최 측이 그림들을 내리지 않자 국회사무처가 9일 새벽 모든 작품들을 철거했다.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출신의 이광재 전 의원·전 강원지사이고 국회의장 역시 민주당 출신 김진표 전 부총리다. 국회 책임자인 두 사람이 같은 야당 의원들이 현 권력을 비판한 전시를 철거시킨 것이다.

‘굿바이전 인 서울’은 9일부터 13일까지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동쪽)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참여 작가는 고경일, 김동범, 김서경, 김성심, 김운성, 김종도, 노호룡, 문태연, 민정진, 박재동, 박찬우, 아트만두, 양동규, 양미경, 오종선, 유준, 이구영, 이수진, 이정헌, 이하, 이화섭, 전종원, 정민주, 정삼선, 정세학, 정용성, 조아진, 주홍, 최인수, Leodav, Ymisong이다.

참여작가들은 전시기획서에서 “지난 정권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끈질기게 실정법 위반 사항을 추적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잘못과 윤석열 대통령 일가의 불법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예술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인 풍자는 권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위트가 담겨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 유머를 만들어내는 예술, 창작행위야말로 진정한 아방가르드라는 것은 상식이다”라고 말했다.

철거되기 전 전시된 작품들. (참여작가 SNS) 
철거되기 전 전시된 작품들. (참여작가 SNS) 

◇​여당과 야당 정쟁으로 비화

전시 작품들이 9일 새벽 일제히 철거되자 민형배·최강욱 의원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사무처가 풍자로 권력을 날카롭게 비판하겠다는 예술인의 의지를 강제로 꺾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전시회 취지는 시민을 무시하고 주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권력, 살아있는 권력 앞에 무력한 언론권력,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는 사법권력을 신랄하고 신명나게 풍자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국회사무처는 이 같은 다짐을 무단철거라는 야만적 행위로 짓밟았다. 국회조차 표현의 자유를 용납하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진표 국회의장을 향해 “전시회의 정상적 진행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로 이 전시는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9일 “누구에게나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조롱하고 비방하는 헌법의 파괴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 전시는 풍자라는 허울로 예술을 참칭하는, 흑색선전에 불과하다. 게다가 화합과 협치로 이끌어야 할 책임 있는 제1야당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선동하는 것은 국민들한테 심판받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현직 대통령 풍자

현직 대통령을 풍자한 국회 전시회 논란은 여러 번 있었다. 매번 여야 간에 정쟁이 되었다.

2017년 1월 민주당 표창원 의원실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1층에서 ‘곧, BYE(바이)! 전’이란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가 열렸다. 이중 논란이 된 그림은 이구영 화가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이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을 배경으로 나체로 침대에서 자는 모습이다. 최순실 씨가 그 옆에 ‘주사기 꽃다발’을 들고 서있다.

정치권에선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여성 비하와 혐오에 불과하다는 논란이 오갔고, 보수단체 회원이 전시 중인 이  그림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론이 좋지 않게 흐르자 민주당 지도부는 표 전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했고, 전시도 중단됐다. 표 전 의원은 “여성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낀 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표 전 의원은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표 의원과 이구영 작가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 ‘윤석열차’가 금상을 받으면서 또다시 대통령 풍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전을 주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경고 조치를 내렸다. 야당과 웹툰협회 등은 반발했다. 만화는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가 달리고 운전석 쪽엔 김건희 여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뒤에는 칼을 들고 검사복을 입은 인물들이 타고 있는 장면이다. 열차가 달리자 시민들 놀라 달아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외모의 아이를 낳는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블로그에 게시한 민중화가 홍성담씨가 도마 위에 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홍씨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특정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의견 표출에 불과하단 이유에서다. 그보다 몇 달 앞서 박 전 대통령을 백설공주로 묘사해 그린 팝아티스트 이하씨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한 대학 강사가 서울 거리 곳곳에 ‘쥐 그림’을 내걸었다. 청사초롱을 쥐가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이었다.

중앙지검 공안2부가 나서 그를 불구속기소했는데 ‘공용물건 손상’ 혐의였다.

서울중앙지법은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고 이는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됐다. 1심은 유죄 선고 배경에 대해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중도덕을 침해하는 경우까지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G20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니었고, 쥐 그림이 보는 이에 따라 해학적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점, 새로운 예술 장르로서 보호받아야 할 측면 등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벌금형을 택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표현의 자유 한계와 사법 처리의 적절성 논쟁을 불러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창작 행위는 많았다. 전시뿐 아니라 퍼포먼스, 카툰, 연극, 노래, 책, 대자보 등을 통해서다.

지난해 2월 가수 안치환이 신곡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발표했는데 가사 말미마다 ‘~거니’를 반복해 김건희 여사를 조롱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가사는 이렇다.

“왜 그러는 거니/뭘 꿈꾸는 거니/바랠 걸 바래야지 대체/정신없는 거니/왜 그러는 거니/뭘 탐하는 거니/자신을 알아야지 대체/ 어쩌자는 거니”

◇정치 풍자의 한계는

권력과 권력자를 예술로 풍자하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번에도 그렇듯 매번 진영 싸움으로 번지고 표현의 자유 한계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검찰 수사나 법정까지 간 경우에는 대부분 표현의 자유가 인정돼 불기소나 무죄 처분되었다. 하지만 일반적 국민정서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창작에 대한 평소 생각에 따라 정해진다. 법원 판결과는 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판과 풍자와 조롱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비판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창작 행위인 풍자에 있어서는 표현 기법이나 예술성이 있어야 한다고 거론한다. 지나치게 조악하고 유치하거나 함의나 은유가 없는 직설적 표현은 조롱과 인신공격성 비방에 가까울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표현이 예술성이 있는지 여부와, 모든 창작은 꼭 예술성을 갖춰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한편으로는 창작 행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보다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설령 현존 권력이나 권력자에 대해 정도가 지나치다고 여겨지는 풍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진영이나 측근이 정치적 득실만 따지지 말고 예술정신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정치사회적 풍토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만을 규정했을 뿐 그 한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다. 결국 사안마다 매번 진영 간의 소모적 논쟁만 오고 간 후 한 쪽의 고소가 이뤄지면 공식적인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판사가 창작과 예술 행위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온당한가라는 논란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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