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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여성 과학자를 찾아] ⑪ ‘수학교육자들의 교육자’,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권오남 교수

  • 기사입력 2023.01.04 10:50
  • 최종수정 2023.02.03 11:43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와 학문적 업적을 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위셋, WISET, 이사장 문애리)은 뛰어난 여성 과학자·기술인을 찾아 소개하는 ‘She Did It’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위셋’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이공계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도를 꿈꾸는 여성을 위해 위셋의 협조를 받아 ‘She Did It’에 실린 여성과학자들 인터뷰를 주기적으로 전재(일부 수정)한다. 인터뷰 전문은 위셋 홈페이지(wiset.or.kr)나 위셋 블로그(m.blog.naver.com/wisetter)에서, 동영상은 유튜브 ‘위셋’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시간과 관계없이 불변한 사실이나 진리가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권오남 교수.

권 교수는 예비 중고등 수학 교사들을 교육하고 수학 현직 교사 연수를 진행하는 그야말로 ‘수학교육자들의 교육자’다.

지난 30여 년간 국제학술행사를 기획하고 수학교육 분야의 ᅠ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Educational Studies in Mathematics, Journal for Research in Mathematics Education’의 국내 최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수학교육의 국제화를 개척하고 한국수학교육을 국제학계의 중심에 서게 했다. 2022년 4월에는 아시아권 최초로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에서 수학, 과학 교육 혁신을 이끈 이들에게 주는 ‘스벤드 페데르센 교육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학교육은 혼자 문제를 풀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네트워크로 연구의 폭을 넓히고, 탐구하는 학습 방법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수학교육을 전공, 서울대에서 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으로 건너가 복소해석학이라는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이화여대에서, 2003년부터 서울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감수성 많은 어린 시절, ‘수학’으로 존재감을 얻다

​“저는 꽤 감성적인 어린이였어요. 학년이 바뀌면서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현상들이 슬펐어요. 그 때문에 변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이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수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유학 왔는데 수학 시간에 집합 문제를 자원해서 칠판에서 해결한 적이 있어요. 그걸 계기로 제 존재를 각인시켰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는 귀류법이라는 증명 방법을 접하면서 수학에서의 사실을 정당화해나가는 과정이 무척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극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무한(infinity) 개념을 다루는 것이 무척 도발적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성’ ‘창의성’에 대한 고민이 이끈 ‘수학교육’의 길

“90년대 초,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500여 명 중 여성이 20여 명뿐이었어요. 강연자도 여자가 딱 한 명인 거예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나도 언젠가 발표하고 싶은데, 저기에 설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그리고 박사과정 수강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지만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저를 비롯한 한국 유학생들이 창의적인 논문을 작성하는 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수학에서 여성의 자리가 턱없이 적다는 것과 한국 유학생들의 창의적인 논문 집필의 어려움이라는 두 사실을 직면했을 때 저는 이것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문제로 인식했어요. 이후로도 수학과 젠더, 창의성이라는 키워드로 제 연구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첫 번째로 수행한 연구 주제 중 하나도 수학과 젠더에 대한 연구과제였어요.”

(위셋)
(위셋)

탐구 지향 교수법, 교육과정 연구를 주도하다

“저의 주요 연구 분야는 대학 수학교육 연구예요. 교수 방법뿐만 아니라 교수-학습(teaching-learning)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해왔어요. 창의적 사고 계발을 위한 교육 환경, 교육내용, 교육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보통 수학 학습은 ‘정의-개념-응용문제’ 순서가 전통적이지요. 탐구 지향 교수법은 수학적 현상에서 수학적 아이디어와 개념을 개발하는 접근이며 전통적인 방법의 역순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수학적 현상이 담긴 맥락을 통해 정의와 개념을 재발명(혹은 재발견) 하는 과정이에요.

학생들의 문제 해결 활동은 단순히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문제의 맥락에 관련된 수학적 원리를 발견하여 수학적 모델을 구성하는 것까지 포괄해요. 그리고 교과 과정에 의해 의도된 수학적 모델은 교수자가 아닌 학생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통한 탐구를 통해 발생해요. 이 과정에서 교수자-학습자의 교실 담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지요.”

​​한국 수학교육학계의 국제화를 이끌어

“우리나라 수학교육학계의 국제활동은 제가 개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에 시작해 거의 30년을 한국 수학교육학계의 국제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연구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논문의 인용 횟수가 중요합니다. 인용 횟수를 높이는 방법은 국제적인 학술대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과 함께, 국제적인 학자와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구 중심의 국제 수학교육학계에서 한국 수학교육학자로서 영역을 개척한 것은 힘들었지만 큰 보람이었어요.

제가 수학교육학계에서 ‘국내 최초’ 타이틀이 꽤 있답니다. 2000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9차 국제 수학교육대회(4년에 한 번 열리는 수학교육의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청 강연자로 선정되었고, 2008년 ‘국제수학위원회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150명 중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했어요. 그때 동양에서는 일본이 2명, 중국인 2명뿐이었어요. 2002년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개최된 ‘국제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자로 초청되었던 일도 기억에 남아요. 기조 강연자 5명 중 유일한 여성이며 최연소였답니다.

​최근의 고민은 우리나라 수학교육학계에서 제가 구축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어서 확장할 수 있는 연구자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서구 중심의 수학 이론이 아닌 우리만의 이론을 만들어야 하고 결국 네트워킹이 중요한데 말이죠. 그래서 지도 학생들과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할 때 저를 따라다니지 말고 공동 연구할 인연을 만들어 오라고 권유합니다.”

아시아권 최초 ‘스벤드 페데르센 교육상’ 수상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에서 2005년부터 매년 수학교육학자와 과학교육학자를 번갈아 가며 주는 상인데요. 수학교육의 역대 수상자들도 세계수학교육위원회 위원장 등 세계 수학교육 연구계를 이끄는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의 30여 년간의 학술 활동이 외국에서 인정받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사전에 그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해서 수상 소식에 무척 놀랐고, 동양인으로는 처음 상을 받게 되어 무척 영광이었어요.”

‘수학교육자들의 교육자’로서의 보람

“서울대에서 지리교육과 입학생 중에서 수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수학 복수전공을 포기할 뻔하다가 거의 10년 만에 졸업했는데 저의 미분방정식 과목을 듣고 진정한 수학을 알게 되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 수업이 학생들에게 쉽지 않아요.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토론도 해야 하는 거라 대부분 수업을 힘들어해요. 하지만 졸업하고 교사가 되면 저의 수업 방법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자들이 중고등학교 때 배운 대로가 아닌 저에게 배운 대로 수학을 교육하니 학생들이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적 역량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연락해줄 때가 가장 보람이 있어요. 대부분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오면 그 지역에서 리더가 되는 선생님들이에요. 제 제자 중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무척 자랑스럽고 또 교육자로서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수포(抛)자’보다 ‘수호(好)자’가 늘어나는 사회를 위해

“수학교육자로서 ‘수포자’라는 말이 정말 안타까워요. 이런 근본적인 원인은 수학을 시험 문제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에요. 수학은 암기가 아니라 사고하는 학문이거든요. 학생들이 수학을 암기하는 학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상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앞서 소개한 탐구 지향 교수법 등이 학교 현장에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평가내용과 방법도 교수 방법과 일관성 있게 변화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절실합니다. ‘수포자’ 보다 ‘수옹(擁)자(수학을 옹호하는 사람)’, ‘수호(好)자’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수학교육계의 차세대 학자들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는 데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어요.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국 학자들의 네트워크 구성에 힘쓸 생각입니다. 그 일환으로 2025년 서울대학교에서 열리는 ‘제9차 동아시아 수학교육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이 안에서 젊은 학자들이 네트워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또 수학교육의 연구가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을 좋아하고 학생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에요.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어요.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경우가 꽤 있거든요. 도전하는 수학교육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나라 수학교육계가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합니다.”

(위셋)
(위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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