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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레터] “윤 의원님, 못생겨서 미안합니다”

  • 기사입력 2022.11.16 16:58
  • 최종수정 2022.11.17 08:40

우먼타임스 = 한기봉 편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나’라고 부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그가 이번에는 이런 말을 했더군요. 사석이 아니라 공적인 언론 인터뷰 자리에서입니다.

“퍼스트레이디를 우리들 눈으로만 보나?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에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 왜 그런 긍정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나. 영부인께서 영부인으로서의 활동을 하는데 왜 그렇게 토를 다는지 이해가 안 된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입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정상외교 순방 중 김건희 여사가 개인 일정을 한 것을 두고 비판이 일자 14일 BBS라디오 대담프로에 출연해 김 여사를 두둔하면서 한 말입니다. 김 여사는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 중에 주최국인 캄보디아 정부가 마련한 영부인들의 앙코트와트 방문 일정 대신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의 집을 개인적으로 방문했고, 대통령실은 아이를 안고 있는 김 여사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었지요.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의 집을 찾은 김건희 여사의 모습과 이와 유사한 오드리 헵번 사진. 김 여사 사진은 대통령실이 배포했다. 김 여사 행보를 두고 온라인과 야당에서는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니 ‘빈곤 포르노’니 하는 비판적 말들이 나왔다.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의 집을 찾은 김건희 여사의 모습과 이와 유사한 오드리 헵번 사진. 김 여사 사진은 대통령실이 배포했다. 김 여사 행보를 두고 온라인과 야당에서는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니 ‘빈곤 포르노’니 하는 비판적 말들이 나왔다.

이를 두고 온라인과 야권에서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니 ‘빈곤포르노’(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니 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우선 저는 이 비유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란 구호단체들이 모금과 후원을 더 많이 이끌어내기 위해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자극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말합니다. 김 여사가 설사 이미지 일신을 위한 목적이 있었다 치더라도, 이 표현은 저간의 상황도 다를 뿐더러 (특히 여성에게는)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야위고 아픈 아이를 안으면 오드리 헵번의 그 유명한 사진(1992년 직장암으로 사망하기 1년 전 소말리아에서 영양실조 아이를 안은 모습)처럼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국제구호단체를 자발적으로 돕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 연예인들도 다 그렇게 두 팔로 아이를 껴안았습니다.

시비를 걸고 싶은 건 “여사님이 미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바로 그 발언입니다. 역대 영부인의 ‘미모’까지 끌어와 이른바 ‘얼평’을 했습니다. 생전에 있는 영부인이 “못 생겨서 미안했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김건희 여사가 (객관적으로) 미인인지 아닌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윤 의원은 “퍼스트 레이디를 우리들 눈으로만 보나”라고도 말했는데, 동양 여성의 용모에 대한 서양인의 평가 기준은 우리와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윤 의원의 눈에는 김 여사는 ‘국위를 선양할 정도의 미모’를 지녔고 그 생각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것만은 틀림이 없네요.

그런데 그걸 정치인이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굳이 강조해야 했을까요. 퍼스트 레이디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어느 나라에서든 기본적 금기사항이자 품위와 예절의 문제일 겁니다.

직장 내에서도 여직원의 용모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 언급이든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그건 이미 굳어진 룰입니다. 애국적 충정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든 ‘아부’에서 한 말이든 국회의원의 성인지감수성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아연실색할 뿐입니다. 김 여사의 반응은 아직 없습니다.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아예 경국지색이라 하라”며 한 마디 했더군요.

윤 의원의 발언을 비틀어 ‘그럼, 못생긴 여자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말인가요’라고까지 공격하고 싶진 않습니다. 윤 의원 발언에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쳐봤을지 모르겠습니다. ‘미모=경쟁력’의 등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을지도 모르고요.

제가 아는 한 직장 여성이 화를 못 참고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이게 바로 잘 나간다는 대한민국 수컷들의 속마음이야. 숨길 수가 없어. 그래서 나처럼 못생긴 여자는 유리천장을 못 깬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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