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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Did It-여성 과학자를 찾아] ⑥오유경 서울대 약학대학장

서울대 약학대학 106년 역사 첫 여성 학장
20년간 암세포 연구에 매진
“약학은 여성 진입장벽이 덜한 분야”

  • 기사입력 2022.11.07 15:46
  • 최종수정 2023.02.03 11:46

사람들은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지만,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친 한국 여성 과학자가 적지 않다.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기업에서 탁월한 성과와 학문적 업적을 쌓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과학기술인들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위셋, 이사장 문애리)은 2021년부터 뛰어난 여성 과학자·기술인을 찾아 소개하는 ‘She Did It’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위셋’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공공기관으로, 이공계 여성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우먼타임스는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도를 꿈꾸는 여성을 위해 위셋의 협조를 받아 2022년 ‘She Did It’에 실린 여성과학자들 인터뷰를 주기적으로 전재(일부 수정)한다. 인터뷰 전문은 위셋 홈페이지(wiset.or.kr)나 위셋 블로그(m.blog.naver.com/wisetter)에서, 동영상은 유튜브 ‘위셋’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우먼타임스 = 심은혜 기자

여성 과학자가 많은 분야 중 하나가 ‘약학’이다. 전국 대학의 약학과에는 여성 교수도 많은 편이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한계와 진입장벽이 덜한 분야이기도 하다.

서울대 약학대학장을 지낸 오유경 박사(57)는 약학을 연구하는 국내의 여성 과학자 중 독보적 인물이다. ​지난 20년간 암세포의 미세환경을 조절하고 항암제 등의 약물전달체 연구를 해왔다. 2021년 서울대 약학대학 106년 역사 첫 여성 학장에 임명됐고, 한국약제학회 첫 여성 회장, 한국약학교육협의회 최초 여성 이사장, 국제약물방출조절학회의 아시아 여성 최초 임원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첫 식품의약품안전처장으로 임명됐다. (위셋의 인터뷰는 처장에 임명되기 전에 이뤄졌다.)

(위셋)
(위셋)

- 약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우연이 필연이 되었죠. 고 3때 학력고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들렀어요. 우연히 약학대학 건물에 들어와 구경을 하는데 한 교수님을 만났어요. 그 교수님(김종국 교수)께서 ‘약대는 어려운 학문이라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런 장점이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이 분이 훗날 석사 때 지도교수님이었지요. 당시 제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 왔었는데, 교수가 될 때까지도 교복 입고 왔던 여학생이라고 기억해 주셨어요. 굳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왔다는 점, 교복을 입었다는 거 이 두 개가 제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요.”

​- 과학자로서 암세포를 오래 연구하셨습니다. 암에 대해서 어떤 연구를 주로 했는지요.

“친구 따라 사람이 변한다는 말이 있죠. 암세포도 그렇더라고요. 암세포의 주변에 다른 세포들이 많은데, 그 세포들을 조절하자 암세포도 변화하더라고요. 종양미세환경을 조절하는 나노 기술로 암을 죽일 수 있는 면역 세포를 끌어오게 하는 거죠. 처음에는 암세포가 주변에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세포들만 거느리고 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암을 공격할 수 있는 면역 세포들이 많이 와서 암을 공격해 주면 암이 자라지 못하죠. 그래서 암의 주변 환경을 바꿔주는 연구로 나노 물질, 나노 신소재 개발 쪽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암뿐만이 아니라 다른 질환들도 이렇게 미세 환경이 중요해요. 최근에는 간섬유화증이라든가 자가면역질환 분야로 눈을 돌렸어요. 그동안에 암 연구에서 제가 축적했던 기술을 적용하는 거죠. 이 역시 미세 환경을 바꾸면 치료될 수 있는 치료제 개발로 발전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제 연구에 영향도 많았어요. mRNA 백신이 영하 70도에서 운반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아주 저온에서 운송하지 않아도 되도록 안정성을 개선하는 주제로 연구를 해볼 예정입니다.”

오 학장은 서울대에서 학업을 마친 후 민간 제약회사와 특허청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자유로운 분위기 속의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혼에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여러번 교수직 응모에서 실패했다.

“서울대에서 학업을 마친 후 민간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어요. 회사는 디데이에 맞춰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일을 완수해야 되는가가 중요하죠. 그런데 너무 빨리하다 보면 주변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반면 내가 만든 제품을 사람들이 쓰는 것을 보는 보람이 있지요. 특허청에서는 1년간 근무하며 특허 심사를 했어요. 그런데 심사를 하다보면 나도 이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나는 누군가의 연구를 평가만 하는 것보다는 연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걸 느꼈고 실험실에 대한 향수가 생겼어요. 그래서 특허청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하지만 당시 학교 면접을 보면 아이가 있다는 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 번번이 떨어졌지요. 포기보단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전국 어디든 지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마다하지 않았어요. 교수라는 직업이 주는 자유로운 연구에 대한 열망이 저를 이끌었죠.”

- 서울대 약학대학 106년 역사 첫 여성 학장이 되었는데요.

“서울대 약대의 역사가 길고, 약대가 통합 6년제로 바뀌면서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학회, 연구 등으로 이미 제 일정표는 가득차 있었지만, 약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컸고, ‘여자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선거를 준비하면서 약대 교수님 47분 정도를 일대일로 만나 식사를 하며 약대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지요.

당시 제 공약은 리더스(LEADERS)였어요. L은 listen, 교수님들의 말씀을 듣겠다. E는 engage, 교수님들이 좀 더 학교 일에 참여하게 하겠다. A는 asset, 자산을 확충하겠다. D는 develop, 미래를 디자인 하겠다. E는 education, 약학 6년제를 통해 교육 혁신을 하겠다. R은 research, 연구 역량을 증강시키겠다. S는 service, 교수님들에 대한 행정 서비스를 개선하겠다. 이 공약이 교수님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 과학과 연구는 어떤 장점이 있나요.

“존경하는 약대 선배님이신 나도선 명예 교수님은 ‘과학을 하면 인생이 지루하지 않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죠. 대학에 있다는 장점은 연구의 자유가 있다는 점이에요. 늘 새로운 연구를 찾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실행하니까 지루할 틈이 없어요.

2021년 3월 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저널에 논문을 냈어요. 학장이 되기 전부터 시작을 해서 1년 반 정도 수정을 거쳤어요. 까다로운 코멘트가 많아서 지치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힘을 합해서 밤늦게까지 실험하면서 완성했어요. 등재 선택이 됐을 때 저희 학생들이 거의 울먹울먹 했죠. 좋은 논문에 자기 이름이 석자가 인쇄된다는 건 학생들에겐 굉장한 보람이자 달콤한 열매 같은 거죠. 마치 등산할 때 정상을 향해 학생들과 짐을 나눠지고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 과학을 전공하는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진부한 말이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해요. 제가 학장 선거를 나간 것도 그렇고요. ‘떨어지면 어때? 그래도 나간 거에 의미가 있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떤 연구 가설을 세울 때 이 가설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리고 대부분 실패해요. 그러면 내가 하는 가설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안 할 것인가? 그건 아니잖아요. 예전에 너무 힘들 때 오뚝이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수도 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생각하는 거죠.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탄성(resilience)이라고 하고 싶어요. 주저앉으면 빨리 일어나는 힘이 필요해요.”

​- 약학은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여성 교수님이 전국적으로 많은 분야가 약학 분야예요. 여성이라는 한계와 진입장벽이 덜한 분야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약’이에요. mRNA 백신이나 항노화라든가 젊음을 유지하는 화학의약품도 있고 항체 의약품, 세포 치료제 등 굉장히 다양한 영역이 있죠. 약학은 본인의 적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전공을 찾아갈 수 있다는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약력]

2022.5~ 제7대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

2013.11~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2022.3~2022.5 제7대 한국약학교육협의회 이사장

2022.1~2022.5 제38대 한국약제학회 회장

2021.7~2022.5 제29대 서울대 약학대학 학장

2009.9~2022.5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2005~2009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1999~2005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 교수

1997~1998 특허청 약품화학과 심사관

1996~199 SK케미칼 생명과학 연구개발실

1994~1996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1988~1989 보령제약 개발부

1965 경남 창원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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