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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용과 '똥'

  • 기사입력 2022.09.01 17:16
  • 최종수정 2022.09.02 10:15

우먼타임스 = 한기봉 편집국장

“이 과제는 좋고 싫고를 떠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했다. 우리 기술을 활용해 무언가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상무)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대통령부터 정치인, 전문가, 연예인, 대기업 총수들의 말이 매일 뉴스를 장식한다. 그 수많은 말말말 중에서 나는 이처럼 멋진, 아니 ‘위대한’ 말을 최근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 자랑도, 문학적 수사도, 철학적 통찰도 아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하며 반응을 한 것은 이 말이 품은 ‘진정성’과 화자의 ‘사명감’ 때문이다. 유명한 분도 아니다. 그냥 현장에서 일하는 한 명의 ‘기술자’일 뿐이다.

기술자(또는 과학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좋고 싫고를 떠나…이바지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 분의 단순한 말에서 그 해답을 읽는다.

그런데 이 분이 매달린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우리말로 하면 한 글자 ‘똥’이었다. ‘똥’이라니?  초거대기업 삼성이 무려 3년간이나 똥에 매달렸다는 건가.

삼성전자는 8월 30일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신개념 화장실(Reinvented Toilet·RT)’ 개발에 성공했다는 영상을 올리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신개념 화장실’이란 수세식 화장실과는 완전 개념이 다른 ‘물 없는 자급자족형 화장실’이었다. 똥은 탈수와 건조, 연소 과정을 통해 재로 만들고, 오줌은 바이오 정화 방식을 적용해 물로 바꾸는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3년 노력 끝에 개발에 성공한 물 없는 '신개념 화장실'.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3년 노력 끝에 개발에 성공한 물 없는 '신개념 화장실'. (삼성전자)

삼성이 화장실에 매달린 데는 사연이 있다. 시작은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다. 그는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의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인 화장실 여건, 열악한 하수처리 인프라, 특히 수인성 질병에 걸린 어린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필요한 혁명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 ‘화장실 혁명’이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빌 게이츠 재단은 2011년 2억 달러를 들여 물과 전기를 쓰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화장실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공모했다. 기술력이 있다는 서구 기업과 연구소, 대학들이 매달렸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친분이 있던 빌 게이츠는 2018년 이 부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용단과 집념이 없었더라면 물 없는 화장실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이 부회장은 화장실 혁명이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는 데 전격적으로 공감했다. 그는 게이츠 재단의 연구개발비 지원도 사양했다. 그리고 삼성종합기술원에 전담 연구팀을 구성해 기필코 성공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다.

8월 16일 방한한 빌 게이츠 이사장과 만난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은 '신개념 화장실'의 개발 성공을 밝혔다고 한다. (삼성전자)
8월 16일 방한한 빌 게이츠 이사장과 만난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은 '신개념 화장실'의 개발 성공을 밝혔다고 한다. (삼성전자)

전담팀은 2019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지만 고난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어렵기로 소문난 고체역학, 정역학, 유체역학, 동역학, 열역학 등 복잡한 이론이 융합돼야 했다.

개발에 참여한 김낙종 연구원은 동영상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거 진짜 안 되나’를 되뇌었다. 하지만 모두가 오랜 기간, 묵묵히 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금씩 완성도가 올라갈 수 있었다.”

‘신개념 화장실’은 사용자 시험을 마친 상태다. 게이츠재단은 양산을 위한 과정을 거친 후 저개발 국가에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전자는 기술 특허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엘리시움'(2013년)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자 최첨단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지구 밖으로 이주해 유토피아를 만들어 살아가는 '선택받은' 집단과, 만신창이가 된 지구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집단의 갈등을 그렸다. 먼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 행성에는 팬데믹에서 보았듯 갈라진 세상, 갈라진 인류가 존재한다.

삼성 관련 뉴스는 매일 차고 넘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삼성의 기술력이 이뤄낸 신제품도 나온다.

그 많은 뉴스 중 슬며시 공개된 이 뉴스가 가장 '신선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개념 화장실’이야말로 올해 삼성의 제품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꼽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재용 부회장이 빌 게이츠의 꿈을 이뤄줬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이재용의 꿈’이 아닐까. 삼성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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