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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작가의 ‘책에 비친 여성’] 여성은 정말 크리스마스 케이크일까?

반유화 저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 기사입력 2022.08.22 17:21
  • 최종수정 2022.08.22 19:37

지금까지 책을 네 권 냈는데 그중 결혼생활 에세이와 딩크 에세이가 있다. 결혼생활과 비출산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와 관련된 고민을 가진 이들로부터 질문과 상담 요청을  받은 적 있다. 질문과 상담은 지인 중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SNS의 메시지로 연락이 오거나 메일이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속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저 현재 상황을 경청해주고 공감해주는 데서 힘을 많이 얻는 듯했다. 한편으로 얼마나 말할 곳이 없으면 일면식 없는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을까 싶어 마음이 쓰이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나이와 사회적 위치, 가족관계 등에 따라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그 모든 고민은 ‘여자라서’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내가 20대일 때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빈번하게 쓰일 때였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여서 스물네 살에 제일 값어치가 높고, 스물다섯 살부터 뚝뚝 떨어지는 게 크리스마스이브 이후 값을 싸게 매기는 케이크 같다는 얘기였다. 

어려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야기가 얼마나 성차별과 나이 차별을 보여주는 말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은 나이를 먹는 게 결점이 되는 것처럼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반면 남성은 나이를 먹으면 책임감이 생긴다든지, 듬직해진다든지 하는 말로 감싸줬고 그저 걱정이라면 취직 정도의 걱정을 보태는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나와 친구들은 많은 불안과 불합리를 경험했다. 한참 사회생활 잘하던 친구들이 스물아홉 살 하반기에 대거 결혼한 것만 해도 불안의 상징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24살에는 결혼하기 어렵지만 스물아홉은 가능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여성에게 재앙이라도 되듯 떠들어대는 사회에서 20대의 선을 넘기 전 결혼하려고 분투한 결과였다. 어찌나 많이 결혼하던지 주말이면 하루에 두 건씩 결혼식에 가는 게 예사였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농담과 시선에 미혼이었던 친구들은 너무나 불안해했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다산초당)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다산초당)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린 건 나에게 상담 요청을 하는 메시지들과 더불어 반유화 작가의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에서 여전히 나이와 경험에 치이는 여성들의 사례를 발견하면서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반유화 작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이 ‘여자라서’ 겪는 12가지 어려움에 대안을 제시한다. 그 첫 번째 챕터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여서 스물네 살에 제일 값어치가 높고, 스물여섯 살이 되는 순간 가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는 농담이 자주 사용되던 때가 있었어요. 성차별에 나이 차별까지 더해진 이 표현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많은 이가 이런 표현들의 영향을 받았고 사회화된 불안을 얻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건 개인이지만, 그 나이의 그릇, 역할, 감수성을 결정하는 주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각각의 나이에 대한 감수성을 개인에게 심어줬고 그래서 자기 나이에 맞는 자신만의 자격이나 역할, 정서를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 23P”

친구들이 대거 유부녀가 되고 나니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한동안 우울했고, 이러다 결혼을 못 하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고, 진지하게 비혼을 고민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시절의 우울과 걱정은 자신에게서 빚어진 게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쥐여준 거였다.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며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각박한 20대 여성에게 여자 나이 운운하며 타인의 인생에 값을 매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을 구석으로 몰아서 얻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올해 친구가 결혼한다. 마흔한 살의 친구는 한때 늦어지는 결혼을 걱정했지만, 타인의 시선과 한계를 넘은 다음에는 조급하지 않게 원하는 요건을 충족하며 만족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이 늦어질수록 부모님이 채근하고, 주변에서 이런저런 무례한 말을 덧붙일 수 있지만 내 인생을 가장 걱정하고 잘 살아내고 싶은 사람은 사실 나뿐이다. 

지금 ‘여자라서’ 상처받고 걱정되는 여성이 있다면 꼭 하나 알아줬으면 한다.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나이와 그릇된 상징은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휴짓조각과 같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 새로운 인생 각본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 고민이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땐 빨리 실망시킬수록 좋습니다. 여태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갑자기 실망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걸 명심하세요. - 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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